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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얼빠진 장관' 자청한 한민구…국방부와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이?

[취재파일] '얼빠진 장관' 자청한 한민구…국방부와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이?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5.08.14 15:55 수정 2015.08.17 09: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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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구 장관과 유승민 의원 사이 문답에서 확인된 두 가지 사실

국회 상임위에서 장관들이 모두 정확한 팩트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어려운 질문에 답을 못해 우왕좌왕하면, 참모들이 잽싸게 들이민 쪽지를 보면서 말하기도 합니다. 그마저도 어려우면 잠시 답변을 멈추고 "정확한 확인을 해보고 답하겠다"며 피해나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럴 경우 질문을 한 의원에게 면박을 당할 각오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좀 깨지더라도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말하는 편이 대체로 결과가 좋습니다.

그제(12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대체로 본인의 답변에 막힘이 없었습니다. 참모들이 말을 받아서 설명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쪽지를 들이미는 장면은 볼 수 없었고, 답변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한 장관은 비교적 본인 생각을 잘 정리해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논의되는 사안이 워낙 세간의 관심사였던 휴전선 지뢰 도발 문제여서 열심히 숙지하고 나온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말하지 말았어야할 중요한 내용을 말하고 말았습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질의에 당시 지휘 보고 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한 겁니다. 이번 사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답이어서 정확한 발언을 옮겨봅니다. @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8월 4일 날 아침에 사고가 났는데 정확하게 48시간이 지나서 지뢰도발사건 합동현장조사를 했다 이렇게 보고가 돼요. 오늘 말씀으로는 현지 부대가 조사를 했다 그러시지만 현지부대가 조사한 거는 국회에 전혀 보고가 안 돼 있고 조사는 48시간이 지나서 조사를 했는데,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냐 하면 8월 5일 날 상당히 많은 일들이 있어요.(중략) 대통령의 경원선 기공식 참석, 이희호 여사의 평양 방문, 그리고 남북고위급회담 제안. 그러니까 그 전날 지뢰사고가 터졌는데 8월 5일 이런 세 가지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조사는 8월 6일 날 이루어진단 말이에요. 이게 좀 이상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된 거죠?

@ 한민구 국방부 장관
의원님, 그 사고가 나고 바로 현지 군단에 조사단이, 합동 군단 조사단이 8월 4일, 5일 조사를 했고, 8월 4일 늦게 북한의 목함지뢰에 의한 도발이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확인을 했고 그런 사실이 다 보고가 됐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그러면 4일 날 현지부대가 조사를 해서 8월 4일 날 북한의 목함 지뢰에 의한 도발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됐는데 우리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남북고위급회담을 그 다음날 8월 5일 날 제안을 합니까? 이게 우리 군하고 통일부하고 이런 부처 사이에 서로 전화 한통도 안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 전날 현지부대가 조사를 해서 8월 4일 날 북한군이 지뢰도발을 해가지고 우리 하사 2명이 그런 중상을 입었는데 그 다음날 통일부장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하고. 이거 좀 정신 나간 짓 아닙니까? @ 한민구 국방부 장관
저희들은 그 관련된 사항을 상부 보고선에 보고를 드리고 했는데, 정부 차원에서는 대화와 압박을 병행한다는 그런 정책 가지고 있으니까 통일부에서 그런 조치, 계획된 조치를 하지 않나 생각이 되고 앞으로 통일부하고 협조나 이런 것들을 좀 더 강화하도록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아니 근데 청와대 NSC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기에 8월 4일 날 현지부대가 조사해서 북한 도발일 가능성이 큰 걸 알았으면 그 즉시 국방부는 물론이고 통일부 이런 유관 부서들이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 뭔가 생각을 하고 그래야지, NSC는 8월 8일 날 열리더라고, 그걸 보복할 시점도 다 놓치고

 유승민 의원이 "정신 나간 짓 아니냐"고 질타한 게 많이 부각됐지만, 사실 이 문답에서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들어있습니다. 먼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사고가 발생한 4일 늦게 북한의 도발에 의한 지뢰 공격이라는 보고를 받았고, 이걸 상부 보고선에 보고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미는 자신보다 상부인 청와대에 ‘북한의 지뢰도발’이라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사고 발생 당일인 4일 이미 설명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청와대는 부처 간 조율을 시도하지 않았고, 이것을 미리 걱정한 한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한다는 정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자신의 해석까지 같이 답했습니다. 두 번째는 유승민 의원의 질의에 들어 있는데, 사고 당일인 4일 현지 군단이 조사한 내용이 국회에 전혀 보고가 안됐다는 겁니다. 청와대에도 보고됐다는 현지 군단의 조사 내용을 보면 군이 이번 사건을 초동 단계에서 어떻게 규정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발칵 뒤집힌 청와대, ‘얼빠진 장관’ 만든 국방부

 한민구 장관의 발언이 알려진 뒤 당장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제(12일) 오후 국방위가 끝나자마자 브리핑을 하고 지뢰도발에 대한 상황 보고를 받은 시점을 재정리했습니다. 가장 핵심은 사건 당일이 아니라 다음날인 5일 오후에 김관진 안보실장이 대통령에게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5일 오전에 열렸던 경원선 복원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조사가 진행됐던 만큼 통일부가 고위당국자간 남북 대화를 제안한 것도 이상할 게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국방부도 청와대 해명 직후 바로 기자들에게 장문의 해명 문자를 돌렸습니다. 장관의 발언을 '기억에 의존한 착오'라며 부인했습니다.

