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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쿠바에 간 감은사지 석탑

[취재파일] 쿠바에 간 감은사지 석탑
여행자의 로망이라고 부르는 쿠바에서는 지난 6월22일 (한국시간으로는 23일 새벽) 한 달간 계속 되었던 아바나 비엔날레라는 미술축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다소 생소하실 지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날레 중의 하나입니다. 문화 예술인 사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비엔날레에 한국의 현대미술작가가 참여해 쿠바와 한국 양국 모두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저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보시죠. 이야기의 시작은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취재파일] 쿠바에
(쿠바에서 볼 수 있는 올드카)




"쿠바에 가신다구요?"

오랜만에 만난 사진작가 선생님이 꺼내신 이야기에  궁금증이 갑자기 밀려왔습니다. '아니 갑자기 쿠바?' 사연인즉 쿠바에서 열리는 미술축제, 아바나 비엔날레에 초청을 받았는데 그저 막연한 로망 때문인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덜컥 수락했다는 겁니다.

"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해달라고 제안 받은 것으로 아는데……."

"그랬죠. 그런데 쿠바잖아요!"

재미있는 건 동료 작가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겁니다. '쿠바잖아, 당연히 쿠바를 가야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곳은 누구나 있겠지만 쿠바는 참 많은 사람들이 로망으로 여기는 곳 같습니다. 저는 십 년 전 봤던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을 통해 쿠바를 낭만적인 곳으로 인정해 버렸습니다. 귀여운 할아버지의 연주와 클래식한 원색의 자동차들이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 그때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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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비엔날레에 참여한 한국작가 한성필)


이번에 쿠바에 초청받은 한국 작가는 사진과 설치작업을 많이 하는 미술가, 한성필 선생님입니다.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인데요. 그곳에서 열리는 '아바나 비엔날레'에 참여하려면 작가가 비용 지출을 감당해야 합니다. 자비로 참여하든 후원을 받든 간에 상당히 큰 부담이 되는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쿠바가 부유한 나라는 아니니까요. 문제는 한 작가의 작품이 '좀' 크다는데 있습니다. '뭐 액자 몇 개 가지고 가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신분도 있으실 텐데요. 요즘 미술작품은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확장시키려는 의도의 작품이 많아서, 비엔날레 같은 행사에 출품하는 경우 캔버스나 액자에 한정된 작품은 오히려 보기 힘듭니다. 한성필 작가의 작품도 사진작품을 대형프린트로 출력한 후 건물 전체를 가리는 설치미술입니다. 이번에 쿠바에 가지고 간 작품은 가로 34m, 세로 28m의 대형 가림막입니다. 작품의 무게만 해도 400kg 이상이 나간다고 하는데요, 한국에서 쿠바까지 운반할 생각을 하면 '견적이 어마어마하겠네'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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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화가의 그림, 체게바라 초상화)


다행히 비엔날레 참여를 준비하면서 쿠바와 미국, 그리고 쿠바와 한국의 외교적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했고, 외교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외교 당국 등의 후원도 일부분 받을 수 있었답니다.  낭만의 나라인 동시에 취재하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공산주의 국가, 쿠바. 한국과의 수교가 긍정적으로 전망되는 시점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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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 카피톨리오가 보이는 풍경)


막상 출장을 가려고 정보를 모으다 보니 보통의 여행지와 다른 취급을 받는 곳이란 점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의 자세한 정보 보다는 수필집 같은 감성적인 여행기가 대부분인 점도 그렇고 뭔가 확실한 실체가 잡히지 않습니다. 기존에 방문했던 한국 취재진의 다큐멘터리, 영상기록도 역시나 '낭만적'입니다. 쿠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사전취재를 도와주신 분은 쿠바인과 결혼한 정호현 씨인데요. 이 분은 '쿠바의 연인'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인 그 '정호현' 감독이 맞습니다. 뭔가 쿠바와 엮이면 낭만, 정열이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 것 같습니다. 사전에 얻은 정보라곤 '인터넷이 느리다', '사전섭외가 어렵다', '일정을 미리 잡기 힘들다' 정도 입니다. 쿠바에 가봐야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슨한 답이 무척 답답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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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상의를 입고 있는 쿠바인)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꿈처럼 실현되기 어려운 게 없다던데 그렇게 덜컥 쿠바에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나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쿠바 행 비행기는 직항이 없습니다. 미수교 국가인 영향도 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를 경유하는 방법이 있고,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미가 워낙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직항이 없으니 꼬박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경유하는 시간을 제외한 순수한 탑승시간만 그렇습니다. 쿠바 아바나는 지겨운 비행기 이코노미석 스물 두 시간으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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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 시 전경)


