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 다니엘 글라타우어
2. 7년의 밤 - 정유정
3. 나오미와 가나코 - 오쿠다 히데오
4.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소녀 - 다이 시지에
5.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 빌 브라이슨
▷ 한수진/사회자: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면,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는 요즘 휴가 계획 짜는 분들이 많은데요. 바다나 계곡에서 물놀이 하는 것도 좋지만 바쁜 일상에 평소 읽지 못했던 책을 찾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될 수 있겠죠. 휴가지에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영화평론가이자 인기 책 팟캐스트 '빨간책방'의 진행자이신 이동진 평론가 모시고 올 여름 가방에 넣어갈 책 추천받아 보겠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님 나와 계십니까?
▶ 이동진 평론가: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안녕하세요. 여름휴가 계획 세우고 계세요?
▶ 이동진 평론가:
(웃음) 아직은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너무 바쁘셔서.
▶ 이동진 평론가:
일단 밀려있는 일들 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평소 이런 휴가지 가실 때 책도 좀 들고 가시나요?
▶ 이동진 평론가:
네 많이 들고 갑니다.
▷ 한수진/사회자:
많이 들고 가시고요. 영화는 들고 가실 수가 없을까요? (웃음) 영화 평론가이시기도 한데.
▶ 이동진 평론가:
휴가 때는 영화를 안 보는 원칙을 하고 있어요. (웃음)
▷ 한수진/사회자:
왜요?
▶ 이동진 평론가:
그래야 진정한 휴가가 되니까요.
▷ 한수진/사회자:
책과 영화는 또 다르군요.
▶ 이동진 평론가: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러면 저희 청취자분들에게 여름휴가 때 읽을 만한 책 좀 추천해 주시죠. 첫 번째 어떤 게 있을까요?
▶ 이동진 평론가:
가벼운 책들로 재밌는 책들로 골라 봤고요.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라는 책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엘 글라타우어 라는 독일 작가가 쓴 책인데요. 연애소설이에요. 보통 우리가 일반적으로 독일 소설 하면 재미없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 소설은 굉장히 재밌고요. 이 소설이 무척이나 형식적으로 특이한 면이 있는데 이메일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겁니다. 여주인공이 원래 잡지를 끊으려고 장기구독을 하다가 잡지사에 정기구독을 해지해 주세요, 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계속 답이 없으니까 공격적으로 계속 메일을 보내게 되는 거죠. 알고 봤더니 상대방의 메일 주소를 잘못 써서 어떤 남자로부터 연락이 오게 되고 그러면서 교신이 시작되면서 상대에 대해서 사랑이 싹트고 메일로 계속 주고받게 되는 내용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이 되네요?
▶ 이동진 평론가:
우리가 흔히 연애라고 생각하면 여러 가지 것들이 있잖아요. 연애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판타지이기도 한데요. 상대가 자기의 로망을 충족시켜 줘야 하잖아요. 그게 이 소설 자체가 이메일, 그러니까 서간소설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 얼굴을 모르잖아요.
▷ 한수진/사회자:
끝까지 만나지 않아요?
▶ 이동진 평론가:
그건 스포일러라서 말씀드릴 수가 없고요. (웃음)
▷ 한수진/사회자:
(웃음)
▶ 이동진 평론가:
형식 자체가 로맨틱한 판타지를 자극시켜주기 때문에 소설 자체가 굉장히 달달하게 느껴져요. 그러면서 대중성이 뛰어나서 잘 읽히는 서간 소설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두 번째는 또 어떤 책이 있을까요?
▶ 이동진 평론가:
정반대의 책을 골라봤고요. 이 소설은 읽으신 분이 많으실 수도 있습니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입니다. 이 소설은 스릴러라고 할 수 있고요. 댐의 관리직으로 부임한 한 남자가 우발적으로 소녀를 죽이게 되어서 그러면서 펼쳐지는 피비린내 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름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 중의 하나이고 스릴러인데 순수문학 또는 장르문학 양쪽 사이 경계를 허물면서 무척이나 흥미롭게 진행되는 아주 재밌는 소설이에요.
