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보안관 한 명이 두 입구를 지킬 수 있을까

[취재파일] 보안관 한 명이 두 입구를 지킬 수 있을까
대낮에 여교사가 추행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교실 안에서. 여교사를 추행한 괴한은 낮 2시 반에 학교 출입구로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왔고, 운동장에서 본드를 마신 뒤, 교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수업하던 여교사의 목을 조르고 입을 맞추려 했는데, 이때까지 아무런 제지가 없었습니다.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행정직원과 놀라 뛰쳐나온 아이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보안관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낯선 남자가 교실로 들어가는 걸 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학교보안관은 주차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주차관리가 필요했고, 그 일을 보안관이 하고 있엇습니다. 입구는 두 개였고, 경비원은 두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한 입구에 있었고, 다른 입구를 맡던 보안관은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빈 곳으로 피의자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학교보안관 때문은 아닙니다. 학교보안관 제도는 학교 안의 아이들을 외부인의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제도 입안 직전에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동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최우선 과제는 외부인 통제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온전히 '외부인의 침입을 막고, 학교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집중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우선 잔무 때문입니다. 학부모 참관수업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던 그날에도 주차관리를 해야 했듯, 보안관들은 외부인을 차단하는 데 온 힘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4월 서울시 교육협력국이 발표한 <학교 보안관 운영 개선 방안 마련 설문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학교보안관이 아이들의 안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전체의 9.9%가 '학교보안관이 학교안전과 무관한 잡무를 많이 하고 있으므로'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답의 절반 가까이가 '학교보안관이 학교폭력과 범죄예방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대답한 것을 보면, 구체적인 학교보안관의 문제점을 제시한 응답 중에는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잔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근본적으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서울 초등학교에는 한 학교당 2명씩 학교보안관들이 배치돼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두 명이 근무하지는 못합니다. 이들은 주 40시간 근무가 기본 원칙이기 때문에, 학교보안관이 필요한 시간을 서로 나눠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보안관이 필요하다면, 한 보안관은 아침 7시부터 낮 3시까지, 다른 보안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를 하는 겁니다. 오전 9시부터 낮 3시까지만 보안관 두 명이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한 명만 학교에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무상 돌봄교실이 시행되면서 더 심각해졌습니다. 2014년부터 무상 돌봄교실이 시행되면서 이용 학생수가 전년도 12,795명에서 26,592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올해에는 더 늘어 3만 명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학교보안관 수는 같은 기간 1164명에서 1172명으로 8명 늘어난 것이 전부입니다.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밤 10시까지 남는 경우도 많아졌고, 자연스레 학교보안관이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당연히 둘이 함께 근무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를 해야 한다면, 한 보안관은 아침 7시부터 낮 3시까지, 다른 보안관은 낮 3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학교를 낯선 이로부터 지킬 수 있는 보안관은 한 명만 남는 겁니다.

출입구 수보다 적은 경비원으로 입구 경비를 완벽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입구가 2~3개인 학교의 출입구 경비를 보안관 한 명이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한 출입구만 지킬 때도 잠시 화장실에 가기만 하면 구멍이 생기는데, 한 사람이 여러 출입구를 잔무까지 처리하며 지킨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한 일일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이 이었었던 학교에서도 "돌봄교실 시작하면서 인력이 부족해졌"다면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보안관이 근무해야 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인력이든 장비든 확충돼야 학교보안관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출입구에 인터폰을 설치해서 한 명이 동시에 여러 출입구를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든지, 하다못해 돌봄교실 수요가 많은 학교에라도 보안관을 추가로 파견하든지 해야 합니다. 예산이 모자르다고 이대로만 운영한다면,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학교 안전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안관들이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데 입구만 지키겠다고 앉아있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학교보안관들에게 잔무를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아무 일 없는데 잠깐 이것 시키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빈틈을 만드는 겁니다.

서울시는 올해 학교보안관 운영을 위해 217억여 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이번 사건처럼 잔무 때문에 보안관이 잠시 자리를 비워 입구 경비에 실패하면, 그것만으로 이 돈을 낭비한 셈이 됩니다. 반대로 '아무 것도 안 하고 입구만 보는 것 같던 보안관'들이 이 사건을 막아냈다면, 그 한번의 성공만으로도 217억 원의 값어치를 한 겁니다. 보안관들이 자신의 임무를 확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 학교 운동장에서 '본드 흡입'…여교사 성추행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