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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돋보기] 엘리엇을 반드시 미워할 수 만은 없는 이유

[뉴스 돋보기] 엘리엇을 반드시 미워할 수 만은 없는 이유
오늘(13일) 아침 '주주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삼성물산의 광고가 신문마다 1면에 실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한 17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소액주주들의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주총에서 두 회사의 합병을 무산시키려 하니 주주들이 주식 한 주라도 위임해 달라는 것이다.

이미 지난 10일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1.21%)로 합병성사의 '캐스팅 보트'라 할 수 있다. 이런 국민연금이 '든든한 방패'를 자임하고 나섰는데도, 도움을 요청하는 걸 보면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사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찬성표를 던진다해도 합병안이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다. 합병안은 주총 참석 지분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가결되는데, 표 대결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엘리엇의 지분 7.12%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 외국인의 삼성물산 보유 지분은 26.41%다. 미국과 유럽 자본이 대다수지만 싱가포르, 중동,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외국인 주주 비율도 5%가 넘는다. 게다가 의결권 자문 업체인 글래스 루이스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를 권고한 상황이어서, 외국인 기관 투자가들 사이에서는 반대표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면 삼성물산이 기존 우호 지분에다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가정할 때 지금까지 확보한 지분은 42% 수준으로 보인다. 17일 주총에 지분 70%가 출석한다고 가정하면 참석 지분 3분의 2인 46.66%가 동의해야 합병안이 가결된다. 그런데 지난 달 열린 SK와 SK C&C 합병 주총의 출석률이 80%를 넘긴 걸 보면, 삼성물산 주총 출석률도 그에 상응할 전망이다.

결국 5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합병이 성사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적게는 5% 많게는 11%가량의 추가 지분을 외국인(26.41%) 또는 나머지 소액주주(24.33%)로부터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순탄할 것 같았던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와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이 엘리엇이란 '암초'를 만나 자칫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냉정하게 생각할 것이 있다.

 우리는 헤지펀드라 불리는 투기자본에 트라우마가 있다. 한마디로 '먹튀'의 기억이다. 론스타가 그랬고 소버린이 그랬다. 그래서 투기자본에 대한 응징은 마치 애국심처럼 느껴진다. 삼성은 이번 합병을 통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하려 하는데, 엘리엇의 방해로 속상하다는 것이지만 어쩌면 경영권 승계가 차질을 빚는 것이 더 골치 아플지 모른다.

그동안 주주가치 제고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소리가 공허한 메아리인 상황에서, 정부도, 국민도 짐짓 못 본척 했던 삼성가의 3세 경영권 승계에 결과적으로 제동을 건 것이 엘리엇이란 사실이 역설적이다. 주주 친화정책의 청사진을 펼치게 만들고, 소액주주 권익보장을 제도화시킨 것도 엘리엇의 공헌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더 큰 이익을 줄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도 엘리엇으로 인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합병으로 어떠한 이익이 구체적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돌아오는지, 제일모직이 최대주주로 있는 바이오 관련사업의 경우 어떠한 제품에 대한 특허권과 판매권을 소유하고 있는지, 자금조달계획에 차질은 없는지 등등…

다시말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삼성가는 3세 경영권 승계라는 확정적인 이익이 발생하지만, 제일모직이 기획한 사업들이 계획과 달리 지지부진해 합병후 주가가 하락할 경우 그 손실은 삼성가가 아닌 투자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인 연기금은 국민들이 은퇴이후 노후에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미래의 경제적 원천임에도, 투기자본을 막는다는 이유로 자칫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는 투자결정을 국민들의 의견 수렴없이 한 것은 월권행위가 될 수도 있다.

엘리엇이라고 다른 헤지펀드와 달리 도덕적이진 않을 것이다. 헤지펀드의 속성은 돈이 전부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무조건 미워할 수만은 없다. 모두가 침묵했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결의를 홀로 문제 삼았기 때문일까? 아니 그 보단 우리가 간과했던 문제를 한번 되짚어 보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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