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뉴스 돋보기] '백기투항' 치프라스의 속셈은?

[뉴스 돋보기] '백기투항' 치프라스의 속셈은?
그리스 사태는 예측이 참 힘들다. 당초 국내 전문가들은 그리스 문제를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유로존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1.8%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스 사태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든 오히려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예측불가의 인물이란 사실을...

그는 그리스가 유로존과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시장논리보다는 정치논리를 적용해서 불확실성을 키웠다. 지난 5일 국민투표를 통해 채권단의 협상안을 거부하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도 불사하겠다고 '배짱'을 과시한 그리스가, 이번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았다.

'3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9일(현지시간) 채권단에 제출한 개혁안에는 연금 삭감과 부가가치세 개편, 국방비 감소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2년간 재정지출을 130억 유로(15조1천억원) 줄인다는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가 마련한 이번 개혁안은 지난달 말 채권단이 제안해 그리스 국민이 투표를 통해 거부한 협상안보다 한층 가혹한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130억 유로 수준으로 알려진 재정 절감 규모는 그리스가 앞서 채권단과 큰 틀에서 합의한 개혁안에 담긴 79억 유로(올해 27억 유로, 내년 52억 유로)보다 50억 유로 이상 많은 것이다. 부가세 개편과 국방비 축소 등 일부 양측에 이견이 있던 부분들도 대체로 협상단의 안을 수용한 모습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지(NYT)와 영국 가디언지 등은 그리스의 혹독한 개혁안이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에 '백기투항'한 것이라고 일제히 분석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WP)는 "2주 간의 은행영업 중단으로 경제가 사실상 마비되면서 부도를 막을 다른 선택 여지가 없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연 백기투항일까? 그리스는 유럽연합(EU)에 3차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백기' 개혁안을 제출한 당일 러시아 가스관 건설 사업 계획 초안을 공개했다.

파나요티스 라파자니스 그리스 환경에너지장관은 20억 유로 규모의 러시아 가스관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며, 이른바 '남유럽 가스관'을 건설하면 2018년부터 매년 천연가스 470억 세제곱미터(㎥)가 그리스를 거쳐 유럽으로 흘러들어 오게 된다고 말했다.

EU는 줄곧 그리스를 자기 영향력 하에 두려는 러시아의 계획을 우려해왔는데, 그리스는 이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안 도와주면 러시아 편에 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가 입장을 180도 선회한 배경에는 채무탕감 또는 재조정을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가장 강경하게 채무탕감의 불법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최대 채권국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그리스 채무의 변제는 채무탕감 없이는 타당하지 않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의 채무경감 검토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채무경감 필요성을 시사했다. 투스크 의장은 "그리스가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면 채권단 역시 이에 상응해 그리스 채무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그래야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새로운 그리스 개혁안에 따라 오는 12일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구제금융 협상이 재개될지, 아니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가는 길이 열릴지 갈릴 전망이다. 물론 그 전에 이 개혁안은 그리스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통과된다면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타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한층 높아 보인다.

현지의 관측은 채무탕감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겠지만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게 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한만큼 협상이 타결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리스도 유로존을 떠나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유로존도 그리스의 이탈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도박 사이트들도 그렉시트 확률이 줄어드는 쪽으로 베팅했다. 대표적 도박 사이트인 패디 파워는 그렉시트 확률이 42%로 최신 베팅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7일의 48%에 비해 줄어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