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월드리포트] 화난 터키, IS 보다 쿠르드가 더 미운 이유는?

[월드리포트] 화난 터키, IS 보다 쿠르드가 더 미운 이유는?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작성 2015.07.28 09:52 수정 2015.08.19 19:54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화난 터키, IS 보다 쿠르드가 더 미운 이유는?
터키가 화났습니다. 중동지역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인 터키가 이슬람수니파 무장세력 IS와 격퇴 전에 발벗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F-16 전투기를 동원해 시리아 북부의 IS 근거지를 폭격한 것을 시작으로 연일 시리아로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동맹군에게 시리아 부근의 인지를리크 공군기지도 열어줬습니다.

미국이 몇 달 동안 그렇게 공군기지를 열어달라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던 터키가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전화 한 통에 공군기지를 개방했습니다. 시리아 북부의 IS를 공습하려면 요르단이나 이라크에서 전투기를 띄워야 했던 국제동맹군은 훨씬 손 쉽게 IS에 대한 공습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IS 격퇴 전쟁을 이웃집 불구경 하듯 바라보던 터키였습니다. 터키와 시리아 국경은 외국 조직원이 IS에 가담하는 주요 경로이며 IS의 자금줄인 석유와 유물 등의 밀매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오죽하면 터키가 IS와 ‘암묵적 불가침’의 합의를 맺어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IS는 마음 놓고 터키 국경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런데 터키가 IS를 때려잡는다니 정말 전향적인 태도 변화로 여겨질 만합니다.

문제는 IS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거죠. 터키는 덩달아 쿠르드족에게도 총구를 겨눴습니다. 아니 더 심하게 때립니다. 이라크 북부까지 전투기를 보내 쿠르드의 기지를 파괴했습니다. IS를 세 번 폭격할 때 쿠르드 기지는 다섯 곳을 공습했습니다. IS의 천적으로까지 불리며 시리아에서 IS에 대항할 유일한 지상군으로 여겨지는 쿠르드는 도대체 왜 공격하는 걸까요?

● 발단은 수루치 폭탄테러

지난 20일 시리아 국경과 접한 터키 남부 수루치의 아마라 문화원에서 느닷없는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시리아 쿠르드족 도시인 코바니의 재건 작업에 동참할 자원봉사자 3백여명이 발대식을 가지는 도중이었습니다. 대형 배너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행사참가자들 사이에서 거대한 화염과 폭발음이 일어났습니다.

32명이 숨지고 1백여명이 다쳤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이 터키 사회주의청년연합이라는 단체 회원으로 쿠르드계 였습니다. 터키 정부는 곧바로 IS의 자살폭탄 테러로 규정 짓고 테러범의 신원도 밝혔습니다. 시리아에서 폭탄 공격을 훈련 받은 20살 대학생이었습니다. 쿠르드 계는 정부 발표에도 반발했습니다. 터키 정부가 이번뿐 아니라 그동안 쿠르드에 대한 IS 테러를 방조했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정부로 돌렸습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테러 단체로 지명된 ‘쿠르드노동자당 PKK’이 비난의 선봉에 섰습니다. 반정부 시위가 주요 도시에서 일어나고 터키 군경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발전했습니다. 수루치에서는 경계 근무를 서는 경찰관 2명이 살해됐습니다. 당연히 터키 정부는 쿠르드노동자당의 소행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터키 정부는 곧바로 대 테러 소탕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테러 용의자라면서 IS조직원 뿐 아니라 쿠르드노동자당 조직원까지 5백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그러더니 전격적인 군사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시리아 IS의 근거지 뿐 아니라 이라크 북부의 칸딜 산에 있는 쿠르드노동자당의 은신처까지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이후 폭격은 IS보다 쿠르드 근거지에 집중되는 양상입니다. 쿠르드도 본격적인 무력행위를 선언했습니다. 터키 동남부의 디야르바키르 지역에서 군용트럭에 폭발물 공격을 벌여 병사 2명을 숨지게 했습니다.

● 나라 없는 최대 민족 쿠르드

전 세계에서 나라 없는 민족이 많죠. 대표적인 게 팔레스타인인데, 최대 민족을 따지면 쿠르드족입니다. 쿠르드족은 전 세계에 3천~3천 5백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터키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가 만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네 나라에 걸쳐 분포하고 있습니다.

