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② 이란, 反美와 親美가 공존하는 나라

[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② 이란, 反美와 親美가 공존하는 나라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작성 2015.07.12 10:08 수정 2015.08.19 19:57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② 이란, 反美와 親美가 공존하는 나라
▲ 테헤란의 명물이 된 '미국 타도' 건물
 

● Down with USA

'Down with USA' 우리 말로 번역하면 '미국 타도'라는 뜻입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글귀입니다. 테헤란 시내에서 테헤란 대학 부근의 엥겔럽 광장으로 가다 보면 건물 한 면 전체에 미국 성조기가 그려진 고층 빌딩을 볼 수 있습니다. 성조기에서 별이 그려진 부분엔 해골이 대신하고 있고 붉은 줄을 따라 폭탄이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성조기 한 가운데는 '미국 타도'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렇듯 테헤란 시내에는 1988년 이란 민간항공기가 미국의 미사일에 격추된 장면을 비롯해 미국을 '악의 축'으로 비난하는 걸개그림과 글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 정치집회 같은 기도회

테헤란에도 금요일이면 이슬람사원마다 기도회가 열립니다. 이란의 특징은 동네마다 작은 사원들이 있기도 하지만 웬만한 도시에는 무슬림들이 한 데 모여 기도회를 가질 수 있는 대형 사원이 하나씩 있습니다. 페르시아어로 '모살라'라고 하는데 '기도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테헤란의 모살라는 규모면에서 이란 최대를 자랑합니다. 듣기로는 20년 전부터 짓기 시작했는데 사원 돔과 미나레트는 아직도 공사 중이었습니다.

최근엔 이란이 이라크에서 IS 격퇴 작전을 주도하면서 테러에 대한 경비가 강화됐습니다. 금속탐지기와 몸수색을 거쳐야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엄격한 종교국가라는 인식처럼 남녀 구분이 확실했습니다. 성별로 출입구가 따로 구분돼 있고 남성은 1층, 여성은 2층으로 구별돼 있습니다. 시내에서 스카프처럼 히잡으로 머리카락을 살짝만 가리고 다니던 모습과 달리 사원을 찾은 여성들은 한결같이 검은 차도르(얼굴만 내놓고 온 몸을 가리는 옷)로 몸을 완전히 감싼 채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사원에선 통신망이 차단될 뿐 아니라 휴대폰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처음 모살라를 찾은 저로선 내부에 들어간 순간 그 규모에 압도당했습니다. 가로로 길게 뻗은 내부는 축구장 서너개를 합친 크기 만 했습니다. 핵협상 시한이 임박해서인지 유난히 많은 신도가 모였습니다. 어림잡아 2만 명은 족히 되는 듯 했습니다. 흐트러짐 없이 줄을 맞춰 사원 바닥에 2만 명이 기도하는 모습은 일대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설교자가 서는 연단은 2층 높이에 마련돼 있습니다. 사원의 돔 모양으로 파인 공간에 설교대가 마련돼 있는데 '미국을 무찔러야 한다'라는 글귀가 페르시아어와 함께 영어로 적혀 있습니다. 이란에서 금요 기도회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테헤란 금요기도회

설교자는 고위 성직자인 아야톨라 모하마드 카샤니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설교내용은 정치적이고 직설적이었습니다. "미국과 사우디, 이스라엘이 손을 맞잡고 IS를 만들어서 시아파를 공격하고 예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비난했습니다. "수니파인 IS가 시아파 사원을 폭탄을 이용해 공격하고 있다"며 수니파에 대한 이란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설교 중간에 '미국 규탄, 사우디 타도'와 같은 구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말이 기도회지 사실상 정치집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란의 거리, 그리고 기도회를 통해서 이란 정부가 미국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 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정치적 反美 문화적 親美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이란 시민들은 '미국'이란 존재에 대해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한 여성은 "이란에서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운다"면서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위성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서 많이 보고 있다"며 미국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란에선 인터넷 통제가 심해서 트위터나 유튜브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이밖에 여러 사이트도 막아놓았는데 한국 포털의 경우 네이버는 접속이 되는 반면 다음은 접속이 안 되기도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사이트를 막고 있는 지는 접속을 시도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극장에서 미국 영화 상영이 금지됐지만 이미 젊은이들은 은밀한 경로를 통해 미국의 문화를 쉽게 접하고 있었습니다.
▲ 테헤란 '물과 불'의 공원, 산과 산을 연결하는 대형 육교가 인상적입니다.

