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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 정리①…뚜렷한 의혹과 모호한 해명

"우국을 읽고 나서 다시 얘기하시죠."

지난 17일, 창비의 입장을 묻는 기자의 전화에 창비 측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우국’을 읽고 나면 당신의 생각이 달라질 테니, 다시 얘기하자고.

"두 작품을 읽고 나면, 이응준씨의 논조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아요. 저 역시 동의할 수 없고요. 예컨대 한 연짜리 시에서 비유 하나가 같다고 해서, 두 시를 표절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소설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긴 분량의 단편소설에서 서너 문장이 유사하다고 해서 그 작품을 표절이라고 보긴 어려운 거죠. 그리고 표절은 여러가지를 따져볼 수 있잖아요.

비문헌적 유사성과 문헌적 유사성을 따져보고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냐를 가지고 판단을 하게 되죠. 그런데 진짜 이 작품을 읽지 않고 일부의 문장만 가지고 표절이라고 얘기하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거죠."


이 통화를 할 당시, 나는 신경숙 작가의 '전설'만을 읽은 상태였다. 전날인 16일 이응준 작가의 허핑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비교해 옮겨놓은 '우국'의 일부 문장을 읽었을 뿐이었다. 이응준 씨가 비교해 놓은 부분만으로도 나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은 충격에 빠진 상태였지만, 그래 어디 한 번 읽고 나서 얘기하자고 답했다.

표절의 대상으로 지목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은 1983년 '주우'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김후란 시인의 번역본이다. 절판되어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상태여서 (다른 번역본도 있지만, 김후란 시인의 번역 표현이 신경숙 씨의 ‘전설’ 속 표현과 일치하는만큼, 83년 번역본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었다. 20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이어서 금세 읽힌다. 독자들도 공공도서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우국’은 중일전쟁 발발 전인 1936년이 배경이다. 타케야마 중위가 아름다운 젊은 부인을 맞아 결혼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응준 씨가 적시해놓은 부분 외에도 두 소설은 여러 부분에서 겹쳐진다.
취파_우체국첫페이지

우국의 앞부분 중 일부를 읽어보자.
 
"..신랑 신부의 결혼 기념 사진 만을 대한 사람도 이 두 사람의 뛰어난 미남 미녀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감탄의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군복 차림의 중위는 군도를 왼손으로 짚고 오른손에는 군모를 벗어 들고 늠름하게 신부를 감싸듯 서 있었다. 참으로 수려한 얼굴이었다. 짙은 눈썹도 시원스런 눈매도 젊음이 갖는 청일함과 명민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순백의 혼례복 차림을 한 신부의 아름다움 역시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 눈이 부셨다. 고운 눈썹 밑의 큼직한 눈에도, 도톰한 입술에도 화사함과 고귀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소매 끝에서 조심스레 빠져 나와 부채를 쥐고 있는 손가락이 가지런히 놓인 게 마치 메꽃 망울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자결한 뒤, 사람들은 자주 이 사진을 꺼내 들어 바라보고는 이렇듯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남녀의 결합이란 자칫 불길한 것을 품더라고 한탄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우국' (김후란 번역)

 

눈부신 두 남녀의 결혼과 그 완벽한 조합에서 풍겨나오는 불길한 예감을 표현한 이 내용은, 신경숙 씨의 단편 '전설'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그들은 누가 봐도 어울리는 청춘의 한쌍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누구나 두 사람의 뛰어난 조화에 감탄의 소리를 내뱉게 된다. 남자의 명민함은 여자의 우아함과 함께 있을 때 더욱 빛이 나고, 여자의 방울꽃 같은 연약함은 남자의 짙은 눈썹 아래에서 화사해진다.

보는 사람마다 그들의 나무랄 데 없는 조화에 감탄했지만 남자의 아버지인 저택 주인과 그들을 길러낸 유모만은 그들의 아름다움에 잠시잠시 아득해지곤 했다. 그들은 두 남녀의 완벽한 조화를 바라보며 각자 인생의 뒷면을 생각하곤 했다. 어떤 쓰라림이 끼어들지나 않을까, 하는. 그 땐 저들이 저렇게 아름다운만큼 쓰라림이 관통해가는 자리 또한 꼭 저렇게 뚫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 신경숙 '전설'

취파_신경숙전설

이렇게 결혼을 한 이 젊은 부부의 애정을 표현하는 부분이 바로 이번에 이응준 씨가 비교 지적하면서, 전국민이 알게 되고, 패러디까지 생산해내고 있는 그 문단이다. 여기서는 이응준 씨가 발췌한 문단의 바로 앞 문장부터 읽어보기로 하자.

