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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천박한 이기심이 점령한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단속 동행취재기

[취재파일] 천박한 이기심이 점령한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
7월 13일 월요일 오후 3시. 평일 오후인데도 경기도 광명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는 쇼핑객들의 차량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 상태. 진입하는 차들은 빈 주차 공간이 없어서 주차장을 몇 바퀴씩 돌고 있다.

복잡한 주차장에 시청 주차 단속 요원들이 등장했다. 주차장에서 주차 단속을 할 게 뭐가 있기에? 주차장에서도 단속할 게 있다. 바로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그래서 점검 권한이 있는 지체장애인협회 회원들도 동행했다. 마트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은 비장애인 구역과 마찬가지로 꽉 차있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쾌적하게 쇼핑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마트인가... 생각하기가 무섭게, 요원들이 위반 차량을 속속 잡아 낸다.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위반 차량. 노란색 장애인 차량 표지가 없는 차량이다. 주차장 바닥과 기둥마다 '장애인 주차 구역'이라고 떡하니 써 있는데, 왜 여기에 세웠을까. 단속 요원은 위반 차량 사진을 찍고, 경고장을 작성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출입문 가까이에 세우려고 그냥 여기다 세운거죠, 뭐......." 

장애인 표지도 없이 장애인 구역에 주차한 검정색 세단, 한 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 차량은 마세라티이다.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라 3.3m의 너비를 확보해야 하는 장애인 주차 구역. 고급 차량에 혹시나 흠집이라도 갈까봐 널찍한 곳에 세운걸까. 모두 변명의 여지 없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제 17조 위반 차량으로,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다른 차량에는 장애인 표지가 있는데도, 요원들은 쉴 새 없이 계고장을 끊어댄다. 세금이 부족할 때 무리하게 과태료와 벌금을 물린다던데 혹시 이것도? "아니 이건 표지가 다 붙어있는데 뭐가 잘못된거죠?" 불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다 위변조 차량입니다." "네???"

"장애인 표지에 써있는 차 번호와 실제 이 차량의 번호가 다르지 않습니까. 이건 장애인 차량이 아니라는 얘기에요." 표지에 써있는 차량 번호는 XX55, 주차 차량 번호는 XX27이다. 노란색 표지만 있다고 다 장애인 차량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번호가 다른 차량은 위변조 차량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이건 단순 과태료 대상이 아니다. '300만 원 이하 벌금 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300만 원, 7년 징역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 한다. "왜요?" 좀 과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표지판 압수, 과태료에 준해 10만 원 벌금으로 갈음한단다. 

다른 단속요원이 적발한 차량쪽으로 가봤더니, 장애인 표시가 있는 표지인데 이건 초록색이다. 이것도 위변조인가? "이것도 장애인 표지입니다. 다만 장애인 등급이 낮거나(5~6등급), 보행에 불편함이 없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죠. 이 표지를 가지고 있으면, 주차비, 통행료 등은 감면을 받을 수 있지만, 장애인 주차 구역에는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주차불가'라고 찍혀 있죠." "어디요? 주차 불가 글자가 안 보이는데요?" "여기요 여기. 교묘하게 가려 놓은거죠. '주차불가' 차량이니까......." '주차불가' 표시를 교묘히 가리고 주차를 해놓은 이 차량, 안타깝지만 역시 위반이다.

주차 표지는 있지만, 번호가 달라 위반 딱지를 받은 차량의 운전자가 쇼핑을 마치고 나온다. 장애인 동행자 없이 혼자다. 차까지 뛰어 가는걸 보면 보행에도 전혀 이상이 없다. 얼른 달려가서 인터뷰를 시도해봤다. "선생님, 여기 장애인 주차 구역인데..." 채 말도 다 못 붙였는데, 운전자는 잽싸게 운전석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고 무섭게 차를 후진한다. 단속 요원들이 가짜 표지를 압수하기 위해 달려온다. "선생님, 그 표지판 주세요!"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는 듯 하더니, 단속 요원이 손을 뻗자 창문을 다시 올린다. 자칫하면, 단속 요원의 손이 낄 뻔했다. 운전자도 흠칫 놀랐는지, 창문을 살짝 열고 주차 표지를 창 밖으로 던져 버린다. "이거 가지고 다니시면 안됩니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우리 아버지 것이에요! 아버지가 밑에 내려가서 내가 가져 왔어요!" "그래도 등록된 차량에만 가능한거예요!" 비키라고! 으아아아아아! 운전자가 차 안에서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는다.  

