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다극주의 주창자 프리마코프 前 러시아 총리 사망

다극적 국제질서의 주창자로 유명한 러시아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총리가 지병으로 숨졌습니다.

프라마코프는 그동안 고령에 따른 건강 악화로 병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위대한 관료이자 학자이고 정치인이었다"고 추모하면서 고인의 유족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가 전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프리마코프가 1998년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1929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태어난 프리마코프는 중동 전문가로 1980년대 외교 아카데미 산하 동방학 연구소와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 소장을 지냈습니다.

러시아 최고의 중동 전문가로 손꼽힌 그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초중반 대외정보국 국장을 거쳐 1996년에는 외무장관을 맡았습니다.

외무장관 시절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하고 다극적 국제질서를 주창하면서 러시아의 국익을 지켜내는 강성 실용주의자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8년 총리로 임명된 뒤엔 디폴트를 선언한 러시아의 경제 위기 극복에 앞장서면서 코소보 분쟁에 따른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을 저지하려 애썼습니다.

이듬해 3월 총리로서 미국 방문 길에 올랐던 그가 대서양 상공 위를 비행하던 중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슬라비아 공습 개시 보고를 받고 곧바로 전용기를 돌려 모스크바로 돌아온 일화는 '대서양 회귀 사건'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회자됩되고 있습니다.

프리마코프는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을 '중대한 역사적 실수'라고 강하게 비판했으며 그의 대서양 회귀는 러시아가 친서방 노선을 버리는 대외정책 전환의 분수령이 됐습니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에 힘입어 한때 옐친 대통령의 후계자로도 거론되던 그는 1999년 5월 총리에서 해임됐습니다.

프리마코프의 커지는 영향력과 인기에 위기의식을 느끼던 옐친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푸틴을 후계자로 내정한 데 따른 결과였습니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푸틴 대통령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위험이 고조되자 전쟁을 막기 위해 프리마코프를 이라크 특사로 파견하는 등 중동 전문가로서 그의 능력을 활용하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프리마코프를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단호하게 맞서면서 다극주의를 실현하고 러시아의 이익을 지켜 내려 한 애국적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리마코프는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소련 연방회의 의장이던 1990년 3월 한-소 수교 협상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 최고위원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해 양국 수교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여당 대표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면담으로 한-소 수교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