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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제2 수에즈 운하, 이집트의 미래를 바꿀까?

[월드리포트] 제2 수에즈 운하, 이집트의 미래를 바꿀까?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작성 2015.08.01 08:51 수정 2015.08.19 19:5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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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제2 수에즈 운하, 이집트의 미래를 바꿀까?
7월 26일은 이집트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1956년 이집트의 혁명가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영국이 지배해온 시나이 반도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 날입니다.

수에즈 운하에 관해 잠깐 짚고 넘어가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조그마한 역삼각형 땅이 시나이 반도인데, 이 시나이 반도의 왼쪽 끝에서 지중해와 홍해를 거쳐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뚫려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유럽에서 동아프리카, 아시아로 이어지는 물적 유통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빙 돌아서 가다가 시나이 반도를 가로질러 가니 시간과 돈이 얼마나 절약됐겠습니까? 수에즈 운하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항로가 보통 1만km 거리가 줄었습니다.

● 10년 만에 열린 물길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겠다는 생각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부터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네카우파라오가 최초의 수에즈 운하를 팠다는 주장도 있는데 운하라기보다는 배 2척이 겨우 지나갈 샛강 정도였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려고 했다가 지중해와 홍해의 해수면 차가 커서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바닷길을 내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지만 자본과 기술 부족으로 계속 실패했죠.

그러다가 1859년 프랑스의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투르크제국의 이집트 왕인 사이드 파샤에게 지분을 안기는 조건으로 시나이반도에 운하를 파는 세계적인 토목공사를 단행합니다. 99년간 프랑스가 운하를 쓰고 이후 이집트에 소유권을 넘기는 형태였습니다.

수만 명의 이집트인이 강제노역에 동원됐고, 운하가 지나가는 구역(이미 나 있는 샛강을 따라 운하를 팠습니다.)의 6만 헥타르 농지가 몰수되는 문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온갖 난관 끝에 지중해와 맞닿은 포트사이드에서 홍해의 수에즈까지 연결되는 192km의 초대형 운하가 10년 만에 완공됩니다.

당시 돈으로 1억 달러의 공사비가 들었습니다. 운하가 개통되면서 런던-싱가포르 항로가 케이프타운 경유로 2만 4500km인 것이 1만 5027km로 줄어들게 됐습니다.

그러다 1875년 영국이 이집트의 왕에게 지금 우리 돈 70억 원에 수에즈운하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수에즈 운하를 지배합니다. 영국은 이후 돈도 돈이지만 전 세계 물동량을 쥐고 흔들면서 유럽과 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지금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배 한 척의 평균통행세가 25만 달러(2억 7천만 원)라고 하니, 영국인이 1875년부터 1956년까지 80년간 얼마나 막은 돈을 거머쥐었을까요?

● 제2 중동전쟁의 도화선

하여튼 영국 입장에선 이런 꿀단지를 하루아침에 원래 내 것이었다고 빼앗아가니 화가 날만 하죠. "쟤들이 대영제국을 우습게 보네?"하면서 가뜩이나 알제리 독립을 지원하는 이집트가 미웠던 프랑스랑 손잡고 이집트 때리기에 나섭니다. 자신들이 직접 싸움을 걸면 덩치 큰 형들이 꼬마를 괴롭힌다고 소문이 나니 이집트와 앙숙이면서 싸움에는 도가 튼 상대를 앞에 내세웠는데 그게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렇게 해서 '수에즈운하 전쟁'으로 불리는 제2차 중동전쟁이 촉발됩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입니다. 단 5일 만에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다 손에 넣어버립니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이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겠죠? 영국과 프랑스가 뒤에 서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누구 좋으라고 시나이를 넘겨주겠습니까?

소련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미국이 등을 돌릴 줄 몰랐던 영국과 프랑스는 할 수 없이 이집트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미국이 소련과 한 편이 된 건 당시 상황이 미국으로선 제3세계. 소련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하고, 이집트는 갖고 싶은 수에즈운하를 결국 손에 넣습니다. 덤으로 자국 내 영국과 프랑스 은행마저 국유화해버립니다.

