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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 묘연했던 해미읍성 미륵불 찾은 황준구 씨

"전국 각지 미륵불을 찾아다녔지만 읍성 동서남북 네 곳에 돌미륵을 세운 곳은 서산 해미읍성이 유일했어요. 그런데 그 중 하나가 가짜더란 말이에요."

524년 전 해미읍성 축조 당시(성종 22년, 1491년) 읍성의 기(氣)를 살리기 위해 동서남북에 설치한 사방비보(四方裨補) 가운데 하나인 산수리 미륵불(돌장승)이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내 호암미술관에 있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한 황준구(70) 씨.

홍익대 미대에서 디자인을 가르쳤고 CF를 만들면서 토속 신앙과 '토속 표정'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그는 퇴임 이후 카메라를 들고 전국 각지 미륵불이나 장승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날 해미읍성 미륵불을 보러 갔다.

해미읍성은 다른 읍성과 달리 사방에 수호신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4개 돌미륵 중 하나가 주민들 몰래 팔려나가 모조품이 대신 서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없어진 돌미륵은 1984년 산수리 저수지 조성 공사 후 마을 주민들이 '아리랑고개'로 끌어올려 세워 둔 것을, 당시 이장 등 '개발위원회' 관계자들이 주민 동의 없이 장물업자에게 팔아넘긴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당시 경찰은 '원상복구'를 조건으로 관계자들을 처벌하지 않았고, 관계자들은 4방 수호신 중 북쪽 수호신인 황락리 미륵불을 흉내 낸 가짜 미륵불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4방 수호신 중 하나가 모조품이라는 안타까움과 한 때 이순신 장군이 머물던 곳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생각이 미친 그는 없어진 돌미륵을 찾아나서기로 마음먹었다.

'해미읍성 수호신'을 마음에 품은 채 그는 4년여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지만 돌미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11년 4월 어느 날 용인 에버랜드의 호암미술관에서 자신의 눈길을 사로잡는 돌장승 하나와 마주쳤다.

그 돌장승은, 차를 세우고 미술관으로 올라가던 그를 '너무도 낯익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두근대는 마음을 억누르고 서둘러 사진을 찍고는 집으로 돌아와 거의 10년 전 찍은 해미읍성 돌미륵 사진들을 찾아내 한참을 대조했다.

호암미술관 돌장승이 그가 찾아다니던 해미읍성 동쪽 미륵불이 틀림없다고 믿은 그는 바로 다음날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앞으로 사진을 동봉한 등기우편을 보냈다.

하루라도 빨리 돌미륵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시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제보'를 거듭했지만 서산시 당국은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전화로 문의해도, 미술관 돌장승이 해미읍성 돌미륵이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그러다 5년째인 지난 4월 말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완섭 서산시장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내 도난 문화재 회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고, 그제야 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7일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장이 돌미륵이 있던 마을의 전·현직 이장과 함께 용인 호암미술관을 찾아갔고, 두 이장은 "마을에 있던 돌미륵이 맞다"고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상황 진전은 없었고 주민들이 직접 나서 문화재 반환을 위한 청원 운동을 준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시로부터는 "비지정문화재인 데다 1984년 당시 마을 이장 등이 포함된 '개발위원회'가 업자에게 판 것이어서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는 실망스러운 답변만 들었다.

황 씨는 "해미읍성이 유일하게 4방 수호신을 갖고 있는 읍성이라는 점에서도 돌미륵의 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문제의 돌미륵은 해미읍성 4방 수호신 가운데 가장 잘생겼고, 호암미술관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 중앙에 모셔져 있다"고 역사·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 씨는 그동안 경남 밀양 산내면 석골의 '벅수'(장승)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것을 찾아냈고, 경기도 용인의 문촌리 문시랑이마을의 '미륵댕이'(미륵당)가 경기도 광주시 '얼굴박물관'에 있는 것을 발견해 모두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밀양 벅수는 1987년, 용인 미륵댕이는 1986년 각각 도난당한 뒤 역시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문화재들이다.

두 지역 주민들은 거의 30년 만에 '마을의 수호신'이 돌아왔다며 뛸 듯이 기뻐했고 마을잔치를 열어 정성스럽게 안치식까지 치렀다.

황 씨는 "어떤 경위에서 일어났건, 지정문화재든 비지정문화재든 문화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 가는 게 마땅하다"며 "호암미술관 측에서도 우리 역사와 전통, 민속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합당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황 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전문 도굴꾼들에 의한 문화재 도굴과 밀매가 빈번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럴만한 수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16년의 발품의 기록을 곧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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