물과 불의 공원에서 만난 다른 여학생은 "미국을 사랑한다"면서 핵 협상이 타결돼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면 꼭 미국에 가고 싶다며 유창한 영어로 답하기도 했습니다.

테헤란에도 한국의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한 파야테케트라는 상가가 있습니다. 이 곳에 가면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과 맥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매장마다 간판에 애플의 사과 로고를 그려놓고 애플 제품을 팔고 있습니다. 심지어 순금으로 칠해진 아이폰 케이스를 매장 전면에 진열해 놓은 곳도 있습니다. 애플 제품은 수입규제로 이란에 직접 들여올 수 없지만 제 3국을 통한 무역이나 속칭 '보따리상'을 통해 이란 시장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다른 나라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싼 편입니다.

아이폰6가 우리 돈 80만 원 정도로 중산층의 월급에 맞먹는 가격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아이폰은 가장 갖고 싶은 전자제품 중 하나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남성은 자신이 쓰는 아이폰을 보여주며 "미국에서 만들든, 이스라엘에서 만들든 중요한 것은 나라가 아니라 품질"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더군요.
▲ 이란의 모스크는 페르시아다운 색감을 자랑합니다.

정치적 태도와 경제·문화적 관계는 별개라는 입장은 젊은이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파야테케트 상가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은 "미국 제품이 이란이나 중국보다 품질이 뛰어난 건 사실 아니냐? 미국 제품이 없어서 못 사는 거지, 들어오기만 한다면 당장 구매할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그 남성의 부인은 "경제 제재 전에는 전 세계의 품질 좋은 제품을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었는데 제재와 함께 수입의 길이 막히면서 좋은 제품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핵 협상이 마무리되기 바란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자제품뿐만이 아닙니다. 하이퍼스타라는 대형마트에선 지난 4월 핵 협상이 잠정타결된 이후 유럽과 미국 제품들이 앞다퉈 매장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네슬레와 트윙스 같은 유럽제품 뿐아니라 팬틴 같은 미국 제품도 하나 둘씩 가판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만난 가정주부는 "제재가 풀려 외국 제품이 많이 들어오면 그만큼 소비자가 선택할 자유가 늘어나 좋은 것 아니냐"며 이런 현상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을 싫어하는가?' 라고 물으면 '네'라고 답할 수 있어도 '이란 시민이 미국을 싫어하는가?'라는 질문엔 전 '절대 아니"라고 말하겠습니다. 정치적인 적대관계는 시대의 흐름과 필요성에 따라 언제든지 우호관계로 바뀔 수 있는 사안입니다. 지금 이란에겐 미국과 등을 지는 편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는데 유리할 수 있기에 '미국 타도'를 외치는 겁니다. 반면에 문화적 친밀도는 오랜 기간 서서히 몸과 마음에 스며들며 작용하는 것으로 쉽게 만들어지지도 바뀌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미국의 문화적.경제적 산물에 이미 익숙하고 친숙해져 있는 이란 시민은 모습은 핵 협상이 타결된 뒤 어떻게 바뀌어갈 지 모릅니다. 그 때도 이란 사회가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단합되고 순응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숩니다. '제재 해제'를 뒤집어보면 '개방'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와 권리를 상징하는 미국 문화가 막힘 없이 들어올 때 엄격한 종교국가 이란은 분명 새로운 변화에 직면할 것입니다. 

▶ [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① 이란, 종교국가의 두 얼굴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