▷ 한수진/사회자:
쏙 빠져들잖아요. 이 책 읽게 되면?
▶ 이동진 평론가:
읽어 보셨군요?
▷ 한수진/사회자:
네.
▶ 이동진 평론가:
정유정 작가 소설들이 워낙 다 재밌는데 그 중의 한 권을 고르라면 <7년의 밤>이 가장 현재까지는 재밌는 소설인 것 같고요.
▷ 한수진/사회자:
그러시군요.
▶ 이동진 평론가:
인물들을 워낙 잘 살려내고 있고 디테일도 잘 치밀하고 이 소설 딱 펼치면 먼저 극중에 등장하는 마을의 약도가 그림으로 먼저 나오는데요. 그 소설을 읽다보면 그 지역 하나하나가 다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고 그런 식의 시각적인 상상력이 뛰어나고요. 또 하나는 문체 자체가 예를 들어서 정유정 작가는 부사나 접속사 이런 걸 거의 안 써요. 그래서 문장이 단문 형식으로 엄청나게 스피디하게 나가는데 그런 문장을 스피디하게 읽는 맛도 굉장한 작품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죠. 정말. 그런 면에서 보면 텁텁한 여름에 딱 맞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이동진 평론가:
밤에 읽다보면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하는.
▷ 한수진/사회자:
네. 자 다음은 또 어떤 책 소개해 주시겠어요?
▶ 이동진 평론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라는 조금 긴 제목의 소설인데요. 제목만 들으면 이게 무슨 소설인가 싶으실 텐데요.
▷ 한수진/사회자:
그러니까요.
▶ 이동진 평론가:
중국 문화 혁명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프랑스 작가 다이 시지에라는 작가가 쓴 소설인데요. 중국 사람인데 프랑스로 이민 간 사람입니다. 중국 문화혁명기에 하방운동이라고 있었잖아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 때문에 지식인들, 도시인들을 지방에 두메산골로 강제로 보내게 되는. 그걸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부유한 집안에 잘 살다가 두메산골로 강제로 가서 노동을 하게 된 10대 소년 두 명의 이야기예요. 거기서 워낙 힘들게 하루하루 하는데 그 당시에 워낙 경직된 사회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발자크를 비롯한 서양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책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서 그 마을의 바느질하는 굉장히 예쁘장한 소녀가 있는데 그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다룬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소품? 그런 소설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어떤가요? 중국 현대사를 모르면 책 읽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 이동진 평론가:
전혀 그런 소설이 아니고요. 굉장히 풋풋한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성장소설 하면 떠오르는 게 있잖아요. 10대들의 사랑, 우정 이런 게 있는데. 그런 것들이 소설에 굉장히 낭만적이고 동화적으로 펼쳐져 있어요. 어떤 진기한 먼 세상의 재밌는 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요. 또 하나 이 소설을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건 이 소설 자체가 대체 책을 왜 읽어야 돼? 라는 것에 대한 가장 훌륭한 소설적인 답변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이 얘기를 읽다보면 주인공 자체가 너무나 하루하루 노동에 찌들어서 힘듦에도 불구하고 책에 빠져드는 모습들을 너무 잘 묘사하고 있어서 예술이라는 게 왜 필요하고, 교양이라는 게 왜 필요하고, 이야기라는 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소설 자체가 너무 잘 알려주는 그런 작품이기도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또 어떤 책이 있을까요?
▶ 이동진 평론가:
<나오미와 가나코>라는 책도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여름에 굉장히 잘 맞는 장르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요.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요. 국내에 팬이 많습니다. <공중그네>같은 오쿠다 히데오 소설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는 책이 몇 년간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되는 책으로 언론에 알려졌잖아요. 그 전에 이 책이 1위였어요. 그 정도로 국내에서 인기 있던 작가고요. 워낙 유머러스한 책을 많이 쓰는데 이번에는 오로지 서스펜스로 승부하는 멋진 스릴러 소설을 최근에 썼고요.
