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부에선 엉뚱하게도 “‘언론 보도’가 체감 치안의 절대적 요소”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언론에서 “떠들면 문제”고, “잠자코 있으면 문제없다”는 인식이다. 경찰 일각에서 본업인 범죄 예방과 수사 보다 인형 탈 쓰고 춤추며 SNS까지 동원한 ‘홍보’에 목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조직이라고 다르겠느냐만, 이런 식이라면 미담은 알리고 사건은 숨기는 걸 당연시하게 된다.
최근 학교에서 경악스런 성범죄가 있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정작 수사하는 경찰은 숨기기에 급급하다. 성폭력 전담팀을 지휘하는 서울경찰 생활안전부서 고위 간부는 “성범죄 사건에 대해선 일절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며, 보도로 인해 피해 여성이 정신적 충격을 받는 등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수사 기관은 피해자가 특정될 정보를 타인에게 누설해선 안 된다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들먹이기도 한다.
“언론 보도가 피해를 부른다”는 사고도 옹졸하지만, 이런 기준이 다른 사건에선 지켜지지 않는 걸 보면 결국, 자신들이 다루는 성범죄 사건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길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성범죄) 체감 안전도’를 높이고자 하는 욕망이 감춰져 있다.
‘국민의 알권리’가 존재 이유인 언론 생각은 다르다. 시민 스스로 주변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내 안전을 해치는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언론이 사건과 사고를 보도하는 까닭이다.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스스로의 안전보장 방안을 궁리하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고민한다. 경찰이 지켜주지 못 하는 치안은 스스로 지키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범죄 보도는 언론으로서도 조심스러워 피해자의 신상을 취재하는 경우도 없고, 보도할 때도 피해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
이번 ‘서대문구 공립고 성추행 사건’에서도 부모들은 보도를 통해서야 내 아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알게 됐다. 이윽고 아이에게 대처 방안을 일러준다. 학교와 교육당국의 역할을 따져 묻는다. 학교와 경찰이 먼저 나서서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다. ‘성추행 교사 비호 의혹’에서 보듯, 학교장의 대응은 대개 한심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수사 중임을 빌미로 학교장에게 ‘쉬쉬할 것’만 요구한다. 지난달 13일 <SBS 8뉴스>에서 보도한 ‘서울 중랑구 초등학교 교사 성추행’ 사건 때도 학교장은 ‘경찰 핑계’를 대며 진상 파악조차 않고 덮기에만 급급해 빈축을 샀다.
시민이 느끼는 치안 안전도가 언론 보도에 휘둘린다는 건 경찰만의 낡은 생각이다. 교양을 갖춘 시민이라면 미디어에 노출된 내용을 잘 걸러서 수용하고 자신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활용한다. 사건사고 보도를 본 시민이 곧바로 동물적인 불안에 떨고 삶에 지장이 생길 거라 믿는 건 국민을 7살짜리 아이 수준으로 여기는 무례거나, 미신이다.
'성추행 공립고’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에서도 경찰은 59차례에 걸쳐 1만5천여 명 학생을 만나 범죄예방교육을 했고 범죄 신고 44건을 접수했다. 그런데도 조직적인 교사들의 성추행은 학생 신고를 통한 교육청 자체 감사에서나 드러났다. 경찰이 범죄 예방에 실패한 셈이다. 체감 치안 운운했지만, “사건 보도를 원치 않는다”는 말 속엔 자신들의 잘못을 언론과 시민이 알까 두려운 보신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경찰이 바라는 ‘체감 치안 향상’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확실한 범죄 예방과 좌고우면 않는 수사로 국민 신뢰를 얻는 것이다. 국민은 경찰이 내 곁에 존재하는 위험을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누가 알면 안 된다는 비밀주의로 포장해 만든 체감 치안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런 식이라면 수 백 번 학생들을 만난들 범죄 예방은 커녕 ‘감출 일’만 반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