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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암 환자 시신으로 돈벌이하는 의사

[월드리포트] 암 환자 시신으로 돈벌이하는 의사
지난 1월 중국 안휘성 수저우시의 공안국에 7개 보험회사 공동 명의로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관할 지역인 링비현에서 대규모 보험 사기가 벌어진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최근 링비현 주민 5명이 잇따라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이들이 모두 거액의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험금 수령자가 모두 이 지역 사회복지사 공무원인 양 모 씨였습니다. 수저우시 공안국은 매우 수상쩍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안국은 자체 인력뿐 아니라 은행감독원, 인민은행 금융위험조사팀 등의 요원까지 참여시켜 합동 조사팀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4개월 넘게 양 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의 행적을 쫓았습니다. 그 결과 양 씨는 물론 지역 의료기관의 의사 3명까지 가담해 벌인 보험사기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중국 의료인

양 씨 등은 2011년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말기 암 환자들을 포섭했습니다. 이미 중증 암의 발병으로 생명보험은 들기 어려우니 교통사고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서 나눠 갖자고 꾀었습니다. 추이모와 천 모, 량 모, 장 모, 이 모 씨 등의 암 환자가 양 씨의 계획에 '혹' 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사망 원인을 교통사고로 인한 외상으로 꾸미는 일이었습니다.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됐습니다. 마을 의료기관의 의사 3명에게 보험금 일부를 주기로 했습니다. 이후 추이씨 등은 42건의 교통 상해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이들이 암으로 사망하면 포섭된 의사 3명이 돌아가면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라고 확인서를 써줬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이미 140만 위안, 우리 돈 약 2억 5천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습니다. 또 앞으로 받기로 확정된 보험금도 160만 위안, 2억 8천여만 원이나 됐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거액의 보험금을 잇달아 받아내면서 보험회사들의 의심을 사게 됐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수사팀은 사회복지사 양 씨의 통화내역을 조사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양 씨가 교통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고된 시점 직전에 사고 운전자, 그리고 사고로 실려 간 병원 의사와 수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장 씨의 사망 진단서에서 나왔습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에 이미 사망했다는 확인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이미 숨진 시신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양 씨와 의사들은 모두 합동 수사팀에 구속됐습니다.
중국 의료인

이 사건에 대해 중국의 여론이 경악한 부분은 보험사기 자체보다는 의사가 3명이나 가담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인술을 펼치기는커녕 파렴치한 사기 행각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중국인들은 혀를 찼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의사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진 경우가 이번 한 번이 아닙니다. 지난해 성을 넘나들며 유아 인신매매를 해온 일당이 검거됐는데 여기에도 의사가 포함됐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농촌의 보건소장이었던 문제의 여의사는 자신이 맡은 산모가 출산한 아기를 이미 사망했다고 속여 빼돌린 뒤 인신매매단에 공급해왔습니다. 보험사기 등을 위해 가짜 진단서를 발급해주는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중국 의료계에 특별히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일까요? 중국 언론들은 의료인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그 원인으로 꼽습니다. 중국의사협회가 발간한 '중국취업의사백서'에서는 66%의 의사들이 수입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합니다. 실제 의대를 졸업한 뒤 종합병원에 취업한 의사의 월급이 5천 위안, 우리 돈 90만 원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전공 분야보다 오래 공부하고 업무 강도는 센데 수입은 이 정도이니 불만을 가질 만도 합니다.

얼마 전 베이징 대학 어문 계열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원래 꿈은 의사였다'고 말했습니다. 왜 원하던 의학 계열 전공을 택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속으로는 당연히 '입학시험 성적이 부족해서'라는 답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의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부모님과 친지들이 워낙 반대해서요." 아니, 우리나라 부모들은 가기 싫어하는 자녀를 억지로 의대에 보내는데 중국 부모들은 반대한다고? "뭐하러 오래 공부해야 하고 수입도 좋지 않은데 고생만 하는 의사가 되려 하느냐고 극구 말리셨어요."

중국에서 의대의 인기가 높지 않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리 높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우수한 학생들은 경제학이나, IT 계열 공학 분야에 주로 가고 의대는 기피합니다."

중국 의료인
의료인들에 대한 박한 대우는 꼭 범죄가 아니라도 중국 의료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 사회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의사들에 대한 '홍바오(촌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상당수 수술 환자들은 담당 집도의에게 의례적으로 사례금을 건넵니다. 심지어 재력이 입는 환자의 경우 자신의 수술 날 아침에 담당 의사 집으로 최고급 차를 보내 모셔오게 합니다.

사례금까지 받은 환자에게 더 신경을 쓰고 수술에 힘을 쏟게 되는 게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설사 의사가 돈만 받을 뿐 의료 서비스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촌지를 건네지 못한 환자는 지레 소홀한 취급을 받는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인들이 적은 월급을 보충받기 위해 성과급에 매달리는 상황도 부정적인 결과를 부릅니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의사들은 병원의 수익을 올려 성과급을 늘리기 위해 과잉 진료, 과잉 처방을 일삼게 됩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의 불신과 불만을 부릅니다.

물론 의사의 급여를 올려주는 것이 중국 의료계의 모든 병폐를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중국보다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훨씬 높아 수재들이 의대부터 채우고 보는 우리나라도 중국이 고민하는 의료계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중국이 더 좋은 양질의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려면, 좀 더 반대급부에 연연하지 않고 양심적인 의술을 베풀 환경을 마련하려면 의료인들의 근무 여건을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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