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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동필 장관, 읍참마속(泣斬馬謖)인지 토사구팽(兎死狗烹)인지?

[취재파일] 이동필 장관, 읍참마속(泣斬馬謖)인지 토사구팽(兎死狗烹)인지?
이례적으로 단호한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구제역 관련 자체 감사 결과다. 구제역 백신과 관련해 복마전 같은 문제점이 다 드러났다.

백신의 선정에서부터 ,검정 기준, 공급체계와 수입선 다변화 문제, 구제역 예찰, 과태료 부과 등의 업무에서 관련 공무원들의 부적절하고 해이한 업무 처리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물론 감사 결과는 예상됐던 것이다.

이례적으로 단호하다는 것은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 때문이다. 농식품부와 산하의 농림축산검역본부 소속 공무원 32명이 개인처분이나 징계를 받았다. 주이석 농림축산검역본부장에 대해서는 중징계 결정이 내려졌다. 직위는 해제됐다.
주이석 본부장은 지난해 9월 가축 방역과 관련, 현장 사령관에 임명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사람의 병을 관리하는 곳이라면 농식품부 산하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가축 질병을 관리하는 곳이다. 질병관리본부에 의사들이 많은 것처럼 검역본부에는 수의사가 많다. 주 본부장도 수의사 출신이다.

본부장에 오른 것은 지난해 1월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AI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9월이었다. 바로 전 7월에는 경북에서 구제역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

방역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전례대로 외부에서 본부장을 발탁하는 것보다는 경험 많은 내부인사가 좋았을 것이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그런 이유로 주이석 본부장을 선택했다. 검역본부내 발탁으로 조직 내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그전부터 구제역 백신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됐다. 2012년부터 이상육 발생이 보고됐다. 백신을 놓은 자리에 화농이 생겨 버리는 부위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버리는 고기만큼 돈을 물었다. 농가 피해는 한 해 1천 억 원에 이른다는 대한한돈협회 집계도 보고됐다. 2013년에는 '고름고기 유통'이라는 뉴스가 이슈화되면서 소비까지 위축됐다.
이래저래 농민들만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동필 장관도 알고 있었다. 농민 대표들은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검역본부는 접종 방법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이때부터 이 장관은 검역본부의 해명을 믿었다. 그리고 주이석 본부장과 이동필 장관의 말은 앵무새처럼 닮아갔다.

앞에서 언급한 것 처럼 7월에는 경북 의성과 고령에서 다시 구제역이 발생했다. 2010-2011년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를 겪은 지 3년3개월만의 재발이었다. 구제역을 막기 위해 백신 정책을 도입한 뒤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었기에 충격은 컸다. 다시 백신의 효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주이석 본부장은 “백신 접종을 소홀히 해서 구제역이 재발한 것 같다”고 밝혔다. 7월 24일 경북을 찾은 이 장관도 "백신으로 막을 수 있는 O형 바이러스로 판명나 확산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백신 접종과 소독을 철저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장관의 백신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경북의 구제역은 다행히 농가 3곳에만 발생한 뒤 주춤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문제 제기는 세계 최고의 구제역 전문 연구기관에서 나왔다. 구제역 표준연구소인 퍼브라이트연구소였다.  7월 경북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사용하는 백신으로는 방어가 어렵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한국의 구제역 백신은 물백신이라는 것이다.

퍼브라이트 연구소의 분석 결과는 주이석 본부장이 취임할 때 쯤,그러니까 지난해 9월 쯤 우리 검역본부에 전달됐다. 하지만 쉬쉬했다. 기자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2월부터 다시 구제역이 발생해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2015년 1월이었다.
주이석 본부장은 이에 대해 “7월 경북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와 12월부터 발생한 바이러스는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바이러스 유전자에 약간의 변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따라서 백신 효능에는 문제가 없고,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농가를 중심으로 구제역이 확산된다고 주장했다.

퍼브라이트 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교묘하게 피해가는 설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궤변이었다. 충북에서 재발한 구제역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경기. 수도권에 이어 전국 최대 축산 도시인 충남 홍성까지 확산됐기 때문이다. 돼지뿐만 아니라 소까지 구제역에 걸렸다. 3조원 이상의 예산이 날아간 3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이동필 장관은 귀를 막고 있었다.

2월 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구제역 백신 성토자리였다. 의원들은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계속 확산되는 이유를 물었다.
놀랍게도 이동필 장관은 "현재 구제역 백신은 단연코 유용하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올바른 백신 접종이 안됐을 수도 있고, 제대로 백신 접종을 하더라도 백신 접종 시점이 항체가 형성되기 전에 감염된 개체가 있을 수 있다”며 전문가 같은 답변까지 했다.

이틀 뒤인 11일에는 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이 장관은 "구제역 백신은 효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해 안타깝다"는 심경을 밝혔다.  
주 본부장의 말이나 이 장관의 말이나 백신은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방역 현장에서 주 본부장은 대부분 이 장관을 옆에서 수행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말은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기자는 장관이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몰라서 저렇게 말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농식품부 감사 결과를 보면 이유가 나온다. 장관이 허위 보고에 속았다는 것이다. 감사 결과는 검역본부가 백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농식품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농식품부가 구제역 방역 과정에서 유일하게 농민들을 기쁘게 한 일은 늦었지만 새로운 백신을 도입하기로 한 결정이다. 한국에서 확산되는 구제역을 막기 어렵다는 O-Manisa(오 마니사)균주를 사용한 백신 대신  O-3039 균주를 사용한 백신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퍼브라이트연구소에서 방어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분석된 균주를 사용한 백신까지 추가로 도입하기로 했다. 2010년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에서 분리한 균주를 사용한 백신이다. 새로운 백신이 도입되면서 구제역은 다행히 기세가 꺾였다.

농식품부의 감사는 이미 지난 4월초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내용 발표는 메르스가 한창인 시기에 나왔다. 주목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슬쩍 마무리하고 싶은 이 장관의 희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문제다. 주이석 본부장을 중징계한 이동필 장관의 책임은 없는 지를 따져야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언론은 물론 국회에서까지 여러 차례 "백신은 효능이 있다"고 말했다. 감사 결과는 모르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축산 농민들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슬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장관은 주 본부장에 대한 징계를 읍참마속(泣斬馬謖: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 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함을 가리킴)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꼬리 자르기식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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