"...결혼해서 몇 달이 지나자 레이코의 아름다움은 한층 세련되면서 마치 비 내린 뒤 얼굴을 내민 달처럼 환해졌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우국' (김후란 번역)

 

"항아리를 내던지기 전의 여자는 결혼 전보다 한층 아름다움이 세련되어 보였다. 달밤의 백합같이 환하기도 했다. 소매끝으로 나와 있는 손가락에조차 비내린 뒤의 백합 밭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밴 듯싶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있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그러나 이 커플에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닥친다. '우국'의 남자는 동료들이 쿠데타를 벌이게 되고, '전설'의 남자는 6.25전쟁이 터져 친구들이 줄줄이 참전을 하는데, 여기서도 눈에 익은 문장이 발견된다.

"나도 모르고 있었어. 그 녀석들은 날 불러 내지 않았어. 필경 내가 신혼 중인 걸 생각했던 거지."

– 미시마 유키오 '우국' (김후란 번역)


"내가 신혼이라 친구들은 내게 말도 없이 자원했소."

- 신경숙 '전설'
 

문제는, 이들 문장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두 소설은 분명 세부적으로는 전혀 다른 줄거리이지만, 읽고 나면 마치 매우 닮은 형제자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건 괜한 느낌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평론가 정문순 씨가 이미 15년 전인 2000년,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을 가능성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일제 파시즘 때 동료들의 친위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두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버린다."

- 정문순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문예중앙 2000년 가을호)

 
'두 작품을 다 읽고 말하자'던 출판사 창비 측은 '다 읽어보니 표절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화됐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신혼부부들의 일상을 묘사하는 소설은 찾자고 들면 더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 같은 경우는 굉장히 마초적이잖아요, 완성도도 떨어지고."

이 설명은 이 날(17일) 늦은 오후 배포된 '창비 문학출판부의 입장'이라는 글에 그대로 실렸다. 작품의 일부에 불과하고, '우국'보다 신 작가의 표현이 더 우수하다는 내용의 이 날 해명은, '우국은 알지 못한다'는 신경숙 작가의 해명보다 더 큰 독자들의 배신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여론을 의식했는지, 창비는 바로 다음날인 18일,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 자료를 냈지만, 역시 '표절'에 대한 판단은 쏙 빼놓았고, 독자들의 비난도 잠재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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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 작가의 모호한 해명

그리고 23일, 이응준 씨의 지적이 나오고 일주일 만에, 정문순 평론가의 첫 지적 이후 무려 15년 만에 신경숙 작가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입을 열었다. 신 작가가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해오지 않던 상태에서 나온 단독 인터뷰라, 모든 매체가 이 기사를 받아쓰는 상황이 됐다. SBS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은 "표절 지적, 맞다는 생각…독자들께 사과"이지만, 인터뷰 전문을 보면 이런 표현은 없다. "문장을 대조해 보면서 이응준 씨가 느닷없이 왜 이랬을까, 의문을 안 갖기로 했어요. 대조해 보는 순간 나도 그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 신 작가를 직접 인터뷰한 경향신문 한윤정 선임기자에게 문의하니 '인터뷰 전문의 표현이 신 작가의 말과 가장 가깝다'고 설명했다.

신 작가는 또 "1980년대 말에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읽었어요...그런데 '우국'은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봐도 안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어요. 어떤 작품을 반쯤 읽다 말고 이건 전에 읽었던 작품이구나, 하는 식이니까"

신 작가의 말은 결국, ‘우국은 읽은 적이 없다- 그런데 전설과 우국을 비교하니 비슷하다- 의문이 제기될 만 하다는 것 인정- 혹시 내가 우국을 잃고도 기억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표절은 아니다’ 로 정리된다. 이러니 SNS에서 ‘아몰랑’이냐 ‘유체이탈 화법’이냐는 비난이 나올 수 밖에.
 
● "의식적 표절로 인정해야"

'표절이냐 아니냐', 결국 '맞다', '아니다'로 대답할 문제에, 신경숙 씨도 출판사도 'YES' 혹은 'NO'라는 명확한 답은 내놓지 않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의식적 표절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씨는 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주최한 토론회(23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서 익명을 전제로 의견을 밝힌 한 작가 역시 이 사안을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작가 양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몇 구절이라도 가져왔을 때는 각주 표시를 한다든지 알려야죠. 표절 자체를 부인하면 안 됩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신경숙 작가도 피해자'라는 동정론도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이 문제는 ‘모난 돌이 정 맞은’ 경우도 아니고, 작가 한 명이 모호한 설명을 남기고 출판사 뒤에 숨어서 시간이 지나길 기다릴 문제도 아니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취재파일에서 살펴보겠다.

▶ [취재파일]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 정리②…15년간의 '묵살'과 '문학권력'
 
▶ [골룸] 목동살롱08 : 문화계를 덮친 메르스급 충격, 신경숙 '표절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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