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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3시간 기다려 3분 진찰…불통·불신의 中 의료계

[월드리포트] 3시간 기다려 3분 진찰…불통·불신의 中 의료계
앞선 글에서 간단히 소개해드렸습니다. 원링시 의사 습격 사망 사건. 치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진찰중인 의사들을 습격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그 행태의 잔인함 때문입니다. ▶[월드리포트] 암 재발하자 담당의에게 방화 테러…위협받는 中 의료인

범인인 33살 렌언칭은 2013년 10월25일 오전 8시 원링시 제1 인민병원 5층 구강과를 찾아갔습니다. 왼손에 도끼를, 오른 손에는 식칼을 들었습니다.

먼저 주치의였던 차이 모 선생의 진찰실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환자 5명이 렌씨의 흉흉한 모습을 보고 문을 잠근 뒤 몸으로 막았습니다. 렌씨는 문 유리창을 도끼로 깨며 진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중국 의료인 폭력
그러자 바로 옆 왕모 구강과 주임의 진찰실로 쳐들어갔습니다. 렌씨의 무자비한 공격에 여러 군데 부상당한 왕 주임은 가까스로 진찰실을 탈출해 이비인후과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렌씨는 끝까지 쫓아가 왕 과장을 흉기로 수차례 찔렀습니다. 왕 주임은 끝내 숨졌습니다. 이비인후과 주임이었던 또 다른 왕모 선생도 렌씨의 공격에 폐를 관통 당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방사선과 부주임 의사 역시 팔과 가슴에 자상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한참 난동을 벌이고 나서야 렌씨는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렌씨는 이 병원에서 1년 전 차이 선생의 집도로 내시경을 이용한 비강 미세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수술도 아니었고 과정도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렌씨는 수술 후 호흡에 곤란을 겪었습니다. 해당 병원에서 2차례 재진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수술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역의 다른 대형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았습니다. 역시 불편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술이 잘 됐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지도, 고쳐주지도 않자 렌씨는 의료진에 대한 복수에 나섰던 것입니다.

렌씨가 흉기를 휘두르며 잔악하게 공격하는 모습은 병원내 폐쇄회로 화면에 모두 담겼고 고스란히 보도됐습니다. 중국 의료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의료인들이 연일 시위를 벌였습니다. 병원 내 보안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의료인을 환자의 공격에서 보호하라고 외쳤습니다.

리커창 총리까지 나섰습니다. 관계 부처와 회의를 갖고 의료인 공격 행위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최고 수뇌부까지 나서자 중국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중국 의료인 폭력

우선 의료인 공격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일반적인 폭력 행위보다 가중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의료기관에 대한 보안 수준을 크게 높였습니다. 보안 요원 수를 아예 법으로 정했습니다. 의료인 총 인원의 3%나 병상 20상에 1명, 또는 평균 내방 환자수의 0.3%에서 가장 많은 수치를 채택하도록 했습니다. 병원에서 가장 폭력에 취약한 지역인 응급실과 진찰실, 로비 등에는 경비 요원을 상주하도록 했습니다. 또 4교대 근무조를 짜서 24시간 병원을 순찰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의사 방화 테러 사건이 발생한 병원 역시 방호 대책은 수준급이었습니다. 보안 요원 수만 27명에 달했습니다. 관할 파출소와 24시간 연계 신고 시스템을 갖춰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 뒤 의료인 공격 사건은 확실히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중국 의사협회 법률사무부 주임 정리창의 설명입니다.

"지난해부터 의료인 공격 사건의 빈도수나 폭력 정도가 개선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처벌이 엄중해지고 보안 수준이 강화된 덕이라 여겼죠.

하지만 최근 다시 사태가 악화되는 느낌입니다. 지난달 25일 원링시 의사 습격 사망 사건을 일으킨 렌언칭의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비교적 신속하게 형이 집행된 것이죠. 그만큼 의료인 공격을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보여준 셈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20일 동안 무려 12건의 의료인에 대한 폭력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마치 렌의 사형을 비웃듯 말입니다."

정 주임은 처벌이나 경비 강화와 같은 대증 요법만으로는 의료인 공격을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습니다. "의료인 공격은 우리 의료 제도, 나아가 사회의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 치유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치지 않는다면 해결에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사회에서 의료인에 대한 분노가 만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스 퇴치'의 영웅이자 중국 의료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의사인 중난산 중국 과학원 원사가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내놓은 쓴 소리를 들어보시죠.

