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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급차, '빈 차 아냐?' 의심 보다는 비켜주는 '배려' 절실

"빈 차 아냐?" 구급차 막고 시비

지난 7월 31일 저녁 7시 반쯤, 한 사설 구급차가 포천에서 서울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었습니다. 차 안에 타고 있던 40대 환자는 전기 시공을 하다 감전사고를 당한 근로자였습니다. 왼손에 입은 화상은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전문적인 감전사고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이었습니다.

포천에서 의정부로 향하는 43번 국도는 왕복 4차로인데, 출퇴근 시간에 늘 막히는 길이었습니다. 갈 길은 급하고, 차는 막히고.. 다행히 사이렌 소리에 양보해 주는 일부 운전자들 덕분에 꾸역꾸역 길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차로로 가던 승용차가 차로 두 개를 모두 차지하고 구급차 앞을 가로막은 겁니다. 다짜고짜 차를 막아선 남성은 차에서 내려 구급차 기사에게 소리쳤습니다.
 
 "당신들 허가받았어? 이게 지금 허가받고 하는 거냐고?" 

● 남자는 왜 차를 막아섰나? 
남자는 왜 차를 막아섰을까요. 소리를 치며 구급차에 다가간 남성은 처음에는 허가를 받았는지 물어보더니 다짜고짜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남자는 당당하게 자신의 전적(?)을 자랑합니다.

"사람 탄 게 맞아? 너희 뻥카(거짓)로 출퇴근 시간에 사이렌 키고 다니고, 내가 신고를 두 번이나 했어." 

그러니까, 막히는 길을 빨리 지나가려고 환자도 없으면서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습니다. 

답답해진 구급대원들, 소리도 치고 설명도 해보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문을 열어 환자를 보여주기에 이릅니다. 할 말이 궁색해진 남자, 보기에는 환자가 멀쩡해 보이니 다시 따집니다. 
"이게 위급한 환자냐고, 위급한 환자냐고 어?" 

차에 보호자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동승하고 있었다면 이런 말을 듣고 쉬이 넘어갈 가족이 있을까 싶습니다. 

동승하던 구급대원이 설명했습니다. 

"당신 몸에 전기가 흘렀다고 생각해보라. 감전사고 났는데 멀쩡하겠냐고. 환자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
 "책임질 테니까, 당신들 출퇴근 시간에 사이렌 울리고 다니지 마라." 

남성은 이렇게 약 3분간 행패를 부리다가 차를 뺐습니다. 43번 국도의 난동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 사설 구급차? 119구급차? 뭐가 다르기에…
구급차는 크게 소방방재센터에서 운영하는 119구급차와 사설 업체가 운영하는 사설 구급차가 있습니다. 119구급차는 1차로 사고현장에 출동해 응급처치한 뒤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합니다.

긴급 수술이 필요해 의사가 요청하는 경우, 상급 병원으로 한 차례 더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시 소방서로 복귀해 다음 출동에 대비합니다.

사설 구급차는 주로 병원 간의 이송을 맡습니다. 상대적으로 119구급차보다 긴급도가 적을 수 있고, 적용되는 법률도 다릅니다만 그렇다고 그들이 늘 한가한 것은 아닙니다. 병원 간 이송이 촌각을 다투는 급한 일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다치는 대형 재난이 났을 경우엔 소방서의 요청에 따라 현장에 응급출동을 나가기도 합니다. 
이번 환자의 경우도 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환자는 왼손에 붕대를 감았을 뿐 큰 외상이 없어 가벼운 환자로 보일 수 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내부 블랙박스를 보면 환자는 그 소란의 와중에도 고개 한 번 돌리지 못했습니다.

구급대원의 말에 따르면, 전신주에 흐르는 고압선이 몸을 통과한 이 남성은 당시 의식은 있었지만 제대로 걷지 못했고 오른팔에는 마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감전 사고의 경우 장기 손상이 있을 수도 있고, 몸속에 남은 전류가 심장 박동에 영향을 주는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가 없다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겁니다. 

● 처벌 할 방법은 없나? 
잘못하면 한 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도 할 수 있었던 이번 사건, 법적인 책임은 없는 걸까요? 도로교통법 제29조에 따르면 모든 차는 긴급자동차가 접근하는 경우 갓길로 피하거나 가장자리에 일시 정지해야 합니다.

피해 주지 않은 사실이 녹화되는 등 입증이 가능한 경우,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또 관할 포천경찰서에 따르면, 운전기사가 원할 경우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입건이 가능합니다. 

119구급차의 경우에는 처벌이 조금 더 무겁습니다. 소방기본법 제21조에 따르면 모든 차와 사람은 구급차를 포함한 소방자동차의 출동을 방해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인데 처벌이 너무 적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1월에도 응급환자를 태운 구급차를 가로막고 보내주지 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뇌병변을 앓고 있는 4살 아이를 싣고가던 구급차가 사고를 내자, 승용차 운전자는 '사고 수습 먼저 하고 가라"며 한참 동안 구급차를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 [취재파일] 아이 죽어가는데…구급차 막아선 운전자 

또 지난 4월에도 서울 영등포에서 택시 기사가 차를 비켜주지 않고 외려 구급차 유리창을 치는 등 운전기사를 위협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구급차 안에는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해 수동식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해줘야 하는 중환자가 타고 있었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였습니다. 구급차 운전자는 말이 안 통하는 택시 기사를 잡고 환자를 직접 확인시켜줬습니다. 택시 기사는 "그래도 그렇지 사이렌을 이렇게 울리는 게 어딨느냐"고 끝까지 따지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고 합니다. 

● 긴급 자동차, 의심보다는 배려가 절실
이 남성의 말에 따르면, 남성은 최소한 두 차례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길을 막아섰습니다. 그 가운데 자신이 적발한 사례만 두 차례니, 이런 단속 활동을 얼마나 더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구급차 운전자들은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환자를 보겠다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고의로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거나 위협운전을 하며 욕설을 하는 경우는 자주 겪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의심은 일부 사설 구급차의 권한 남용에서 비롯됐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연예인을 태우고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고, 집에 가는 길에 차가 막힌다고 사이렌을 울리고 도로를 질주한 사설구급차 운전자를 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남용의 사례는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런데 그런 권한 남용 사례를 우리가 단속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99대의 구급차가 권한을 남용해 다니더라도, 우리는 1분 1초라도 앞당겨야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한 대의 구급차를 위해 길을 터줘야 합니다.

설령 빈 구급차라 하더라도, 그 구급차를 애타게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급하게 사이렌을 울리고 가는 차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달린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그 1분 1초가 영원처럼 긴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 [단독] "위급한 환자냐고!" 구급차 막고 행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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