어쨌든 지고도 이겨버린 제2차 중동전쟁을 통해 나세르는 이집트의 영웅이 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게 얻어맞기만 했지만 그래도 소위 '맞짱'을 붙었다는 자체만으로 아랍의 지도자도 부상합니다. 나세르는 숨진 지 40년이 넘었지만 이집트 국민들은 여전히 나세르를 건국 영웅으로 사랑하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하여튼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는 돌아온 복덩이가 됩니다. 연간 2만 척 가까운 선박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합니다.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70%가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는 매년 50억 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의 통행세는 관광수입과 해외노동자 송금에 이어 이집트에서 3번째로 많은 외화벌이 수단입니다.

● 제2의 나세르를 꿈꾸는 엘시시

2014년 나세르가 되고 싶은 또 한 명의 이집트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경제 재건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는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입니다. 지난해 8월 전격적으로 수에즈 운하 옆에 나란히 제2의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집트의 힘으로 이집트의 미래를 창조하겠다면서 해외 투자도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국민의 애국심을 활용한 '국민 펀드'를 모금했습니다. 이집트 시민이 얼마를 내면 국가채권을 발행하고 일정 기간 이자를 지급하는 형태의 펀드입니다. 의외로 많은 이집트인이 펀드에 동참했고 엘시시 정권은 27개 이집트 업체를 끌어들여 새 물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년간 80억 달러가 들어간 대공사 끝에 제 2의 수에즈 운하가 완공됐습니다. 수에즈 운하의 중간지점인 이스말리아를 중심으로 72km 구간의 새 운하를 완성했습니다. 화물선이 3척씩 양방향으로 통과하는 시험운행도 마쳤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오는 6일 세계 각국 인사를 초청해 성대한 개통식을 열 계획입니다.

장밋빛 청사진도 내놨습니다. 양방 통행이 가능하고 운하 통과시간이 22시간에서 11시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에즈 운하 통과 수입도 연간 50억 달러에서 2023년엔 150억 달러로 늘 것이라는 수치를 내놨습니다. 이른바 '파라오식 프로젝트'를 통해 1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이라고 선전합니다.

● 이집트 미래 걸린 첫 단추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의 전체 길이는 192km인데 제2 수에즈 운하는 72km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수치상 3분이 1밖에 안 되는데 시간이 어떻게 절반으로 줄어드냐는 겁니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수치는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 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전제로 한 것인데 통과시간이 두 배로 빨라진다고 해서 통과하려는 선박수가 그만큼 늘 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오히려 2008년 2만 1천여 척을 기점으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 수는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1만 7천여 척에 머물렀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의 대부분은 걸프 국가에서 유럽으로 가는 원유입니다. 유럽 경제가 요즘 말이 아닐 정도로 불황을 겪는 상황에서 원유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시나이 반도의 불안감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집트 정부는 늘 100% 시나이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최근 들어 북부 시나이반도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공격은 강도를 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11월 IS에 충성을 서약하며 안사르 베이트 알 마크디스에서 '시나이 지역'으로 이름을 바꾼 이들은 2014년 2월 타바검문소에서 한국 관광객이 탄 버스에 폭탄테러를 벌인 이들입니다. 최근에 이집트 군경뿐 아니라 카이로의 이탈리아 영사관과 니제르 대사관에 폭탄과 총격 테러를 자행하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나이 반도를 가로지르는 수에즈 운하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들 IS 추종 세력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의 보안에 자칫 문제라도 생긴다면 '나세르 따라잡기'로 국민적 명성과 인기를 노리는 엘시시 정권에는 치명타가 될 겁니다.

이런 정치적 불안감과 경제적 오류에 대한 지적을 깨고서 이집트가 제2의 수에즈 운하를 통해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질 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또 수에즈에서 카이로로 가는 길목에 50조 원을 들여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신 이집트 건설 프로젝트'의 첫 단추가 제2 수에즈 운하입니다. 수에즈 운하가 잘 되어야 물동량도 늘고 주변에 산업단지도 조성될 것이고 거기서 거둔 수익을 바탕으로 행정수도 건설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첫 단추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꿰느냐에 따라 이집트가 구상하는 미래의 조감도도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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