터키 국민의 5분의 1인 1천 5백만 명이 쿠르드이고, 이란 역시 1천만 명의 쿠르드족이 삽니다. 시리아와 이라크도 각각 4~5백만 명의 쿠르드 족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터키와 이란. 시리아. 이라크가 만나는 곳에는 메데라는 쿠르기스탄 왕국이 있었습니다. 16세기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터키)와 페르시아의 사파피 왕국(이란)에 의해 둘로 갈리게 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간교한 밀약인 사이크스-피코 조약에 의해 쿠르드족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터키.이란 그리고 신생국인 시리아. 이라크로 찢겨졌습니다.

쿠르드족도 근대국가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틈 타 이란 지역의 쿠르드족이 1946년 독립국가를 선포했다가 1년 만에 사라졌죠. 터키와 이란. 시리아. 이라크는 쿠르드 고유의 언어와 문화. 교육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각기 네 나라로 갈린 쿠르드족은 ‘독립국가’라는 여념을 안은 채 해당 국가의 정책에 따라 자기 나름의 정치색을 가지게 됩니다.

이 가운데 이라크의 쿠르드족만이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자치권을 얻습니다. 쿠르드자치정부 KRG로 부릅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 때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18만 명이 숨졌다고 합니다.)을 당하기도 했지만 2003년 이라크전쟁 때 소수민족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치권을 행사합니다.

지금은 이라크북부 3개주에 차지권을 인정받아 준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 불리는 자치정부 수반도 있고, 그 유명한 페쉬메르가 라는 군사조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라크내 쿠르드족도 이라크계인 쿠르드민주당 KRD와 이란계인 쿠르드애국동맹 PUK로 갈려 1990년대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서로 연합정부를 구성해서 사이 좋게 정권을 나눠가지고 있죠.

이란의 쿠르드족은 1979년 이슬람혁명 때 수니파라는 이유로 1만 명이 처형당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이란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가운데 정계에도 진출하며 나름 융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반정부 조직인 쿠르드 민주동맹당 PYD 산하의 인민수비대 YPG 라는 민병대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죠. 귀신 잡는 해병처럼 IS 잡는 쿠르드로 유명한 이들입니다. 사실 시리아 정부군이 병사부족까지 인정하며 패전에 몰린 마당에 시리아에서 IS와 대항할 힘을 지닌 유일한 지상병력이 인민수비대 YPG입니다.

시리아 최대 격전지인 코바니를 되찾고 최근 시리아의 IS 수도격인 락까 인근까지 압박해 들어가는 게 다 이들 YPG입니다. 특히 아랍에서 여성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여성대원도 전장에 뛰어들어 유명한데, 이슬람 지하디스트 사이에서 여성을 죽이면 천국으로 가지 못한다는 속설 때문에 IS 조직원들이 쿠르드여성 전사만 보면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IS보다 미운 쿠르드, 以夷制夷

쿠르드 이야기를 하다보니 너무 빙 돌아왔네요.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터키입니다. 전체 인구의 5분의 1인 1천 5백만 명이 쿠르드족입니다. 그만큼 독립에 대한 열망과 활동도 강합니다. 터키의 쿠르드 정파는 크게 두 개로 나뉘는 데 온건정파인 인민민주당 HDP과 강경무장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 PKK 가 있습니다. 인민민주당은 얼마 전 터키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 3야당으로 도약하며 정치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쿠르드노동자당 PKK 입니다. 쿠르드노동자당은 쿠르드의 독립투쟁의 선봉에 서 있습니다. 터키 정부를 상대로 30년간 무력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1984년 이후 4만 명이 무력분쟁으로 희생됐습니다. 이번에 터키 정부가 공습을 퍼부은 곳도 바로 이 쿠르드노동자당의 근거지입니다.

쿠르드노동자당은 터키 동남부와 시리아 북부, 이라크 북부에 넓게 퍼져 게릴라 전과 테러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리아에서 IS의 천적인 인민수비대를 가진 쿠르드 민주동맹당도 쿠르드노동자당의 연계단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터키 정부로선 호시탐탐 독립을 노리는 쿠루드노동자당이 많이 미웠을 겁니다. 오죽하면 IS가 시리아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국제사회가 터키의 동참을 호소하는데도 방관만 했을까요?