또 다른 위반 운전자는 단속 요원을 보자마자 화부터 낸다. "사람을 위해서 차가 있는거지, 차를 위해서 사람 있는게 아니잖아!" 이게 무슨 말일까. "선생님, 여기 장애인 주차 구역이고, 선생님은 차량 번호가 다른 표지판을 사용하셨는데..." "안다고 하는데... 내가 장애인이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더니 황급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실랑이가 벌어진 걸 보고 마트 직원들이 우루루 달려왔다. "남의 영업장에서 뭐 하시는겁니까?" "장애인 주차 단속 나왔습니다." "오실거면 미리 연락하고 오셔야죠! 우리 회원님들이 불편을 겪고 계시잖아요!" 예고하고 단속을 하라는건가? 그 회원님들이 엄연히 법을 위반하고 계시는데? 10대 이상 들어가는 주차장에는 의무적으로 3%를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빼 놓아야 하니까, 일단 만들어는 놓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상관 안하겠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직원들이 무전기로 어딘가에 연락을 하니까, 잠시 뒤 마트에 안내 방송이 나온다. "장애인 주차 구역 단속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회원님들은 지정된 장소로 이동 주차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단속이 이뤄지니까 지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구나. 

단속 요원들은 사라져 가는 차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찬다. "다들 그래요. 자기가 장애인인데 장애인 표지를 갱신하지 않았다.. 갱신하면 장애인 표지를 못 받는 장애인일 가능성이 있죠. 보행에 불편함이 없으니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 것을 그냥 갖다고 쓰기도 해요. 그런데 등록 차량이 아닌데다 장애인을 동반하지 않으면 그건 엄연한 위반이거든요. 심지어는 인터넷에서 사고 팔기도 하고.. 컬러복사해서 조잡한 표지판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아직도 운전자와의 옥신각신했던 기분이 남아있는지, 목소리가 살짝 격앙되어 있다.

한 차량 운전자는 슬그머니 비어있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단속 요원들을 보고 황급히 차로 돌아왔다. "여기 장애인 주차 구역인데.."하고 쫓아가니, "아... 몰랐어요. 알았으면 안 세웠죠. 여기 가족 주차 구역인줄 알았어요." 하더니 차를 뺀다. 그러고는 가족 주차 구역에 스윽 차를 세운다. 운전자 혼자만 온건데도 말이다. 장애인 주차 구역과 마찬가지로 가족 주차 구역은 유모차 같은 물건을 내리고 싣기 편하라고 마련한 공간인데, 남자 혼자서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쇼핑을 마치고 나온 장애인 가족을 만났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었는데, 그 분의 부인께서 단속 현장을 보시고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 옆에서 보면 속이 상해요.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못대고 걸어야 할 때가 많아요. 마트도 마트인데, 아파트는 더 해요. 주민들끼리 얼굴 붉힌 적도 많아요." 실제로 장애인들은 장애인 주차 구역이 '특혜' 또는 '역차별'로 여겨질까 걱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자체, 지체장애인협회 등과 함께 8월 9일까지 한 달 동안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합동 단속 및 점검을 벌일 계획이다. 원래 상반기 6~7월, 하반기 10~11월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데, 올해는 메르스 때문에 한 달 늦춰졌다. 전국 공공기관과 문화시설, 운동시설, 병원, 마트 등 5천 곳이 단속 대상이다. 장애인 주차 구역 불법주차로 과태료를 부과한 건수는 지난 2009년 5,570건에서 2013년 52,943건으로 거의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물론, 스마트폰 앱(생활불편신고)으로 신고가 가능해지면서 신고 건수가 급증했기 때문에 부과 건수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 그렇게 지난 해 과태료로 부과된 금액만 47억 원이 넘는다.

보도가 나간 뒤,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보내신 분은 5월부터 6월까지 해당 마트의 장애인 주차 구역 문제점에 대해 여러 차례 시청과 마트 측에 전달하셨다 한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고, 단속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송에 나가니까 부랴부랴 단속한 게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리셨다. 

메일을 보내신 분의 말씀처럼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다가 정부에서 '무슨 기간'을 정해야지만 이뤄지는 단속, 큰 문제다. 담당 공무원과 직원들의 꾸준한 관리가 있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건강한 시민 의식이 앞서야한다. 조금 덜 걷자고, 나와 내 가족 편하자고 원칙을 무시하면, 결국 꼭 필요한 사람은 불편함을 겪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동행취재는 그래서 역지사지, 이웃을 위한 배려가 절실하다는 걸 새삼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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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장애인 표지 붙이고 전용 구역에 '얌체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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