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과태료의 존재 이유

[취재파일] 과태료의 존재 이유
장애인 주차 구역 단속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다. 각 지자체는 사회복지과 소속 공무원 1~2명에게 이 업무를 맡긴다. 물론, 이 직원은 이 업무만 전담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장애인 복지 업무도 함께 봐야 한다. 그래서, 담당 공무원은 단속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속을 나가지 못한다. 대신 시민의 신고에 의존한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위반 차량의 사진을 찍어 시군구청 홈페이지와 민원신고 어플리케이션에 올린다. 지자체는 또, 장애인 관련 단체 회원과 직원들을 활동 요원으로 임명해 한 달에 3만 원의 활동비를 주며 '점검' 업무를 맡긴다.

활동 요원들은 부정기적으로 점검을 나가는데, 한 번 나가면 하루에 5~6시간 씩 장애인 주차 구역을 돌며 위반 차량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시한다. 이들이 두 눈을 부릅 뜨고 위반 차량을 열심히 신고하기에, 지난 2014년 1년 동안에만 전국에서 10만 건이 넘는 위반 사례가 신고되었다. 

그런데, 경기도 장애인협회가 지난 몇 년 동안 활동 요원으로서 자신들이 신고한 건수에 얼마나 과태료가 부과되었을까를 조사했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경기도 내 31개 시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한 결과인데, 지난 2014년 과태료 부과율이 45%에 불과했던 것이다.

1년 동안 활동 요원의 신고 건은 2,300여 건, 과태료를 부과한 건은 1,000여 건이었다. 그나마 지난 몇 년보다는 나아진 수치이다. 2012년 과태료 부과율은 31%, 2013년은 34%였으니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일부 지자체의 경우에는 신고된 단 한 건에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핑계는 다양했다. A시는 위반 건이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과태료를 부과하기 보다 경고나 계도로 대신한다고 설명했다. B시는 사진의 해상도가 좋지 않아 번호판 식별이 불가하다는 이유를 댔다.

C시는 위반 사항과 과태료 부과는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단체에게 알려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D시는 자신이 이 업무를 맡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전 담당자가 인계를 해주지 않아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몇 년 연속으로 과태료 부과율 0%를 기록한 시에 물었더니, 공무원은 볼멘 소리를 한다. "과태료 물리면 이의 제기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업무를 할 수가 없어요. 내가 혼자 다 감당할 수가 없어..." 억울하다고 이의 제기를 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일일이 다 들어주다 보면, 업무 마비가 걸린다는 것이다.

담당자 한 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털어 놓는다. 게다가 요즘에는 민원 신고 어플리케이션까지 등장해서, 신고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태료를 부과하려면, 위반 차량 번호, 장애인 주차 표지판, 운전자의 전화 번호 등이 모두 확인이 되어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과태료 부과는 공무원만의 권한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이걸 하나하나 다 확인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과태료를 물리기가 애매하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공무원은 믿기 어려운 변명까지 한다. "시장이 장애인 주차 단속 너무 세게 하지 말라고 했다."라는 것이다. 설마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은데, 협회 측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단다.

장애인 주차 단속이 지자체의 권한인 만큼, 지자체장과 담당 공무원의 인식과 성향에 따라 단속 결과가 천차만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업무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서, 인사가 나는 해마다 지침이 180도씩 달라지기도 한단다. 

장애인 주차 구역의 책임의 주체인 보건복지부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보건복지부도 신고 건수와 과태료 부과율을 정기적으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실에서 자료 요청이 들어와야만 통계를 내는 실정이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 방해 행위에 대해 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령을 새로 마련해 시행하면서, '예외없는 과태료 부과'를 요청하는 공문을 지난 4월 각 지자체에 내려 보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지자체에 반영되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장애인 주차 구역 위반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률은 지난 1998년 4월 처음 시행되었다. 그 이후 거의 매년 개정을 거듭하고 있는데, 여전히 위반은 빈번하다. 과태료 부과 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 구역에 대해 취재를 하다보니, 시민 의식에 아쉬움이 남았다.

17년이나 시행되고 있는데도 아직 장애인 주차 구역이 있는지도 모르는 운전자가 수두룩 했고, 왜 장애인 주차 구역이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필요성도 간과하고 있는 운전자도 많았다. 몇몇 운전자는 비장애인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불만을 품고 있기도 했다. 

가장 좋은 것은 교육과 홍보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배려 의식을 키우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과태료라는 '방책'을 내세우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정부가 장애인 주차 방해 행위에 대해 50만 원의 과태료까지 신설하고, 일반적인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에 대해서도 과태료를 현재 1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중인 건, 분명히 '과태료'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존재 이유에 맞는 정책 시행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