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적 해이 ① - 펜스용이 비계용으로
철 파이프는 눈으로 봐선 제품 사이에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용도별로 엄격한 기준이 존재한다. 근로자나 자재가 오르내리는 비계용은 인장강도 500 이상, 연신율(늘어나는 정도) 20 이상으로 정해 놨다. 이런 제품은 대개 두께가 2.3mm 안팎이다. 그러나 시중엔 1.8mm짜리 파이프가 비계용으로 유통되는 실정이다. 이건 제대로 된 감리사가 있는 현장에선 펜스용으로만 쓰인다. 공사 과정에 발생하는 분진이나 미관을 위해 천막을 칠 때만, 그 뼈대로 사용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태는 그렇지 않다.
전편에서 다루었듯이, 서울 도심에서 취재팀은 이른바 'BS품'으로 불리는 펜스용 파이프가 비계용으로 판매되는 과정을 확인했다. 이런 파이프는 6m짜리 기준 1천5백 원에서 4천 원이 싸다.
공사현장에서 이런 펜스용 'BS품'으로 근로자나 자재 운반용 비계에 쓰는 업자가 허다하다. 한 생산업자는 그 실태를 이렇게 고백했다.
"잘못하면 이런 제품은 그냥 뚝 휘어져 버려요. 그게 말 그대로 '펜스'만 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유통과정에 비계용이랑 섞여버린단 말입니다. 그럼 누가 뭐, 노가다(현장 일용직)들이 강도를 잽니까? 섞어 쓰지."
철로 만든 파이프는 수명이 반영구적이기 때문에, 당국이 재사용을 허가하고 있는 실정. 고용노동부는 가설협회에 재사용품에 대한 인증 권한을 일임했다. 그리고 재사용품의 성능 즉 기계적 성질이 새 제품의 90% 정도면 재인증해 주라고 지도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공중에 매달려 일할 수 있게 만든 가설물을 '비계'라고 한다. 그 뼈대로 쓰이는 파이프 즉, '단관 비계용 강관'에 문제가 심각하다. SBS 탐사보도팀은 이달 초, 공사현장 비계용으로 널리 쓰이는 파이프 3개를 무작위 수거해 공인시험기관에서 성능 시험을 진행했다. 생산 허가된 제품은 세 가지 기계적 성질(인장강도와 항복점, 연신율)에서 모두 합격치를 넘기지 못했다. 취재 결과, 가설물 품질 관리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고용부와 그 퇴직관료들이 이끌어 온 가설물 업자들의 이익단체. 그들이 가설물 품질 검증을 '업계 자율'로 처리해 온 지난 수년 동안, 안전은 내팽개쳐져 있었다. 단관 비계용 강관은 수명이 반영구적이기 때문에, 심각한 하자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재사용이 허가되는 실정이다. 재사용 파이프의 인증 권한은 한국가설협회가 갖고 있다. 가설재 생산과 유통, 임대업자들이 모여 업계 발전을 도모한다며 1996년 설립한 사단법인.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회원이나 잠재적인 회원들의 생산품을 검증하는 구조다.
하지만, 협회가 주도하는 재인증 검사 절차는 객관성이 부족했다. 검사 주체인 협회 측과 대상인 가설업체를 취재한 결과, '좋은 게 좋다.'라는 식의 재인증 관행이 드러났다. 결국, 가설물용 파이프는 '검증 따로 생산 따로'인데도, 이걸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공사현장에서 건설사는 가설물 설치 업자가 제출한 '자율신고확인서'에 100%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 얼마든지 성능을 부풀릴 수 있다.
● 도덕적 해이 ② - 폐품 가공 뒤 재납품
재인증 절차는 객관적인 검증보다 회원들의 편의를 중심에 두고, 진행되고 있다. 당국은 재사용 파이프의 품질에 직접 간여를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적 해이는 업계 곳곳으로 퍼졌다. 재사용 가설재를 유통하는 일부 업자는, 폐품 수준의 파이프까지 정상인 것처럼 속여, 몰래 납품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실태를 보여주는 영상을 입수했다. 농촌지역에 자리 잡은 한 가설업체 창고에서 지난달 촬영된 영상이다. 창고 한가운데, 현장에 납품됐다가 중간 부분이 휜 채 수거된 파이프가 놓여 있다. 6m짜리인데, 비계용으로 쓰인 재사용품이다. 직원 한 명이 휜 파이프를 강철로 된 원모양 교정기 안에 넣더니 파이프 끝 부분에 멈춰 선다. 그리곤 팔에 체중을 실어 끝 부분을 누른다.
이렇게 휜 파이프뿐 아니라 끝이 찌그러지거나, 아예 구부러진 파이프도 버젓이 재사용된다.
"여기가 이렇게 또 휘었어. 그럼 양쪽을 잘라내고 / 얘는 (원래) 3m(짜리)야. 그럼 3m(재사용품으)로 나가요."
