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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누가 왜 반대하나?

이제 그 살인범을 잡을 수 없습니다.  6살 태완이에게 황산을 끼얹은 살인자를 영원히 처벌할 수 없습니다.
 
1999년 5월 20일 오전, 6살 태완이는 엄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갔습니다. 심부름을 잘해서 이모한테 5백 원을 받았다고 엄마에게 자랑했습니다. “공부방 다녀올게요!” 그렇게 태완이는 달려 나갔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 이웃 주민이 허겁지겁 미용실로 들어와 태완이에게 큰 일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뛰쳐나간 엄마는 태완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누군가 골목에서 갑자기 나타나 태완이에게 황산을 뿌린 것입니다.
 
● 황산 테러 살인범, 왜 못 잡았나?
 
태완이는 버텼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범인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태완이 엄마, 아빠는 온 몸이 타들어 가는 6살 아들의 곁에서 한 마디, 한 마디를 녹음했습니다. 태완이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 모습. ‘큰 전봇대. 작은 전봇대. 검은 봉지. 00가게 아저씨’. 300분이 넘는 분량이 녹음됐습니다. 49일 후, 태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가 고통으로 헤맨 그 골목을 기었다. 땅바닥에 있는 이상한 모든 것에 입을 대어봤다. 그 범인의 행적을 찾기 위해… (중략) 아빠가 말했다. ‘아빠가 나쁜 사람 잡아서 꼭 혼내줄게.’ 태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故 김태완 군 어머니가 쓴 병상일지 中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2013년 다시 수사본부를 꾸렸지만 태완이의 증언은 결정적 증거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A 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검찰에 고소했지만 검찰 역시 증거가 부족하다며 A씨를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2014년 7월,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 종료가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는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15년이었습니다. 태완이 엄마·아빠는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습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니 다시 수사하도록 명령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법원이 판단하는 동안 공소시효가 잠시 정지됐습니다. 태완이 엄마, 아빠는 기적 같은 결과를 기대하며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서명운동도 진행했습니다.
 
● “‘태완이법’ 통과된 후에 판단해도 되지 않았나…”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6월 26일 태완이 엄마·아빠의 신청을 최종적으로 기각한다고 통보했습니다. 며칠 뒤 공소시효가 끝났습니다. 이제 태완이를 죽인 범인을 영영 처벌할 수 없습니다. 설사 살인범이 자백하고 나서도 벌할 수 없게 됐습니다.
 
태완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국회에 관련 법안이 제출됐습니다.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 일명 ‘태완이법’입니다. 이 법안은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 범한 범죄 가운데 아직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범죄에도 적용됩니다. 태완이를 살해한 범죄가 이에 해당됩니다. 대법원이 재정신청을 기각해 태완이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이 법이 원안대로 통과됐다면, 태완이를 살해한 자에 대한 공소시효도 폐지됐을 거란 뜻입니다. 태완이를 죽인 살인자를 잡을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기사 링크] 태완이 부모 “"태완이법 통과되고 나서 판단을 해도 되지 않았나"

●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누가·왜 반대하나?
 
그러나 ‘태완이법’은 발의된 지 넉 달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2015년 7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 더 나아가 반대하는 국회의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일까요? 그리고 왜 반대하는 것일까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2015년 6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장으로 가야 합니다.
 
** 2015년 6월 17일 국회 법사위 범안심사1소위 회의록(PDF파일) 다운로드
(※ ‘태완이법’ 관련 내용은 45쪽부터 나옴.)
 
‘태완이법’은 서영교 의원(새정치연합)이 대표 발의했고, 동료 의원 15명이 동참했습니다. 태완이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를 통과한 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되고, 마지막으로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합니다.

2015년 6월 17일 첫 단계인 법안심사1소위가 열렸습니다. 여야 국회의원, 법안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국회 법사위 소속 수석전문위원, 정부를 대표하는 법무부 차관, 그리고 사법부를 대표하는 법원행정처 차장이 참석했습니다.
 
● 행정부와 사법부는 ‘찬성’
 
먼저 국회 법사위 소속 수석전문위원이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에 타당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힙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남궁석]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 적용이 배제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살인죄 등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가 여전히 적용되는 것은 범죄 간의 죄질에 대한 비교형량 또 범죄자 간의 형평성 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공소시효 적용 배제 대상 범죄의 구체적 범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적용 범위는 약간 더 좁지만)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힙니다.
 
[법무부차관 김주현]
공소시효 폐지에 대해서는 정부안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사람을 살해한 죄 – 종범을 제외합니다만 – 로서 법정형에 사형이 규정된 죄를 폐지하는 정부안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정부 의견입니다

 
사법부도 찬성합니다.

[법원행정처차장 강형주]
입법취지에는 공감하고, 그리고 살인죄에 대해서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한 부분은 특별한 이견이 없습니다.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 내지 약간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 “기본적으로 신중해야 된다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신중론이 제기됩니다. 먼저 전해철 의원이 유보적 의견을 밝힙니다.
[전해철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이 공소시효에 대한 제 의견은 이게 2007년에 일단 한번 연장이 되었고요, 이번에 또 강간 살인 등에 대해서 한 번 더 연장이 되어 있어서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좀 신중해야 된다는 의견입니다.
 
