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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① 이란, 종교국가의 두 얼굴

[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① 이란, 종교국가의 두 얼굴
'이란'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제 경우는 페르시아 제국, 호메이니, 엄격한 이슬람국가, 반미, 핵 무기, 호전적, 폐쇄적, 전쟁, 경제 제재 뭐 이런 단어들이 생각납니다. 중동이라는 곳에 사는 제가 이 정도면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선 '중동의 북한'쯤으로 여기는 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습니다. 이란의 수도를 딴 도로입니다. 이란 테헤란엔 서울로가 있듯이 이란은 한국과 친근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왕조가 무너지고, 한국이 미국과 더 친근한 이유로 어느 순간 멀어지게 됐죠. 저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란을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혁명으로 나라를 뒤집어 엎은 뒤 핵무기를 연구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로 인식할 정도였다고 고백합니다.

지난달 말 이란 테헤란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란 핵 협상 때문입니다. 이란은 중동에서도 소위 '왕따'에 가깝습니다. 중동의 대부분 나라가 이슬람 수니파지만 이란이 소수인 시아파를 대표하는 탓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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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소수 종파로 살아남으려다 보니 스스로 외부와 문을 닫아버리는 점도 폐쇄성의 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란 정부는 종교적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는 이집트에서 지내는 외신기자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란과 이집트는 미수교관계입니다.) 입국 하기 한 달 반 전에 취재비자를 신청해야 했고 출국일에 닥쳐서야 비자를 내줬습니다. 그것도 딱 일주일.
▲ 테헤란 공항에선 삼성 광고판과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삼성 광고와 최고 종교 지도자.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란 테헤란을 가는 직항은 없습니다. 사실 중동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항공편은 많지 않습니다. 나름 중동에서 열린 사회를 가진 UAE나 터키에서나 가는 정도죠. 저 역시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밤샘 경로로 29일 아침 6시 테헤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대에서 만난 세관원이 제가 만난 첫 이란인이었습니다. 근데 대뜸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을 하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이란에 대한 제 편견을 깬 첫 사례였습니다.

이란은 십여 년에 걸친 EU와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로 경제상황이 악화된 상태입니다. 자원은 풍부하지만 내다 팔 곳도 없고, 들어와 일할 곳도 줄어들면서 경제난이 최고조에 올라있습니다. 이번 핵 협상에 그렇게 열심히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닌다. 돈도 모자라고 찾는 이들도 적어서일까요? 테헤란 공항은 작았습니다. 김포공항보다 작았습니다. 그 작은 공항 한 가운데 최고 종교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히메네이와 로하니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아줍니다. 바로 밑에 설치된 삼성전자의 광고판이 묘한 여운을 줍니다. 이란에 대한 제 어리석은 편견의 틀을 깨는 전조가 아니었을까요?

● '푸른 도시' 테헤란

테헤란 공항에서 도심까지 택시를 탔습니다. 듣던 대로 택시는 낡았습니다. (물론 이집트의 택시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경제 제재로 자동차 수입도 잘 안되고 생산기술도 낙후됐다는 데 정말 그렇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수석 앞에는 에어백 표시대신 명품 상표가 붙어 있더군요. 웃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서 테헤란의 도심에 진입했습니다. 출근길이라 곳곳이 정체가 됐습니다. 도로에는 한국 자동차 업체가 생산했던 소형승용차 10년 전 모델이 유독 많았습니다. 경제 제재 전에 생산됐던 차들이더군요. 기술 이전이 안되면서 아직도 그 모델이 그대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낡은 차를 빼면 도시의 모든 게 제 상상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 테헤란을 둘러싼 산과 숲

무엇보다 도로변에 가로수가 빽빽이 늘어섰습니다. 잎사귀마다 녹음이 짙게 채워졌습니다. 여기 중동 맞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르렀습니다. 도로도 잘 정비됐습니다. 아스팔트도 깨끗이 깔려 있고, 거리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도로변 공간마다 꽃밭이 조성돼 있고, 로터리 공간은 분수대나 녹지, 조각상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잔디밭과 공원이 곳곳에 마련돼 더위를 피하는 테헤란 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 위의 차를 뻬면 유럽 선진국의 도시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로 도시가 잘 가꿔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테헤란에선 나무를 베면 높은 벌금을 물게 할 정도로 녹지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며칠을 지낸 뒤 제가 내린 결론은 '서울보다 숲과 나무가 많다'였습니다.
▲ 잘 가꿔진 테헤란의 로터리

● 종교 국가의 두 얼굴

1979년 2월 이란은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종교국가로 거듭납니다.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그 위에 신정일치에 가까운 권력을 지닌 최고 종교지도자가 있습니다. 고위 종교지도자는 '신의 징표'라는 뜻을 가진 '아야톨라'라고 불리며 추앙받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메이니도 아야톨라로 불렸고, 지금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하메네이도 아야톨라로 불립니다. 테헤란에는 동시에 3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기도회장이 있을 정도로 이슬람은 이란을 지탱하는 버팀목입니다.

