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속 엄마와 딸은 모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음 직한 이들입니다. 그 둘의 관계 또한 전형적이고 보편적이며, 극의 주된 사건 모두, 우리가 살면서 일반적으로 겪는 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국 작가가 쓴, 전형적인 한국 엄마와 딸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든 극 속 모녀의 정서에 공감하고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적 모녀 관계와는 조금 다른 이들의 관계와 정서 때문인지, 아니면 이 희곡이 지극히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관객 중에는 공감과 감동 대신 얼떨떨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게 됐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모녀 이야기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면, 이 극의 서늘함과 날카로움에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딸이 죽는다고 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다 큰딸을 힘으로 막을 수도 없고, 말로 설득할 수도 없습니다. 엄마는 딸을 말을 애써 농담 취급하며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음식을 해주거나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해보자며 달래보기도 합니다. 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며 화를 돋우기도 하고, 죽음은 평화로운 게 아닐 거라며 겁을 주기도 합니다.
대화가 벽에 가로막힐수록 둘은 서로의 상처와 치부를 자극합니다. 서로에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들, 하고 싶었지만 차마 뱉어내지 못했던 비난들…대화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기는커녕 사랑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무력감만 키울 뿐입니다.
딸 제시는 절규합니다. '나한텐 엄마가 전부인데 엄마 하나로는 충분치 않다면? 엄마만 없으면 나머지는 다 견뎌낼 수 있는 일이라면?' 엄마 델마는 안타까움 속에 말합니다. '네 곁에는 평생 이 엄마가 있었는데, 너는 그토록 혼자였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니?…아가, 날 용서해다오. 난 네가 내 것인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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