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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신입 공무원의 위대한 '깐깐함'



지난 7일 프랜시스 올덤 켈시 박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101세.

아마 익숙한 이름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켈시 박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무원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시카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켈시는 1960년 미국 FDA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접수된 신청서에 적힌 제품명은 '케바돈'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진정제였습니다.

이 약은 유럽에서 수면 진정 효과가 있다는 허가를 받아 1957년부터 팔리고 있었고, 임산부의 입덧 방지제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켈시 박사는 판매를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판매를 허가하기에 충분한 정보가 없다며 제약회사에 더 많은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했던 제약회사 윌리엄 S. 머렐 사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제약회사는 FDA 고위층에게 "쪼잔한 관료"라며 켈시 박사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신청서를 제출해도 켈시 박사는 여전히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켈시 박사가 버티는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1961년 2월 영국의 의학저널에 탈리도마이드가 팔, 다리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글이 실렸습니다. 8월,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탈리도마이드 성분을 쓴 약품은 곧바로 회수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 임산부의 탈리도마이드 때문에 팔, 다리가 없거나 눈 등이 변형돼 태어난 아이가 1만 2천 명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원칙을 지킨 공무원, 켈시 박사의 깐깐함 덕분이었습니다.

켈시 박사는 곧바로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공무원에게 주는 최고 영예의 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그녀는 계속 공무원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약회사의 임원으로 가거나, 로비스트로 일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90살까지 FDA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5년 은퇴했습니다. FDA는 2010년 최우수 직원에게 주는 '켈시 어워드'를 제정해 그녀의 공로를 기렸습니다.

평범한 신입 공무원이던 그녀의 용기와 깐깐함 덕분에 미국은 기형아 대량 출산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켈시 박사가 지금 우리나라에 있다면 어떨까요? 거대 기업과 이권에 맞서 갓 부임한 공무원이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세상을 떠난 켈시 박사의 용기와 그녀를 기리는 미국인들의 자세를 보며 우리의 현실을 생각합니다.

(기획/구성: 임찬종 그래픽: 안준석)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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