이슬람 규율이 엄격히 적용됩니다. 이란에선 무슬림이 아닐 지라도 모든 여성은 '히잡'이라는 가리개로 목과 머리카락을 가려야 합니다. 사우디의 부르카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맨살을 드러내선 안 되기에 긴 소매와 긴 바지나 치마를 입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도 남녀 칸이 따로 있습니다. 한 칸짜리 버스는 남자들이 앞에 앉고 여자들은 뒤에 앉습니다. 이란에선 버스 요금을 하차할 때 내는 데 여성들 뒷문으로 하차한 뒤 버스가 떠나기 전에 서둘러 앞문까지 가서 요금을 내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음주는 당연하고 가무도 할 수 없습니다. 서양 음악은 틀어서도 안 되고, 여성은 혼자 노래를 불러서도 안 됩니다. 춤은 남녀 모두 금지입니다. 노래 가사에 남녀의 사랑을 담은 내용도 금지합니다. 그래서 상점이나 식당 거리가 참 조용합니다. 규율만 따지면 사우디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동 이슬람권에서 최고의 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란을 꽉 막힌 종교국가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직접 가서 본 이란 사회분위기는 율법상 규제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모두 히잡을 착용하긴 합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완전히 가리지도 목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히잡은 기다란 스카프와 비슷합니다. 머리위에 살짝 걸치는 수준입니다. 앞머리는 누구나 다 내놓고 다닙니다. 심지어 등으로 긴 머리를 그대로 내린 채 히잡으로 윗머리만 살짝 가리고 다니는 여성도 많습니다. 머리카락을 내놓고 다녀서 그런지 머리를 금발이나 붉은 색으로 염색해 멋을 부리는 여성도 아주 많습니다. 분명히 규제 대상이지만 모두가 그러고 다니니 경찰도 당연하게 받아 들이며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 테헤란 여성들은 히잡을 스카프처럼 쓰며 머리칼을 자신 있게 내놓고 다닙니다.

테헤란에서 만난 이란의 젊은 여성들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히잡은 쓰기가 너무 싫다. 쓰기 싫은데 정부에서 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쓰는 거다." 이슬람이란 종교적 가치와 사회적 통제는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이란 시민들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공원에 나와 산책을 즐깁니다.

이란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아보아티시 공원, 물과 불이란 뜻을 가진 이곳엔 테헤란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대형 육교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곳에는 젊은 커플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서로 손을 맞잡거나 팔짱을 끼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여성이 남자친구의 뺨에 은근슬쩍 키스를 하는 상황도 연출됩니다. 폐쇄적이고 엄격한 이슬람 율법의 나라로 이란을 생각했다면 정말 당혹스러운 장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이란 젊은이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 라마단 금식 10%만 지켜

이슬람은 지금 성월인 라마단입니다. 라마단이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물도 음식도 먹지 않는 금식을 합니다. 시아파인 이란의 경우 금식 시간이 수니파 국가에 비해 더 깁니다. 해가 질 때가 아니라 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둠이 깔려야 금식 이후 첫 식사인 이프타르를 행합니다. 이집트의 경우 저녁 6시 40분이면 이프타르에 들어가지만 이란은 저녁 8시 50분이 되서야 이프타르를 알리는 기도문이 울립니다. 금식 시간이 길다고 업무를 단축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이 오후 5시 까지 정상근무를 합니다. 금식이 더 괴롭고 힘들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거리에선 한낮에 물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라마단 금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테헤란 현지에서 근무하는 한국기업 임원은 지사의 이란 현지직원 가운데 90%는 라마단 금식을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정부기관에선 공무원들이 라마단 기간 낮에 식당이 다 문을 닫는 관계로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걸 목격한 사람도 있습니다. 금식의 영향이 적어서 일까요? 테헤란에는 한 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상점이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닙니다. 라마단이면 단축근무와 체력 고갈로 사실상 개점휴업이 되는 이집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라마단 금식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낮에 대놓고 먹고 피우고 마시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하는 정도고, 또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란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이들입니다. 그러면서도 현실 적용에 있어서는상당히 유연한 사고를 지닌 이들 같습니다. 전 이점이 다른 이슬람국가가 지니지 못한 이란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는 '정치적 반미와 문화적 친미'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② 이란, 反美와 親美가 공존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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