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 선택했는데…'독불장군' 오명
대부분의 외신들은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자 일제히 유로존 특히 메르켈의 승리라는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부채 상환 기간 유예와 만기 연장 등 '채무 경감'은 허용했지만, 그리스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헤어 컷, 즉 '채무 탕감'은 결국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리스를 상대로 거의 전적으로 굴복하도록 요구한 것"이라고 보도했고, 영국 가디언은 "독일이 치프라스에게 보복했다"고 표현했고, 역시 영국의 BBC는 "그리스는 사실상 경제적 주권을 빼앗기는 셈"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얼핏 결과만 놓고 보면 사실 완벽한 승리자는 메르켈인 듯도 싶습니다. 올 초부터 그렉시트를 고려한다는 말로 그리스를 겁주기 시작하더니 결국 마라톤 협상 때도 그리스 편을 드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정면 충돌했지만 결국 자신의 뜻을 끝끝내 관철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럽 최강의 리더로 독일 국내는 물론 다른 유로존 국가의 여론도 신경써야 할 메르켈로서는 이번 협상을 통해 독일과 유로존에서 동시에 인심을 잃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메르켈이 시종일관 강공정책으로 그리스를 굴복시킨 과정에서 보여준 비정한 모습에 너무 독불장군처럼 행동한다는 비난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국민 절반이 그렉시트를 지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독일에선 메르켈이 결국 그리스의 페이스에 말렸다는 비아냥 섞인 여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유럽인들은 너무 그리스를 몰아붙였다고 비난하고, 독일인들은 '그리스 퍼주기'를 했다고 비난하는 여론속에 놓인 형국이 된 겁니다.
'벼랑 끝 전술' 성공 뒤에…백기투항?
국민투표를 통해 반대했던 채권단의 개혁안보다 한층 강도 높은 합의문만 보면 치프라스의 완벽한 패배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투표가 사실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카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가 얻은 것, 특히 돈의 액수를 면밀히 따져보면 치프라스의 패배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애초 그리스가 요구한 지원금은 535억 유로였는데 최종적으로 최대 860억 유로를 받게 됐기 때문입니다. 무려 325억 유로나 더 받아낸 겁니다.
'채무 탕감'을 해달라고 떼를 썼지만, 사실 치프라스 본인도 메르켈과 싸워오면서 탕감은 턱도 없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히 깨달았을지 모릅니다. 헤어컷, 채무 탕감은 결국 받아내지 못했지만 채무 이자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등 채무 경감은 얻어낸 만큼 치프라스로서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던 겁니다.
독일-그리스 오가며 중재…존재감 우뚝
유로존에서 쫓아낼 수도 있다고 겁박하는 '무서운 어른' 독일, 돈을 안 주면 유로존에서 나갈 수도 있다고 '칭얼대는 어린이' 그리스, 그동안 독일과 그리스 양측에 모두 싸늘한 시선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그 둘 사이에서 양식을 갖춘 지성인처럼 행동했습니다. 이번 마라톤 협상 때도 '한시적 그렉시트'까지 들고 나온 독일에 정면 충돌한 것도 역시 올랑드였습니다. 사실 현재 경제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같은 반열이 아닙니다. 압도적으로 경제력이 우위인 독일에 밀리는 프랑스였지만, 이번 협상 과정에서 톡톡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관철시킴으로서 올랑드는 자국 내 인기는 물론 유로존 내에서 프랑스의 존재감까지 높이면서 이번 협상에서 사실상 유일한 승리자라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 "그러나 승리자를 예단하긴 아직 이르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에서 누가 이겼는지를 지금 가려내긴 어렵다고 얘기합니다. 그리스와 채권단이 다투는 과정에서 유럽연합의 본질적 한계와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일단은 그렉시트를 막으며 봉합하긴 했지만 언제든 "하나의 유럽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유럽 연합의 존립을 흔드는 상황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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