다만 반인륜 범죄 등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오히려 없어지는 것이 세계인권규약이나 이런 데 비해서 맞는데 일률적으로 이렇게 공소시효를 다 없애는 게 맞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저는 아주 적극적으로 생각은 하지 않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만약 결정을 한다면 저는 조금은 보류 의견이고 지금 대체적으로 법무부에 살해 또 사형에 대한 거에서 좀 더 축소를 할 수는 없는가, (중략) 아무튼 제 의견은 약간 유보적으로 하고, 다른 위원들 이야기해 보시지요.


임내현 의원은 이런 의견을 제시합니다.
[임내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지금 기본적인 방향은 우리 전해철 (야당) 간사 말씀의 취지가 방향이 맞는데 사실 정부안을 이렇게 풀어 놓고 보면 상당히 근접할 것 같은데, (중략) 그런 취지 자체는 아까처럼 반인륜 범죄 그런 스타일로 가는 것이 맞는데 상당히 정부안에서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태완이법’을 대표발의한 서영교 의원이 반문합니다.
[서영교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제가 질문이 하나 있는데 공소시효를 그렇게 고수 쪽으로 보는 근거 이유가 뭐지요?
 
[임내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법적 안정성이라거나 많은 사람이 잘못하면 억울하게 처벌당할 수도 있고 굉장히 불안한 삶이 되거든요.
 
[서영교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전략) 법적 안정성 이야기를 하면서 누구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한다고 피해자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할 것인가라고 했을 때 좀 마음을 열어주시고, 벌써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외국의 입법례를 제가 보여 드리듯이 예를 들면 미국 같은 경우에 연방법은 무조건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있어요. 없어요. 아동성매매, 인신매매까지. 아까 사형으로 처벌되는 건 공소시효는 기본적으로 없고요 연방법에. 뉴욕주법, 캘러포니아주법 이런 데로 가면 좀 더 구체적으로 됩니다. 강간, 가중 성적학대, 아동과의 성행위, 여기에도 공소시효가 없어요. 이제는 이렇게 바뀌어져야 되는 거예요.

 
● “국민여론·법감정에 휩쓸려서 막 갈 문제가 아니다.”
 
서영교 의원의 발언 이후 더 강한 반대 발언이 나옵니다. 김진태 의원입니다. 김 의원은 지금 시점에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개 사건에 대해서 국민여론, 법감정에 이끌려 막 갈 문제가 아니다.”
[김진태 의원(새누리당)]
(전략) 저는 그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려 놓은 게 8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8년 해보고 이제는 아예 이것을 다 없애 버리겠다? 글쎄요, 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고요.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우리 형사법 체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몇 개 사건에 대해서 국민여론, 법감정에 휩쓸려서 이렇게 막 갈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여기에 대해서는 굉장히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진태 의원의 말이 끝나자 법안을 대표발의한 서영교 의원이 다시 한 번 법안통과를 호소합니다. 하지만 논의는 막바지를 향해 갑니다.
 
● 법안1소위원장 “자꾸 바쁜 일로 가실 분이 생겨 가지고…”
[소위원장 이한성 의원(새누리당)]
(서영교 의원의) 좋으신 말씀 경청하도록 하고, 지금 시간이 얼마 없고 자꾸 바쁜 일로 가실 분이 생겨 가지고 조금 더 진척하기 위해서 그 정도만 하시고, 우선 마무리하고…
 
[서영교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이지요?
 
[소위원장 이한성 의원(새누리당)]
조금 더 논의를 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서영교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그러면 바로 다음 소위에서 우선 논의해 주는 것으로 하시지요.
 
[소위원장 이한성 의원(새누리당)]
예, 그렇게 하지요.


그러나 7월 2일 다시 열린 범안심사1소위에서 '태완이법'은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회의가 다시 열린 시점 자체가 이미 재정신청이 기각되고 태완이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종료된 후였습니다. 이제는 태완이법이 통과되어도 태안이를 죽인 범인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서영교 의원의 말대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미국(연방법), 일본(2010년 폐지), 영국(원칙적으로 공소시효 없음)에는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물론 ‘법적 안정성’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입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을 그 어느 기관보다 중시하는 곳이고, 따라서 법률 변경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법무부와 대법원마저 '태완이법'의 핵심 내용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법적 안정성'을 앞세워 '태완이법'을 반대하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 정말 미안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16년 동안 범인을 추적해 온 태완이 엄마·아빠는 하늘나라에 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울먹였습니다.
“세월이 가면 모두 잊혀지겠지. 그런 아이가 있었는지,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는지…. 이세상 다하는 그날 아이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 故 김태완 군 어머니가 쓴 병상일지 中

 
미안해야 할 사람은 태완이 부모님이 아닙니다. 태완이의 고통스런 죽음, 그리고 태완이 엄마 아빠의 16년에 걸친 호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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