"조금만 이름 있는 의사는 매일 50명 넘는 환자를 돌봐야 합니다. 그게 쉬워 보이나요? 종합병원 의사들의 외래 진료는 하루 4시간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한 시간에 12명 넘게 진찰해야 하고 결국 의사가 환자를 보는 시간은 1인당 평균 3분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환자는 예약을 하고도 와서 3시간 이상 기다립니다. 3시간 기다려서 의사의 얼굴을 3분 본다면 환자가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의사에게 매일 진찰은 전쟁과도 같습니다."

의료 자원의 심각한 불균형도 한 원인입니다. 도시에 비해 시골의 의료 시설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의료 체계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 기초 의료시설이 부실합니다. 그러다보니 대도시의 대형 병원들로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의료계 인사의 설명입니다.

"의료인에 대한 공격은 지역 의원, 중소 병원보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압도적 비율로 많습니다. 감기에 걸려도 모두 대형 병원에 몰리기 때문에 대형 병원의 의료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없어서입니다. 여기에 의료 서비스 불만을 호소하는 제도는 미비하고 의료인들은 살인적인 근무에 시달리고,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특히 이 모든 상황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 부재로 이어집니다. 환자나 그 가족은 질병 상황에 대해, 치료에 대해 속 시원한 설명을 들을 수 없습니다. 궁금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고 결국 분노를 폭발하게 됩니다."
중국 의료인 폭력


하지만 중국 의료계가 꼽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불신입니다. 의사를 믿지 못합니다. 치료를 불안해합니다.

이는 중국 의료 시스템의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개혁·개방 이후 1980년부터 중국에서 이뤄진 의료개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상업화'입니다. 문화혁명 시기까지만 해도 모든 의료 서비스는 '무료'였습니다. 모든 병원을 정부가 직접 운영했고 그 비용도 정부 예산으로 충당했습니다. 의료 수준 자체는 떨어졌지만 그래도 모두 동등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대부분의 병원이 공영이지만 정부의 예산 보조는 상징적이라 할 만큼 적어졌습니다. 병원 스스로가 돈을 벌어 운용해야 합니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가 병원 평가의 잣대가 되는 실정입니다. 자연스럽게 병원은 수익을 늘리도록 요구하고 의사들은 압력을 받습니다.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검사나 복약을 강요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이미 이 코너를 통해 여러 번 소개해드렸습니다. 수술을 하다 말고 치료비 흥정을 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2살짜리 여자 아이에게 매독 감염 여부 검사를 합니다. 중국인들은 의료인들이 환자의 병을 고쳐주기보다는 주머니를 터는데 혈안이 돼있다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과거보다 내야 하는 돈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공공 의료 보장 제도는 있지만 매우 취약합니다. 외래 특진을 하는 경우 스스로 내야 하는 돈이 70%가 넘습니다. 공공 보험이 부담해주지 않는 치료 서비스가 해가 갈수록 늘어납니다. 2000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1인당 총 의료비는 3백60위안에서 1천4백90위안으로 늘었고 본인 부담금은 세 배나 급증했습니다.

그런데도 의료 서비스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지금 받는 검사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먹고 있는 약이 쓸모 있는 것인지 믿을 수 없고 불안합니다. 그러다 치료 결과까지 좋지 않으면 '탁' 이성의 끈이 끊어집니다. 집을 팔고 빚을 져서 치료비를 댔는데 의사와 병원의 배만 불리고 헛돈만 썼다고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집니다.

실제 끔찍한 의사 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그전까지 별다른 범죄 기록이 없는 가난한 남성들이라는 점이 이런 사실을 방증합니다.

중국 당국도 이런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의 양과 질을 늘리기 위한 개선 대책을 놓고 끊임없이 논의 중입니다. 크게 두 가지 주장으로 나뉩니다. 민영화, 즉 민간의 자본을 더 끌어들이도록 의료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자고 합니다. 의료 서비스를 다양화해 질적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반대로 의료의 공공성을 과거 수준으로 크게 높여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빈부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의료 체계를 놓고, 의료 보장 제도를 둘러싸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고차 방정식입니다. 양쪽 요소를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섞어서 균형 잡힌 답안을 도출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 한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생존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의, 식, 주에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내할 수 있습니다. 명품 옷을 입지 못한다고, 고급 레스토랑을 가지 못한다고, 대형 아파트에서 살지 못한다고 삶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생명 앞에서, 건강을 두고 차별을 받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도 의료 서비스를 그냥 시장의 기능에 맡겨두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가장 최고도로 발달한 서유럽에서 의료 산업만큼은 공산주의보다 더 공적 기능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공산당이 지배하고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임을 주장하는 중국이 이렇게 차별이 심한 의료 산업을 영위하고, 그로 인해 의료인들이 분노한 환자에게 공격을 받는 일이 빈발하는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어쩌면 중국의 의료인들이 정부에 대한 분노를 대신 받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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