IS에게 성가신 쿠르드를 억누르는 견제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난해 9월 IS가 시리아의 쿠르드족 도시인 코바니를 침공했을 때 터키의 수많은 쿠루드인들이 시리아로 넘어가겠다고 했지만 터키 정부는 물대포까지 동원하며 쿠르드족을 내쫓았습니다. 코바니를 쿠루드노동자당이 세력을 키우는 무대로 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나중에 일부 쿠르드족이 코바니 전투에 참가하는 걸 허용하긴 했지만 그것도 이라크 쿠르드족인 KRG의 페쉬메르가에 한정했습니다.

터키로선 IS가 자신들만 건드리지 않으면 쿠르드족과 싸우게 놔두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IS와 ‘암묵적인 상호 불가침’ 상태를 유지했던 거죠.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고사성어를 터키도 아는가 봅니다.

결국 터키와 쿠르드노동자당은 서로 휴전을 맺은 지 2년 4개월만에 교전을 재개했습니다. IS격퇴전도 새로운 변수가 생겼습니다. 터키가 IS에 대한 공습을 개시한 건 반길만한 데 IS의 천적인 쿠르드까지 폭탄을 퍼부으면서 국제동맹군은 난감하게 됐습니다.

특히 시리아의 쿠르드 인민수비대와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에 지상전을 의지하고 군사지원을 하는 미국으로서는 터키와 쿠르드의 관계가 악화되는 걸 반길 리 없습니다. 미국과 EU는 테러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 소탕에 지지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아마도 조만간 중재나 정치적 조율에 나서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 정말 IS의 짓인가?

수루치 폭탄테러부터 쿠르드족 공습까지 일련의 사태에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연 수루치 폭탄테러를 IS가 했느냐? 터키는 어떻게 이라크 북부까지 공습을 할 수 있었느냐? 입니다.

IS는 지금까지 관례를 볼 때 테러를 벌인 뒤 늦어도 하루 안에 자신의 소행임을 만천하에 공개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잠잠합니다. 터키산 외로운 늑대의 자발적 테러 인지 아니면 터키 극우파의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른 음모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터키 정부의 상황을 볼 때 뭔가 민족주의자들의 단결이 이끌만한 이슈가 필요한 상황인 건 맞습니다. 터키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총선에서 과반확보에 실패하면서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자칫 조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럴 때 민족주의자들의 표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또한, 정의개발당의 발목을 잡은 게 바로 쿠르드계의 인민민주당이라는 사실도 음로론의 시각에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소입니다. 결국 조기총선의 우려까지 낳게 한 게 쿠르드라는 공식이 완성되면서 터키 정부로선 쿠르드족에 대한 보복과 함께 극우세력을 결집한 이슈가 필요했다는 분석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쿠르드계의 분열입니다. 터키가 쿠르드노동자당의 근거지라면 공습한 칸딜산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정부 KRG 구역입니다. 쿠르드가 쿠르드를 공격한다는데 영공을 침범하게 놔뒀다면 좀 이상하죠? 쿠르드자치정부는 이라크가 IS에 고전하는 사이 유전지대인 키르쿠르를 장악해버렸습니다.

여기서 생산되는 원유를 터키를 통해 내다팔고 있죠. 터키가 재정 마련의 중요한 길목인 셈입니다. 결국 민족보다 돈을 택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라크의 쿠르드자치정부의 경우 독립국가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에서 테러 조직으로 낙인 찍힌 쿠르드노동자당을 껴안고 가기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IS 격퇴전은 터키가 두 개의 전쟁을 한꺼번에 수행하면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IS보다 쿠르드를 더 미워하는 터키, 독립을 위해 IS와 싸우는 쿠르드, 병사부족에 영토수성만 신경 쓰는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막강한 무기에도 오합지졸을 면치 못하는 이라크군,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다시 빠질까 봐 어정쩡한 전쟁중인 미국, 수니와 시아의 대립으로 전쟁을 몰고가는 IS, 그리고, 족쇄 풀린 시아파맹주 이란까지 가세하며서 시리아와 이라크의 전쟁은 갈수록 풀기 힘든 미로처럼 얽혀가고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