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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세대 진보 정치의 꿈, 여기서 끝일까요?

● 조성주 후보 3위…한 여름밤의 꿈이었나?

정말 '한 여름밤의 꿈'이었을까요? 토요일인 11일 저녁, 정의당 당 대표 경선 투표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빅매치로 끝날 줄 알았던 선거에 '2세대 진보 정치'를 내걸고 등장한 조성주 후보의 등장으로 치열한 선거가 예상됐었죠. 하지만, 차세대 리더로 바람을 일으켰던 조성주 후보는 결국 3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1, 2위는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차지해 결선에 올랐고, 노항래 후보는 4위에 머물렀습니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13~18일 1, 2위의 결선 투표를 거쳐 당 대표를 확정합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평가가 좀 다릅니다. 지난해 말, 정의당에 가입한 '신참' 조성주 후보가 노항래 후보를 누르고 3위를 한 것 자체가 이변이라는 것이죠.

투표 수로 따져볼까요.

총 투표권자 9722명, 유효 투표수 7400표 가운데 각각 노회찬 후보가 3179표, 심상정 후보가 2312표, 조성주 후보가 1266표, 노항래 후보가 643표를 차지했습니다. 조성주 후보는 심상정 후보가 받은 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노항래 후보가 받은 표의 두배에 가까운 표를 받았습니다. 결코, 한 때의 아득한 꿈으로만 보기엔 심상치 않은 숫자입니다.  

● 조성주 후보와 연설문 한 장

골리앗에 도전장을 내며 세간의 화제가 됐던 37살의 조성주 후보.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을 만들어 피자 배달 30분제를 폐지시키고,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들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울시 노동전문관으로 일하며 행정 경험을 쌓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그가 이목을 끌었던 건 다름 아닌 '연설문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연설문에는 조성주라는 인물의 깊이와 내공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정의당과 진보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죠.
그의 연설문 중 몇가지 인상적인 문장만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저의 출마는 조성주 개인이 아닌 진보정치 2세대 전체의 도전입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노동운동 밖의 노동에 대한 경험과 대안 부족이야말로 지금 진보 정치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가 아닙니까?"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 을 대변해야 합니다. 양당정치에 갇힌 한국 민주주의가 외면한 이들은 바로 공과금과 집세를 책상에 고이 놓아두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이고, 쌀과 김치가 있으면 부탁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젊은 작가이며, 수십 번의 취업실패에 절망하며 외롭게 고시원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청년입니다."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에 안주하고 서로 다투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광장은 좁아졌고, 우리가 보호해야 할 시민들은 광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2세대 진보 정치는 그 광장 밖의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의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미래와 싸워야 합니다. 오늘의 이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체제가 강요하는 미래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다른 미래를 개척합시다."


▶조성주 후보 연설문 전체 보기 (클릭)

● 진보정치 1세대를 넘어 2세대로

그는 이제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서 벗어나 오늘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운동 방식만으로는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 노동 문제와 같이 오늘의 산적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없음을 인정하자는 겁니다.

대신 진보 정치의 출발은, 기존의 거대 정당이 품지 못하는 시민들,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의 실제 삶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을 위한 새로운 진보 정치는 진보정치 1세대를 넘어서서 2세대의 등장으로 가능하다고 그는 역설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그는 이 모든 것을 현학적인 이념이나 이론이 아닌, 일상의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이는 망망한 이상의 허공이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한 걸음씩 나아가려는 그의 행보와 맞닿아 있습니다.

● 진보 정치 변화의 신호탄?

조성주 후보의 등장과 정의당의 변화, 시민들의 반응에서 진보 정치의 변화 가능성이 조심스레 읽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진보 정당의 당 대표 선거가 NL과 PD 등의 정파 구도의 싸움이었다면 이번 선거는 좀 달랐습니다. 과거 권력과 미래 권력의 대결,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의 대결, 진보 1세대와 2세대의 대결 등 조성주 후보의 등장은 선거 구도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선거 운동도 변화의 바람을 탔습니다. 후보 간 비방으로 얼룩진 진흙탕 선거에서 벗어나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조성주 후보를 서로 치켜 세우기 바빴습니다. 차세대 리더 조성주 후보의 가치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겁니다. 또 심상정 후보가 아프리카 TV 생방송으로 '마이 상정 텔레비전'을 진행하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가 하면, 노회찬 후보는 요리사로 변신해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음식(정책)을 내놓아 정의당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선거 기간, 정의당에는 평소의 두 배가 넘는 400여 명의 신입 당원이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정의당 전체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 끝나지 않은 진보 정치의 꿈

가뜩이나 팍팍한 삶, 정치 뉴스를 보고 있으면 한숨 뿐입니다. 희망을 줘야할 정치마저 국민들의 삶을 배신하고 있는 듯 합니다. 여당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원내대표가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고, 제 1야당은 계파 갈등으로 외부 혁신위의 수술대에 올라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정의당에서라도 변화 움직임이 보이는 게 반갑네요.

조성주 후보가 쓴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의 한 대목으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상대의 경험을 인정하는 의사소통, 자유로운 사고와 정치적 상대성, 편견 없는 마음과 웃음, 고통 받는 사람들에 공감하는 상상력, 의미 있는 갈등과 타협. 모두 현명한 운동과 정치에 필요한 과제들이다."  

이러한 과제가 2세대 진보 정치의 꿈은 물론,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씨앗이 되길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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