<나오미와 가나코>라는 제목 그대로 두 친구가 여주인공인데 절친한 친구 사이에요. 그런데 나오미가 어느 날 가나코한테 들어보니까 나오미라는 절친한 친구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으로부터 상습적으로 계속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던 거죠. 그 굴레가 너무 짙어서 나오미 입장에서는 친구 입장에서 울화가 치미는데 왜냐하면 나오미도 어릴 적 그런 가정에서 자랐거든요. 그래서 결국 두 여자 친구가 서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그 남편을 없애는 얘기예요. 그래서 굉장히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들어가는데 이런 소설이 흔히 그렇듯이 잘 될 리가 없잖아요. 완벽해 보였던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에 이 소설의 진짜 서스펜스가 쭉 이어지게 되는 굉장히 재밌는 소설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아무래도 여름밤이다 보니까 이런 서스펜스, 하드보일드적인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겠어요?
▶ 이동진 평론가:
아까 <7년의 밤>이 굉장히 치밀하면서 디테일이 뛰어난 소설이라면 이 소설은 쭉쭉 넘어가는 그러면서 호쾌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 가정폭력이라는 주제를 아주 강력하게 환기시키기도 하는 소설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나오미와 가나코>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벌써 마지막이 되나요.
▶ 이동진 평론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이라는 책을 골랐고요. 소설만 너무 고른 것 같아서 비소설도 하나 골랐습니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 유머러스한 작품으로 유명한. 이 사람 책은 다 재밌거든요. 미국의 논픽션 작가인데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이라는 책은 여름이라고 다 멀리 여행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한수진/사회자:
그렇죠.
▶ 이동진 평론가:
여행기를 읽으면서 대리만족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요. 흥미로운 건 이 책은 여행기인데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굉장히 다릅니다. 제가 사실 여행책들을 잘 안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행책 특유의 과장된 그 여행지를 미화하는 또는 그 여행지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너무 감성적으로 젖어드는 그런 것들이 여행기를 읽기 불편하게 만드는데 이 여행책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빌 브라이슨이 120일 동안 20여 개의 유럽 도시들을 여행하는 이야기인데요. 기본적으로 빌 브라이슨이라는 사람 자체가 엄청난 투덜이고요.
▷ 한수진/사회자:
(웃음)
▶ 이동진 평론가:
거기다가 여행을 싫어합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여행을 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어서
▷ 한수진/사회자:
(웃음)
▶ 이동진 평론가:
일반적인 여행기에서는 사진도 있고, 정보도 있고, 가는 법도 있고, 얼마나 좋았는지 그런 게 있는데 일단 이 사람은 관광지를 안 가고요. 예를 들어서 쾰른 같은 도시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쾰른 대성당이 유명한데 거기서 불평만 늘어놓고 혹은 거기서 갑자기 생각난 일본 작품에 대한 작명법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는다든지. 피렌체까지 가서 집시도둑 얘기만 한다든지 이런 식이에요. 그런 자유로운 작법 자체가 오히려 해방감을 주기도 하고요.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때 미국과 유럽이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국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유럽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는 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적혀 있습니다. 아마 여행기 중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책 중의 하나가 빌 브라이슨 책일 텐데 그 중에 <발칙한 유럽 산책>이라는 책이죠.
▷ 한수진/사회자:
오늘 다섯 권의 책 소개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드릴게요.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7년의 밤> 정유정 작가의 책이죠.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소녀>, 또 <나오미와 가나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여행>. 이렇게 다섯 권 소개해 주셨습니다.
▶ 이동진 평론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가 맞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렇군요.
▶ 이동진 평론가:
(웃음)
▷ 한수진/사회자: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 이동진 평론가:
감사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