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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올해의 작가상 2015’를 소개합니다.

[취재파일] ‘올해의 작가상 2015’를 소개합니다.
절정의 휴가철을 맞은 요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입니다. 어제 문을 연 ‘올해의 작가상 2015’ 전시를 취재하기 위해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습니다.

4회째를 맞은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국내의 권위 있는 현대미술 작가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국내 중견작가들을 대상으로 일정 수의 후보군을 선발해 작품 전시를 지원하고, 이 가운데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 뒤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국내외 활동과 홍보를 지원합니다.

제 1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인 문경원 · 전준호 작가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대표작가로 참여했을 만큼, 국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작가들이 후보와 수상자가 됩니다. 따라서 매년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가까운 미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 오인환 작가의 <사각지대 찾기>

천장에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가 넓은 전시장을 쉴 새 없이 감시합니다. 휑한 전시장에는 숨을 곳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벽과 천장의 짙은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모두 ‘사각지대’입니다. 사람들이 전시장의 한쪽 구석으로 이동하는 순간 그들은 어느새 폐쇄회로 카메라의 수상기 화면 바깥으로 사라집니다.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여러 개의 모니터에서는 일상에서 개인들이 경험한 사각지대 찾기의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군복을 입은 전역자들은 인터뷰에서 병영생활 중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을 찾았던 개인적 경험을 소개합니다.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공간상의 사각지대를 시각화해 보여주고, 그 의미를 사회문화적 차원으로 확장합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사적 공간을 찾는 과정이, 작가는 집단주의적 사회 속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내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 나현 작가의 <바벨탑 프로젝트-난지도>

전시장에는 바벨탑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이 세워지고, 그 표면엔 난지도의 흙과 귀화식물이 이식됐습니다. 구조물 위로 올라가면 나무로 만들어진 깊은 우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속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옵니다.

구조물은 내부에도 공간이 있어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관객들의 머리 위에 위치한 3개의 모니터에서는 파독 간호사 출신 여성 등 외국 땅에서 살아가는 한민족의 인터뷰 영상이 흐릅니다.

과거 독일 ‘악마의 산(제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재건과정에서 발생한 전쟁 쓰레기를 베를린 서쪽의 한 지역에 쌓아두면서 생긴 높이 120m의 인공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 제작을 한 적 있는 작가는 한국의 난지도에서도 비슷한 퇴적의 역사를 발견했습니다. 1978년부터 93년까지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서울에서 발생한 대량의 쓰레기들이 서울의 서쪽 끝, 난지도에 쌓였습니다.

작가는 난지도의 흙과 식물이 이식된 거대한 구조물을 세움으로서 난지도가 품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특히 그 구조물을 바벨탑 모양으로 쌓아올려, 성서는 물론 역사 기록에도 남아 있다는 바벨탑의 상징적 의미와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 하태범 작가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전시관에 들어서면 복도의 새하얀 양쪽 벽면을 따라 동시대에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 사고 보도의 헤드라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피가 낭자했던 사건 사고의 헤드라인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표현된 모습은 고요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합니다. 

테러와 전쟁, 재난의 현장은 모형으로 만들어져 사진 속에 담겼습니다. 보도사진 속 어린 난민과 전사의 얼굴은 백색 부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담은 보도물들이 미술작품으로 재해석된 겁니다.

작가는 이런 작업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시선’을 클로즈업해 보여주고, 그걸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도 되돌아보게 합니다. '미디어가 지닌 일각의 정치적 태도와 그 결과물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 사회의 단상을 지적하고 싶었다'는 설명입니다.


● 김기라 작가의 <떠다니는 마을>

전시관에 내걸린 동영상들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은유적인 이미지로 풀어냅니다. 서울역에서 국립현대미술관까지 이동하면서 작가가 끈에 묶어 직접 끌고 다닌 작은 카메라는 노면의 높이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습니다.

어두운 전시관의 내부로 들어가면 더 많은 동영상이 등장합니다. 영화감독, 신경정신과 의사, 무용가, 연기자,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완성했다는 이 동영상들을, 작가는 ‘떠다니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냅니다.

작가는 '공동선이라는 명제 아래 대한민국의 역사, 이념, 정치, 세대, 지역, 노사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 충돌 양상을 심미적 관점에서 풀어냈다'고 설명합니다. 사회적 담론을 촉발하는 예술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는 겁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현대미술의 흐름은 국내 작가들의 이번 작품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회상을 적극 반영하는 동시에 표현방식은 한층 과감해졌습니다. 특히 4명의 작가들이 채택한 서로 다른 예술적 표현방식은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킵니다.

현대미술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감상에 나선다면 흥미로움을 넘어 신선한 자극을 받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후텁지근한 날이 이어지는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여유로운 나들이를 떠나 보는 건 어떤가요?     

▶ 사회적 고민 품은 현대 미술 '올해의 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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