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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통기한 '슬쩍'…미래에서 온 김밥?

'솔직한' 삼각김밥 먹고 싶어요..

[취재파일] 유통기한 '슬쩍'…미래에서 온 김밥?
점심 시간 노량진 학원가, 셀 수 없이 많은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전 내내 공부하느라 머리는 얼마나 아프고, 배는 얼마나 고플까. 하루에 얼마 되지 않는 쉬는 시간, 편안하게 쉬어야 할텐데 그게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학원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간다. 라면과 삼각김밥을 들고 계산을 하더니, 그냥 편의점에 마련된 코너에 서서 허겁지겁 먹는 것이다.

"잠시라도 앉아서 따뜻한 밥을 먹지, 왜 라면에 삼각김밥이에요?" "싸잖아요.. 그리고 얼른 먹고 복습해야 해요.." 미래를 위해 일분일초도 아껴쓰려는 마음인 것이다. 짠하기도 하고 동시에,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래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꿈을 이루세요. 화이팅!"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고 있는 점심 메뉴 삼각김밥. 그런데, 이 삼각김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유통기한 문제였다.
사실 여름철 김밥은 식중독 단골 메뉴이다. 만드는 즉시 먹어야만 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었다 싶으면 아까워도 먹지 말고 버려야 한다고 알고 있다. 햄과 계란 같이 상하기 쉬운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통기한이 중요한 음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김밥, 삼각김밥, 샌드위치, 햄버거 같은 제품에 표시되어 있는 유통기한을 살펴봤다. 구입 즉시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이  제품들에는 단순히 '0월 0일까지'라는 유통기한 뿐만이 아니라, '0월 0일 0시'라는 제조시간도 함께 표기해야만 한다. 짧은 시간 안에도 변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10개 업체에서 만든 제품들의 제조시간이 새벽 시간으로 되어 있다. "새벽에 제조를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한 식약처가 이 업체들에 점검을 나섰다. 

지난 6월 25일 서울의 한 삼각김밥 업체에 단속 요원들이 나타났다. 조리대에는 제조가 끝내고 납품을 하기 위해 포장해놓은 삼각김밥이 쌓여있었다. 삼각김밥에는 이미 라벨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제조시간이 '6월 26일 03시'? 지금은 25일 저녁 7시인데... 8시간이나 늦춰 적혀 있다. 아니, 이 김밥은 '미래에서 온 김밥'이란 말인가. 

보통 김밥, 삼각김밥의 유통기한은 제조시간으로부터 36~48시간이다. 이 업체처럼 제조시간을 늦춰 적으면 그만큼 유통기한이 길어지는 것이다. "요즘 메르스도 있고, 방학도 끼어 있어서 물량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빨리 만들고 들어가려고 그런거예요." 업체 측의 변명이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다른 업체도 똑같은 이유로 적발되었다.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납품을 해왔냐는 질문에 업체 측은 얼떨결에 사실을 털어놓는다. "언제부터가 아니라 이 계통이 다 그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배송시간, 납품시간이 있으니까 그걸 다 잡아서... 구청에서 다 이런 내용을 알고 있고..."

"뭐라고요? 구청에서 안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차 싶었는지, 얼른 입을 다문다. 유통기한 연장이 납품업체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관행이었나보다. 관할 지자체들도 알고 있지만, 업체마다 흔한 일이라 그냥 넘기는 모양이다. 식약처 담당자들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납품업체들이 대부분 영세중소업체이기 때문에 판매업자나 중간유통업자들이 유통기한 늘리라고 요구하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요."

식약처가 단속한 10곳 가운데, 5곳이 이렇게 유통기한을 '제멋대로' 늘렸다가 적발되었다. 1곳은 아예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은 제품을 보관해오다 걸렸다. 제품을 가지고 있다가 납품을 보낼 때 그 시점에 맞추어 유통기한을 적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적발된 양이 모두 6억 8천억 원 어치이다.

적발된 업체들이 납품한 판매업소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 천여 곳이 넘는다. 대부분이 편의점이고, 대학교 매점, 고속도로 휴게소도 있었다. 적발된 업체 가운데 1곳은 납품 계약이 2년 동안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미 2년 동안 유통기한 위조를 해왔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일단 업체가 가지고 있던 제품들은 다 폐기했지만, 이미 유통된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제품의 특성 상, 납품되면 대부분 다 판매업소에서 소진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적발된 양은 어쩌면 '세발의 피'일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이들 제품은 냉장보관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유통과정에서도 냉장보관이 되어 있었으면 아주 '위험'한 수준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냉장보관을 하면 유통기한을 넘겨도 '안전'한건지 알고 싶었다. 식품의 부패는 어느 정도 진행되는지, 세균 증식 속도도 빨라지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똑부러지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식중독예방과'라는 부서도 따로 있는데, 아직까지 이런 데이터가 없다는 게 이상했다.

이곳저곳 취재해보니, 지난 2007년 식품연구원에서 나온 논문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김밥과 샌드위치의 냉장조건에서의 유통기한에 대한 연구였다. 냉장 조건(섭씨 10도씨 이하)에서 '일반 김밥은 15~33시간, 삼각김밥은 32~33시간, 샌드위치류는 27~30시간'이 세균 등 안전성면에서 가장 적절한 유통기한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적용되고 있는 유통기한도 아주 '여유있게' 설정된 것이며, 적발된 업체들이 연장 표기한 유통기한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번에 적발된 제품 사례에 대한 결과도 보고 싶었지만, 식약처에서는 '세균 번식 시뮬레이션'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 업체들은 '식품위생법'을 위반해 처분과 처벌을 받게 된다. 제 13조 '제조 연월일 또는 유통기한을 표시함에 있어 사실과 다른 내용을 표시·광고 할 수 없음', 제 10조 '식품 등은 기준에 맞는 표시가 없으면 판매하거나 영업에 사용할 수 없음'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우선 관할 지자체에서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 기간은 10일에서 30일까지가 된다. 더불어 형사처벌도 받게 되는데, 혐의가 확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행정처분, 형사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마음을 식품 제조업체들이 가져주었으면 한다. 직접 제조를 하는 업체들 뿐 아니라, 그들과 납품 계약을 맺고 있는 유통업체들도 함께 말이다. 제발 먹을거리만큼은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식약처와 담당 기관들도 지속적으로 점검·단속을 해주고, 각 사례들과 관련해 구체적인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주었으면 한다. 시간 절약을 위해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년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주길 바란다.   

▶ 유통기한 변조한 김밥 등 식품업체 6곳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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