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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일수교 50주년 '잔치'는 끝났는데…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아베
6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시끌벅적했던 한일수교 50주년(6월 22일)도 벌써 열흘 가까이 지났습니다.

'갑작스러운' 한일 정상의 기념행사 참석으로 수교 50주년은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양국 외교장관들은 회담을 통해 현안이었던 일본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문제 등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습니다. 또 외교장관 회담도 정례화하는 등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던 한일관계가 갑자기 급물살을 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흐름은 수교 50주년 직전 박근혜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미 예고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12일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 간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고, 협의가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집권 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이나 한·일 관계 새 출발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던 대통령의 이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가 정말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고, 대통령이 수교 50주년 행사에 참석해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정말 위안부 문제는 해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을까요? '잔치'는 끝났고, 이제 차분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 日 기자 "위안부 문제 절대 타결 안돼"
[취재파일] 문준모 위안부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한국 주재 일본 특파원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특히 6월 수요집회 현장에는 일본 특파원의 숫자가 한국 기자만큼이나 많을 정도였습니다. 박 대통령 인터뷰 직후, 현장에서 만난 일본 유력언론 특파원에게 "정말 위안부 문제가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올해는 커녕 앞으로도 절대 타결될 일은 없을 겁니다. 언론에서 타협안으로 언급되는 사사에안도 일본 정부에서 제안한 적 없어요. " 그야말로 턱도 없는 얘기라는 투였습니다.

혹시나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던 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교 50주년 행사가 끝난 후, 정부 당국자에게도 대통령이 말한 "마지막 단계"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습니다. 당국자는 "위안부 협의는 서로 원하는 것, 해줄 수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항상 마지막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항상 마지막 디테일이 문제였던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디테일이란 바로 '법적 책임 인정'을 말하는 겁니다. 그 이전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인도적 지원금을 준다는 제안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 지점에서 항상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돈을 바라고 지금까지 고통스러운 세월을 버텼던 건 아닙니다. 최근 김복동 할머니가 그동안 모은 전재산 5,000만 원을 분쟁지역 피해아동과 평화활동가 양성을 위해 선뜻 기부한 것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수요집회에서 만난 김 할머니가 "전쟁이 안 나야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면서 '평화'의 절실함을 말씀하셨던 것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할머니들의 요구는 돈을 초월해 있는데, 상대방은 아직도 "얼마면 돼" 하고 되묻고 있습니다.

● 식민지배 불법성도 인정한 적 없는 日
한일 청구권협정 캡쳐_640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50년 전 맺었던 '한일 청구권협정'입니다.

수교 50주년 보도를 준비하기 위해 협정문을 찾아봤습니다. 어디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물론 '사과'나 '사죄'와 같은 표현도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5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받고, 이와 별개로 한일은 일제 강점기간의 모든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확인했습니다. 물론 해결됐다는 청구 대상목록에는 위안부 문제 등 일제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 협정을 근거로 모든 법적 문제는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자체의 불법성도 인정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서울대 국제법 교수로서 한일 청구권협정 회담에 참여했던 故 정일영 차관도 저서에서 "일제 36년은 한국인에게 이익이었다"는 구보다 망언이 일본 지도층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인식 하에 타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이 위안부 문제의 불법성을 인정할 리 없었을 겁니다. 그들에겐 식민지배 자체가 합법이었고, 한국인들에게 이익을 준 행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 아베 정권 입장에선, 위안부 피해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는 건 수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요구사항일 겁니다. 자기들 입장에선 불법 행위가 아닌데 무엇을 인정하며 무엇을 배상하겠습니까?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건, 한일 청구권 협정을 기반으로 한 한일관계의 기반을 흔들고, 전후 체제를 통째로 뒤집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한국 케이스를 인정했다가, 중국, 동남아 등에서도 피해 배상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을 겁니다.

● 남은 생존자 49명 …"마지막 단계" 발언 진실이길
[취재파일] 문준모 위안부

한일 간에 이토록 분명한 인식의 차이를 알고도 박 대통령은 '마지막 단계'라고 발언한 것인지,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표현한 것인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으면서도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지원금 지급 등의 타협안을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이나 절차는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금방이라도 무엇이 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일까? 정부는 한일관계에 대한 출구전략을 찾고 있습니다. 집권 초에 한일 현안 중에서도 가장 해결이 쉽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내세웠다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뒤늦게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가 한일관계 복원에 적극 나서는 것은, 부상하는 중국에 맞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미국의 바람이 반영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9월 이후에 시진핑 중국 주석과 아베 총리의 관계가 급진전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이 어느 정도 성의만 보여준다면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을에 개최될 가능성이 있는 한중일 정상회담이나, 11월 필리핀에서 열리는 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한일 정상회담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어떻게 회복시켜줄 것인가 하는 겁니다. 지난 11일 81살 김외한 할머니와 91살 김달선 할머니가 돌아가신 데 이어, 24일에는 83살 김연희 할머니까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생존자는 49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만일 8월 아베 담화 시점에서조차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참으로 암담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의 '마지막 단계'라는 언급이 단지 출구전략을 위한 애드벌룬이 아니었길, 한일수교 50주년인 올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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