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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여대생 성폭행 사망' 미궁으로…부실수사 도마

17년 전 대구에서 성폭행으로 숨진 계명대 신입생 정은희 양은 과연 한을 풀 수 있을까? 대구고법 제1형사부(이범균 부장판사)는 11일 정은희(당시 18세)양 사망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특수강도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49)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공범에게 범행 내용을 전해들었다는 증인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고 설령 증거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모순점이 많아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강간죄는 공소시효(10년)가 지나 특수강도강간죄(15년)를 적용해 K씨를 기소했지만, 법원은 '강도'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부실 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검찰이 즉시 상고하기로 해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수사당국이 강도 혐의에 추가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정은희 사건은 '황산테러 태완이'처럼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살인죄에 관한 공소시효 폐지를 끌어낸 태완이 사건과 달리 정은희 사건은 특수강도강간 혐의가 적용됐고 이런 범행 후 정양이 차에 치여 숨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 사건 경위…다시 미궁으로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계명대학교 새내기 정은희 양이 대구시 달서구 구마고속도로 (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23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양의 속옷이 발견됐습니다.

정양이 쓰러진 고속도로에는 그의 책과 리포트 종이들이 가방과 함께 갈기갈기 찢겨 있었습니다.

정양의 학생증과 책 세 권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나 영구 미제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13년이 지난 2011년 K씨가 검거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성매매 권유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K씨의 DNA가 정양 사망 때 속옷에서 나온 DNA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유족들은 2013년 대통령 비서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대구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재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K씨를 붙잡아 지난해 5월 대구지법에 세웠으나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가 나왔습니다.

이에 검찰은 항소심 재판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국내 거주 스리랑카인 노동자들을 전수조사했습니다.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특수강도강간 혐의 입증에 주력했습니다.

검찰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특수강도강간 혐의에 대해 11일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영대 대구지검 제1차장 검사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아쉽다"면서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허술한 수사'…무죄날 줄 몰랐나 1998년 경찰이 부실하게 끝낸 정은희양 사건 수사는 검찰에서도 삐거덕거렸습니다.

항소심에 대비해 검찰이 K씨의 강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국내 모든 스리랑카인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공범 D의 지인이라고 자신을 밝힌 스리랑카인 H씨가 새로운 증인으로 나타났습니다.

H씨는 1998년 겨울에 지인 10명 정도 모인 자리에서 D에게서 범행 과정과 전반적인 내용을 10분∼15분 전해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하고 H씨의 증언을 전문진술(남에게서 들은 얘기에 의존한 진술)로 기술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정양 속옷에서 나온 유전자가 K씨의 것과 같아 강간 혐의는 명백하며, 강도 혐의는 H씨의 증언으로 전문진술로 활용하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이 내세운 H씨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증인 H는 검찰의 사전 수사에서 피해자가 당시 치마를 입었다고 진술했으나, 실제 재판에선 '치마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며 "전문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의 부실한 수사 역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 사건은 17년 전 경찰 수사 때부터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지난해 대구고·지법 국정감사에서는 수사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경찰에 이어 검찰 수사도 미흡해 피고인 혐의를 입증할만한 마땅한 증거나 증인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정양의 아버지 정현조(68)씨는 "여러 정황상 애초부터 K씨는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씨는 "억울하다. 수사기관은 그동안 수사 자료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사건이 발생한 1998년에도 수사가 엉망이었다"고 호소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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