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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편의점과 도시락의 이유 있는 '나 홀로 호황'

[취재파일] 편의점과 도시락의 이유 있는 '나 홀로 호황'
"저는 여기에 들어온 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업계에서 이렇게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어디 있나요?"

며칠 전 취재하면서 만난 분의 얘기입니다. IT 업계 얘기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편의점 업체에 다니고 있는 분의 말이었습니다.
 
요즘 유통업계, 특히 백화점과 마트는 매출 떨어지는 소리에 한숨이 나온다고 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꽁꽁 닫아 놓고 있습니다. 정부가 소비를 살려보겠다고 하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트는 영업시간과 출점 등 영업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말 뜬금없는 메르스 사태까지 터지면서 통 큰 손님인 중국인 요우커들까지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편의점 업계는 사정이 다릅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매출성장률이 15.6%를 기록했습니다. 주춤해지긴 했지만 지난 해도 8.7%나 성장했습니다. 올 들어서도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 5월 소매판매액은 1년 전보다 33.5% 증가했습니다.

물론 올 초 담뱃값 인상 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두자릿수 이상 매출이 늘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이와 관련해 증권사 보고서에 '편의점 2차 성장이 시작됐다'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도대체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요?
 
● "한 끼 때우는 게 아닌 즐기는 도시락으로"
 
여기서 편의점 도시락 얘기를 잠깐 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전 푸석한 밥과 시원찮은 반찬의 이미지만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도 없고 지갑도 얇은 직장인들이 간단하게 점심으로 '때울 수 있는', '경기 침체의 상징'인 도시락 정도로요.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을 취재하면서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진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장어를 한 마리 통째로 넣고 대량으로 만들어 유통하기 쉽지 않은 생선 요리가 등장했습니다. 반찬 가짓수도 7개, 9개, 11개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업체들은 새로운 메뉴를 만들기 위해 호텔 셰프를 연구원으로 데려오고, '밥 소믈리에'가 밥맛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업체들이 도시락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몇몇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어봤습니다. 만든 지 1~2시간 내에 먹는 전문점의 도시락보다 맛이 낫다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나쁘진 않았습니다. 곁다리 얘기지만,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각종 도시락 먹방이 올라와 있습니다. 또 각 편의점들의 도시락을 신랄하게 비교하는 동영상도 있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도시락 먹는 사람이 많긴 많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가격도 비싸졌습니다. 새로운 메뉴들 대부분이 4000원에서 4500원 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식당에서 5000원짜리 메뉴를 찾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면 아직은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도시락들이 다양화, 고급화되는 것은 그만큼 팔리고,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겠죠. 업계에선 도시락이 '효자 상품'이라고 합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습니다만 성장률이 엄청납니다. 1~2년 전부터 약 40%씩 매출이 늘고 있습니다.
 
● 도시락과 편의점의 상관관계
 
편의점 관계자는 '무조건 싼 것보다는 가격 대비 품질을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와 1~2인 가구의 증가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도시락 = 평일 점심, 직장인'이란 공식이 깨진 것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한 편의점 업체의 도시락 매출을 봤더니, 저녁시간대 (18~21시) 매출이 점심시간(11시~14시)을 앞섰고, 주말 매출도 예전보다 껑충 뛰었습니다. 저녁에, 주말에 도시락 먹는 싱글족이나 맞벌이 부부들이 늘었단 겁니다. 저녁과 주말 식사로, 한 달에 10~15번 정도 도시락을 먹는다는 싱글 직장인을 만났는데 편의점 도시락의 장점을 이렇게 꼽았습니다. "간편하다. 집 앞에서 필요할 때 사 먹을 수 있다. 양도 적당하다. 무엇보다 예전보다 먹을 만 해졌다는 게 맘에 든다."
 
이런 변화는 편의점의 성장과 궤를 같이합니다. 마트보다 물건값이 대체로 비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편의점은 집 앞에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도시락 같은 먹을거리나, 낱개 또는 소량으로 과일 채소 같은 신선식품도 살 수 있습니다. 품질도 괜찮습니다. 싱글족과 맞벌이 부부 입장에선 몇백 원 비싸지만 마트에서 싸다고 많이 사왔다가 대부분 버리게 되는 것보단 나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편의점이 생긴지 20년이 훌쩍 넘으면서 동네 구멍가게나 슈퍼마켓을 이용했던 고령층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편의점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도 편의점 매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업계는 편의점 선진국인 일본처럼 시장이 더 커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 편의점은 포화상태라는 우려에도 1~2인 가구와 고령층을 겨냥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국내 편의점 시장도 당분간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해 보입니다. 경쟁력 있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개발은 기본입니다. 그렇다고 고급화란 이름으로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이 없어지면 안 되겠죠. 또 한가지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업체와 점주의 불공정 계약 등은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지 동네 슈퍼를 대신한다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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