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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말하기 싫다"는 검찰, 국민 알권리는 뒷전?

[취재파일] "말하기 싫다"는 검찰, 국민 알권리는 뒷전?
요즘 세상의 웬만한 조직들은 다 ‘대변인’을 두고 있다. 홍보담당, 대외협력담당, 언론담당 등 명칭은 제각각이지만 대개의 경우, 묻는 기자에게 조직의 입장을 답한다. 말하는 바가 국민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이유로 조직 내부의 정보 접근 권한을 비교적 폭넓게 보장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이 국가기관이라면 ‘대변 활동’은 ‘공보(“국가 기관에서 국민에게 각종 활동 사항에 대하여 널리 알림”-표준국어대사전) 활동’으로, ‘대변인’은 ‘공보관’이라는 점잖은 직함으로 불린다. 기자라면 누구나 사안을 제일 깊숙이, 또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 질문하고 싶지만, 조직의 필요에 의해 결국은 이들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박정식 울산지방검찰청장(검사장)은 내가 만난 검찰 조직의 첫 공보관이다. 수습기자 시절, 서울 북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이던 그를 만났다. 검사들이 보직에 따라 어떻게 불리길 원하는지와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조언도 그때 처음 들었다. 서울 안 지방검찰청 차장은 그냥 공보관이 아니라 검사장 아래 최고 수사 지휘자이기도 한 까닭에 아는 것도 많았다.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전화를 잘 받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게 분명한 시간에도, 보통 사람 같으면 한창 잠들어 있을 시간에도 그는 전화를 받았다. ‘확인’하는 게 내 일이라, 경쟁 언론사의 밤 메인뉴스와 새벽 신문에 보도된 사안에 대해 밤낮 가리지 않고 전화를 했다. 짜증날 법도 한데 싫은 기색 한번 없었다. 그가 특별히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가져서는 아니다. 그는 다만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는 공보관 사명에 충실한 것이다”고 말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활동상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자 했다.

사명에 충실한 구성원이 조직에서 안 되는 걸 못 봤다. 공보도 수사도 다 잘한다는 평가 속에 이듬해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영전’한 그는 CJ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4대강 건설업체 입찰담합 의혹 사건, 효성그룹 탈세·비자금 수사 같은 굵직한 사건을 지휘했다. 마침내 ‘검찰의 꽃’ 검사장이 됐다.

옛 생각이 떠오른 건 서울의 한 검찰청 공보 관계자와 통화를 마치고서다. 정부산하 준정부기관에서 일어난 범죄혐의를 포착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다는 내용의 조간신문 보도가 최근 있었다. 정부기관이 세금을 잘 쓰고 국리민복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언론의 기본 책무다.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추가 취재를 해야 마땅했다.

전화를 받은 공보관계자의 반응은 간단했다. 일단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 말하기 싫다. 나중에 통화하자”는 짜증 섞인 답변에 이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신문에 떡하니 활자화 된 내용이 수사 지휘계통에 있는 공보관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도 황당했지만, 언론 취재에 “말하기 싫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는 태도는 더 놀라웠다. 공보 업무를 맡았다는 사명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공보관이 직무를 유기하는 사이, 국민의 알권리는 쉽게 모욕당했다.
그런데 이런 공보 방식이 새삼스러울 건 없다.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요즘 검찰의 공보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다. 법률도 아니고 법무부 훈령에 불과한 ‘공보준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며 헌법에 기초한 알권리를 깔아뭉개는 게 오늘 검찰의 공보 풍경이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시작한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국민이 알고 싶은 내용보다는, 자신들의 수사 편의에 따라 공보를 했던 게 상징적이다.

국민의 대표이기도 한 유력 정치인 두 명이 수사 대상이 됐다는 보도에 대해 ‘정치인 두 명은 맞지만 실명을 공개할 수 없다’던 검찰은, 그 정치인들이 검찰 출석을 거부하자 이름을 공개하며 언론을 이용한 ‘출석압박’을 했다. 몇 해 전 특급 연예인들이 성매매를 했다며 호들갑을 떨었을 땐, 엉뚱한 연예인들 이름이 세인들 입에 오르내리며 피해를 보는데도 ‘그들은 아니다’고 끝내 말 안 하던 검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 보여준 ‘피의자 망신주기’ 공보는 최악이다. 검찰에게 알권리는 언제나 자신들 필요에 따른 자의적 해석의 대상이다.

검찰이 자의적 공보를 할 때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본다.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맥락과 상황을 정확히 알고 표현하는 걸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내가 뽑고,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 나라 권력이 어떤 모습을 하고 굴러가는지 알아야 하는 건 기본이다. 정치, 경제 권력을 가리지 않고 ‘죄’를 따져 물을 권리를 독점한 검찰이 정작 그 죄상에 대해서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알리지 않는다면? 이런 세상에서 국민은 바보가 되고 민주주의 토대는 취약해진다. 검찰이 바라는 세상이 이런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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