<국방부 대변인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8.12)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목함지뢰로 추정된다'라고 상부에 보고한 시기가 8월 4일이라고 언급하였으나, 이는 기억에서 의존한 보고 과정에서 단순 착오였음. 이어지는 다른 의원의 동일 질문에 8월 5일이라고 보고했다고 발언하였음. 이 내용은 오늘 청와대에서 설명이 있었고, 관련하여 국방부 입장도 동일합니다. (이하 생략)

 여기에 등장하는 이어지는 다른 의원은 새정치연합 권은희 의원입니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오후 질문에서 권 의원이 유사한 질문을 했는데, 이에 대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5일이라고 답을 했다는 겁니다. 당시 한 장관의 답변 가운데 일부를 옮겨봅니다.

@ 한민구 국방부 장관
다 국가안보실을 통해서 대통령께 보고 드린다고 하는 일반적인 입장을 말씀드리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국가안보실에서는 8월 4일 날, 지뢰 사고 상황 보고를 대통령께 드렸고 8월 5일 날 이것이 북한의 목함지뢰로 추정된다고 하는 보고를 드렸습니다.

 한 장관의 오후 발언을 자세히 보면 주어가 국방부에서 국가안보실로 바뀌어 있습니다. 오전에는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께 어떻게 보고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오후에는 안보실의 보고 시점과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4일 날 군단에서 올라왔다는 '북한 소행 추정 지뢰 공격'이라는 최초 보고를 안보실에 올렸다는 걸 정확히 특정해서 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다음날(13일) 정례브리핑에서 장관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김 대변인은 국방부가 "4일날은 일단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고한 것이고, 5일에는 오후에 북한제 목함지뢰라는 것을 정리해서 보고한 것이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관이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까 착각한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대변인이 장관의 발언을 기억을 잘못해 나온 실언정도로 해명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장관을 일순간에 얼빠진 사람으로 만드는 이런 브리핑은 매우 드물고, 인사권자인 장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장관의 직무유기이거나, 청와대의 보고누락이거나

 국방부의 해명을 믿는다면 국회에서 규탄 결의안이 채택될 정도로 중요한 지뢰도발이라는 사안을 기억에 의존해 대충 말한 한민구 장관은 직무유기를 한 셈입니다. 게다가 주변 참모들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보통 국회 답변 도중 사실관계가 틀렸을 경우, 보통 몇 분 지나지 않아 사실관계를 정정합니다. 당일 오후 발언에서조차 한 장관은 청와대 안보실의 보고에 대해서만 말했지, 국방부의 보고에 대해서는 정정한다고 정확히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청와대에서 해명브리핑까지 했으니 국방부 장관은 다음날 직접 브리핑이라도 해서 자신이 잘못 말한 부분을 설명했어야 합니다.

 만약 국방부가 마지못해 청와대의 해명에 맞춘 것이라면 일이 더 커집니다. 사고 당일인 4일 늦게 올라온 보고라도, 북한군의 소행으로 의심된다는 초동 조사 결과는 매우 중요합니다. 자고 있는 대통령을 깨워서라도 알려주고 경원선 복원 행사에서 나올 메시지를 손볼지 참모들끼리 논의했어야 합니다. 북한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할 예정인 통일부에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 보류하라고 전달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민하고 민첩한 대응을 했다는 흔적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 우리 국가안보시스템은 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일까?

 도발을 직접 당한 병사들은 나무랄 데 없이 사건에 잘 대처했습니다. 끔찍한 폭파 현장에서 전우애를 발휘하며 군인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군단에서 꾸렸다는 조사단도 국방부 장관이 처음 말했던 것처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이었다고 보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경사지가 있어 지뢰가 떠내려 올 수도 없는 곳에, 7월 22일까지 아무 일 없이 드나들던 통문이었다는 점 등을 현장에서 확인한다면 일단 외부 공격이었다는 걸 확인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군단에서 그런 초동 보고서가 사건 당일날 올라가지 않았다면 그것도 직무유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공격 주체가 북한이라는 점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비무장 지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와도 논의해야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서 북한 소행임을 확정해야합니다. 자칫 잘못 발표했다가는 북한에 역공의 빌미만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국방부와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혹시 처음 올라온 보고서를 보면서 '비무장 지대는 원래 지뢰가 많아', '지뢰 사고는 종종 나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한 건 아닐지 걱정입니다. 지뢰 도발 사건 다음날 최윤희 합참 의장이 음주 회식을 했다는 점도 이번 사안을 군 수뇌부가 얼마나 가볍게 봤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 시점 가지고 너무 시비 건다고 하기에 앞서, 우리 국가안보시스템이 과연 위기를 충분히 감지할 상태인 건지 철저하게 따져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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