쿠바 아바나에서의 첫날 밤을 지친 몸과, 그 몸을 쉴 수 없게 만드는 설렘을 함께 안고 보낸 후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한성필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곳입니다. 한 작가의 작품은 경주의 감은사지 석탑의 이미지를 대형 인화한 가림막인데 아바나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 건물의 전면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혁명 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던 건물, ‘카피톨리오’ 바로 맞은편에 설치되었는데 말 그대로 시내 중심부 입니다. 쿠바에서는 대형 광고물이 없습니다. 아니 광고물 자체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광고는 때론 공해처럼 여겨질 때도 있는데요. 아예 대형 광고판이 없는 곳에 거대한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신기해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자전거를 타고가다 멈춰서, 걸어가다가 눈을 못 떼는 광경이 연출됩니다. 아바나 비엔날레는 주전시장도 있지만 아바나 시내 곳곳이 전시공간이 됩니다. 한 달 동안 도시 전체가 아바나 비엔날레라는 잔치를 위한 공간으로 바뀝니다. 한 작가도 작품 전시장로를 주 전시장 내부공간이 아닌 시내 한복판을 선택했습니다. 작품이 위치 선정도 생각할 '꺼리'를 만드는 작업의 일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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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비엔날레 주전시장 풍경 - 쿠바 작가의 퍼포먼스)


카피톨리오는 백악관을 지었던 미국의 건축가가 3년여에 걸쳐 완성한 건물입니다. 미국 백악관을 그대로 빼다 박았습니다. 한때 미국의 속국 상태였던 역사적인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온 아시아 한국의 석탑 이미지는 쿠바의 새로운 평안을 기원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음악과 정열적인 춤을 사랑하는 쿠바 사람들에게, 고요한 기원을 품고 있는 석탑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조용한 치유의 경험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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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에 설치된 감은사지 석탑 가림막작품)


감은사지 석탑 작품이 다름 아닌 쿠바에 설치된 점은 여러가지 뜻을 포함합니다. 이념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는 대형 설치물을 잘 허가해 주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군사정권 시절 예술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던 작가들은 대형걸개그림, 판화 등을 이용해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작품들은 탄압을 받아야 했고 지금도 작가의 이름 보다는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저평가 되고 있습니다. 쿠바도 예술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하는 걱정 때문인지, 대형 이미지 설치물이 허용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근래 들어서는 한성필 작가의 작품의 유일하다고 하는군요.  제 생각에는 공산당 관계기관에서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도 한국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평화와 치유의 메시지를 이해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지금 공사 중인 카피톨리오는 수리를 마치는 데로 다시 주요 정부기관으로 사용할 예정인데, 아무리 비엔날레 참여 작품이라고 해도 작품설치 허가가 나왔다는 것 자체를 대단하게 여기는 게 현지 분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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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국영신문 그란마 1면. '세상의 모든 자태를 아바나에 드러내다'라는 제목으로 소개)


작품이 설치된 이후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쿠바의 신문은 공산당 기관지인 국영신문 ‘그란마’가 전국규모로는 유일합니다. 그란마는 한성필 작가의 작품을 비엔날레 특집으로 1면에 소개했습니다. 그란마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를 취재 왔던 외신들도 앞 다투어 보도를 했는데요. AP통신의 보도를 거꾸로 한국에서 받아 쓴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쿠바에 방문해 지원을 하고 있던 전비호 주멕시코 대사도 현지 반응에 적잖이 놀라워했습니다. 비엔날레에 한국작가가 참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큰데 상당한 반향을 얻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란마 기사 관련한 에피소드도 하나 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쿠바에 갈 때 사전허가와 서류를 갖춰서 항공촬영용 드론장비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현지 세관에서 출장 기간 내내 반입자체를 못하게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도 세관 창고에서 드론 장비를 꺼내 주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요. 한성필 작가가 그란마 신문을 꺼내들고 기사에 난 이름이 바로 본인이라고 여권의 이름과 같이 보여주며 설득했습니다.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던 세관 직원이 그때서야 관심을 가지고 상부에 보고하더니 바로 장비를 꺼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취재파일] 쿠바에
(SBS와 인터뷰 중인 전비호 주멕시코 대사)


쿠바를 '해풍에 삭아 내린 페인트조차 그림이 되는 곳'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곳에서 한국작가의 작품이 '그림'이 되었다는 사실에 저도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잔잔하지만 거대한 감은사지 석탑작품은 새로운 랜드 마크인 동시에 치유와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현대미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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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국회의사당 카피톨리오와 마주보고 있는 작품)


출장 기간 중에 저로서는 새로운 경험을 한 가지 했습니다. 영상취재기자인 제 특성상 취재원을 인터뷰하고 취재기자를 촬영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제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설 일은 거의 없는데요. 보통은 취재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적절한 말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 동행한 취재기자 선배가 '내 목상태가 그저 그러니 너도 촬영해라'는 말에 얼떨결에 저도 마이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쿠바니까' 예상치 못했던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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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중인 기자)


보여드리는 영상은 한성필 작가의 설치작품 '조화로운 아바나'가 쿠바에 간 사연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왜 하필 경주에 있는 감은사지 석탑이 작품의 주제로 선정되었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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