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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화해의 70년…아픈 역사의 현장 판문점

<앵커>

이곳 도라산역에서 직선거리로 7km쯤 가면, 판문점이 나옵니다. 때론 대화와 협력을, 때론 갈등과 충돌을 거듭해온, 남북 분단의 역사를 지켜본 곳입니다. 판문점을 통해 남북 화해와 갈등의 70년을 돌아봤습니다.

김종원 기자입니다.

<기자>

임진각 망원경으로 내다봐도 보이지 않는 곳. 하지만 '그 곳은 어디지?' 하며 한 번쯤 찾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이계설/관광객 (6·25 참전) : 판문점은 저 산 훨씬 더 지나서 있죠. 쭉 가야죠.]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초가집 몇 채뿐이던 '널문'이라 불리던 작은 마을.

전쟁의 소용돌이는 보잘것없던 이 마을을 국제 정세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습니다.

1951년 널문 마을 공터 천막에서 시작된 휴전 협상이 전 세계로 보도되면서 마을은 판문점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1953년 7월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 뒤, 판문점은 남북 관계의 여러 사건들을 지켜봤습니다.

휴전 직후 전쟁포로 교환과,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한 1971년 적십자 예비회담, 최초의 남북 당국 간 합의인 7 ·4 남북 공동 성명 협상이 있었던 곳이 판문점입니다.

[회담장 안팎 분위기는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첨예한 대립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군사 충돌 등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상대를 규탄하는 장소였고, 급기야 1976년,

[북한 괴뢰 경비병 약 30명이 악랄한 살인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유엔사 경비병을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와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져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치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임진각입니다.

이 뒤에 있는 철조망 너머 저쪽 뒤편에 판문점이 있습니다.

원래는 저희가 들어가서 취재를 할 수 있지만, 최근 터진 DMZ 내 목함지뢰 폭발 사고로 현재는 취재 활동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판문점이 또 다시 남북간 갈등에 휩쌓인 겁니다.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개성공단이 생긴 이후 판문점은 대화의 기능은 줄어들고, 오히려 남북 대화의 장소는 개성으로 옮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보다 역할이 많이 줄어든 판문점, 이제 남북 간 새로운 역사의 증인이 되길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영상취재 : 홍종수·설민환, 영상편집 : 박춘배, 자료출처 : 대한뉴스·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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