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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끊이지 않는 교내 성범죄…절반이 다시 교단에

지난달 말, 서울 서대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장을 포함한 남자 교사 5명이 최소 여교사 8명과 여학생 20명을 잇따라 성추행 또는 성희롱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교육당국이 갖가지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 학교 교장은 SBS 취재진의 질문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해 잘 끝난 일을 다시 언론이 터뜨린 거라며 별일 아닌 것 갖고 그런다고 내심 억울해 했습니다.

"회식자리에 전부 다 같이 있는 데서 술 먹고 노래하다 실수한 건데, 쌍방합의를 한 겁니다. 서로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경찰에 고소도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 학교 여교사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이런 부분에 대해 개념이 없으신 분이고, 그러니까 본인도 성추행을 하죠. 같이 못 있겠다는 (피해)교사에게 윽박지르고 화내고 그랬던 분이에요."  

● 성범죄 만연한 학교…"아예 전학시키자"

취재진이 어렵게 접한 한 학부모는 딸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습니다. 상습성 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교사가 관리하던 '성적 우수반'에 다니던 딸은 이 선생님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엉덩이 만지고 그래서 왜 이러시냐면서 엄마한테 얘기하고 신고하겠다고 말했대요. 그랬더니 너네들 이렇게 하면 좋은 대학 못 가, 이러면서."

이 학부모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학교 여교사와의 상담 내용이었습니다.

"상담하던 여자 선생님이 어느 선생님 얘기하는 것이냐고 하더라고요. 미술 선생님인가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교사들 사이에 성범죄가 만연한 상태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여교사도 피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사도 성범죄 피해자란 생각이 들자 학부모는 자녀를 전학시켰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한 해 동안 이 학교를 떠난 학생은 52명이나 됐습니다.

● 여교사도 성범죄 피해…"실명으로 수사 의뢰하라?" 

지난 회기 인천시의회 교육위원을 했던 노현경 씨는 3년 전 익명의 여교사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투서를 받았습니다.

"노래방을 2차로 잡고, 교장과 블루스를…. 교장도 덩달아 술을 핑계로 여교사들의 손을 잡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은 일부 학교 관리자에게 성추행, 술시중, 1박 출장 동행 등 기쁨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동료 시의원은 물론 인천 교육청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미온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노 씨의 말입니다.

"교육청이나 동료 의원들은 내용이 소설 같다고 했어요.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인데도 교육청에선 익명으로 온 투서라서 믿을 수 없다, 좀 소설 같은 내용이다, 그러면서 조사 의지가 전혀 없었어요."  

노 씨는 단독으로 조사에 들어갔고, 교육청도 마지못해 60개 학교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총 13건의 교내 성범죄를 적발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징계로 이어진 건 단 1건에 불과했습니다.

"감경 사유를 붙이더라고요. 다 교단에 있어선 안 될 사람들인데. 3~40년 교직생활 하면서 훈장 하나 안 받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감경 사유더라고요."

취재 결과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 가운데 파면이나 해임 결정을 받은 경우는 47%에 불과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53%가 다시 교단에 돌아왔다는 겁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밝혔던 피해자들과 동료 교사들에 대한 보호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교원소청심사위…성범죄 교사들의 교권 보호? 

재단이나 학교 측으로부터 부당한 압력이나 처분을 받았을 때 이를 구제해주기 위한 기구가 교육부 산하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입니다. 그런데 성범죄 교원의 절반 이상이 학교로 돌아오는 것도 이 교원소청심사위의 '구제' 덕분입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원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교원소청심사위를 거쳐 징계가 경감됐습니다. 이 밖에도 금품 수사나 학생 폭행 등 주요 비위를 저지른 교원의 43%가 징계를 낮춰 받았습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진단입니다.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교권이 과연 있을까요? 아무리 교권이 중요하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현장에 있는 학생입니다. 학생의 인권이 침해되는 교권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교육부 고위 공무원과 오랜 경험을 가진 교육자가 심사위원 역할을 합니다. 솜방망이 처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나영 교수입니다.

"심사위원들이 대체로 교사거나 교육부 공무원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죠. 동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을 수 있어요. 혹시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가해자를 보호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어요."  

● 폐쇄적인 학교 구조, 전권을 쥔 관리자

학교에서 성범죄 피해자는 어린 학생들이나 여교사들입니다. 이른바 철저한 갑을관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성범죄를 당한 여교사들의 심정을 노현경 전 인천시 교육위원이 대신 전해줬습니다.

"학교 내 문화라는 게 굉장히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입니다. 구조적으로 교사에 대한 근무평가, 전보, 승진과 관련된 평가권이 관리자에게 있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성범죄 피해를 받은) 많은 여교사들이 그런 얘길 했어요. 내가 오죽하면 오지에 가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승진 점수 다 땄겠냐고. 그런데 관리자(교장, 교감 등)의 개가 되느니 포기하겠습니다. 그거 되지 못해서 포기했습니다, 이렇게요."    

● '법'이 없었던 적은 없다…적용을 잘 안 할 뿐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무슨 큰일이 터지면 대책을 연달아 발표합니다.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련법이 없었던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법 적용을 제대로 안 한 것입니다. 교내 성범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노현경 전 의원의 말입니다.

"법도 있고 제도도 있습니다. 성고충심의위원회, 교원고충심의위원회 그런 데에 문을 두드릴 수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용기를 내서 학교를 떠날 각오를 하고 그 교장을 다시 보지 않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못해요. 그리고 학교에서 그런 피해를 입을 때 그 피해를 해결해줘야 하는 관리자가 오히려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하는 가해자일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교내 성범죄는 공소시효가 2년에서 최근 3년으로 연장됐습니다. 하지만 교내 성범죄는 특징이 있습니다. 불거지기 쉽지 않지만 일단 수면 위로 드러나면 피해자가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따라서 공소시효에 대한 적극적인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또 '실명'만 고집하는 수사기관의 태도도 전향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수사기관에 가는 길이 너무나 멀고 힘듭니다. 이 과정에서 소중한 직업을 잃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찰 간부 출신인 박상융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피해자가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게 하거나 교장 선생님을 통해서 고소를 하게 하거나, 이런 것은 일반 사건처럼 하는 것인데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학교라는 특수성을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학교엔 담당 경찰관이 있습니다. 폭력만 관리할 게 아니라 성범죄도 살펴보도록 해야 합니다. 인지 수사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성폭행이나 성추행 사건은 친고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고소가 없어도 수사할 수 있거든요. 피해자가 손쉽게 법에 호소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학교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런 학교에서 성범죄 사건이 올 들어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적발되고 있습니다.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돌아오는 교사들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다면 똑같은 사건은 일주일 뒤, 한 달 뒤, 아니 1년 뒤에도 똑같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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