문제 있는 부분만 잘라내고, 원래 짧은 제품이었던 것처럼 꾸민다는 얘기다.
이렇게 펴진 파이프는 철의 성질이 변하기 때문에, 설계자가 기대하는 하중을 제대로 견뎌줄 수 없다. 순간적인 하중이 쏠릴 때, 위험천만한 '약한 고리'로 변해 참사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 도덕적 해이 ③ - 비용 아끼려 필수 공정 생략
도덕적 해이는 근로자나 자재 추락을 막는 추락방지망 업계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부산 사상경찰서는 열처리를 일부러 건너뛴 제품을 4만 3천 개 나 전국에 납품한 업자를 적발했다. 경찰은 공인 시험 기관에서 성능 검사를 하고, 이때 촬영한 영상을 언론에 배포했다. 핵심 부품을 위아래로 잡아당기자, 안전 인증 기준의 약 절반만 힘을 줬을 뿐인데도, '딱' 소리를 내며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고용부가 고시한 안전인증기준은 15,000N. 시험 결과 이들 제품은 8,173 ~ 10,456N의 힘에서 부서졌다.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열처리 비용을 아끼려고 위험천만한 짓을 벌인 거였다.
협회는 한번 인증된 제품의 재인증은 2년에 한 번 나간다. 맨 처음엔 업자가 직접 고른 표본을 시험한다.
"2년에 한 번 나갑니다. (맨 처음엔) 이런 제품을 만들어서 이걸로 인증을 받겠다 해서 보내주는 제품을 가지고 심사를 하죠."
그나마 이런 재인증도 업체에 미리 알려준 뒤 현장에 나간다.
"(재인증 할 때는) 일주일 전에 통보합니다. 법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최근 수년 동안 당국은 업계 자율만 외치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고용노동부와 일선 고용노동지청의 감독 방침에도 큰 혼선이 생겼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생산 . 유통 체계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건, 철저한 현장 감독과 사후 조치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용노동부의 오락가락하는 지침 속에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몇 달 전에 제가 이제 감독반장으로 갔었어요. 점검을 나가는데 그때 이제 재질이 아주 안 좋은 그게 서류상으로 발견됐습니다."
현직 경남지역 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인 A씨는 지난해 3월, 그는 공사현장에서 안전상태가 나쁜 파이프를 발견했고, 가설협회에 실험을 맡겼다.실험 결과는 불합격. 혹시 모를 사고가 걱정된 그는, 법에 따라 해당 업체 제품을 더는 사지 말라고 공사현장에 알렸다.
하지만, 넉 달 뒤 고용노동부는 이해할 수 없는 지침을 하달했다. 공문 내용을 보자.
지난해 7월, 이런 지침이 내려가자 현장 감독을 하는 일선 공무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A씨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지만, 고용노동부 담당 부서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침대로 하면) 처음에 인증받을 때 이 업체가 의도적으로 뭐 그런 자재나 뭐 처음에는 좋게 쓰고 안 그러면 서류상으로 좋게 해서 뭐 인증받았다 하더라도 납품 과정에서 다른 안 좋은 자재를 쓸 수 있는 그런 그 소지를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다른 현장 감독관들 역시 마찬가지. 고용부의 지침을 거스를 순 없다. 그들은 공사현장을 단속할 행정적인 근거가 사라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실상 단속을 뭐 거의 안 하는 실정입니다. 가서 이제 뭐 현장 가면 서류보고 이상 없구나. 모델명 적고. 하고. 뭐 이런 정도죠."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공사현장에선 어떤 제품도 재사용품으로 봐야 한다고 못 박았다. 새 제품이라고 해도, 어떻게 쓰일지 모르게 때문에 하루라도 가설물에 쓰였다면, 재사용품으로 보고 인증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단속권을 스스로 무마시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새 제품의 인장강도 합격치가 500이라고 했을 때, 현장에 납품되는 즉시 80~90%로 합격치가 사실상 경감되기 때문이다. 그럼 갓 공급된 새 파이프의 합격치는 얼마인가? 450인가 400인가. 그럼 고용노동부 고시와 관련법으로 자율안전확인서 발급에 필요한 시험성적 기준을 명시한 이유는 뭔가.
이런 논리적 모순을 지닌 채 고용노동부 담당팀은 산업안전과는 현장을 지도하고 있다. 결국, 새 제품도 공사현장에 납품되는 순간 재사용 기준을 따라야 한다면, 애초에 새 제품의 품질 기준을 지킬 필요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그 성능이 (새 제품을) 100으로 정해놨으면 (재사용은) 어느 정도까지 나오면 다 용인해주겠다는 이런 취지거든요. 현장에 사용 중인 거를 지금처럼 수거했더니 (성능이) 90%인지 80%인지 나왔는데 100에 못 미치니까 위반이라고 하는 건데, 그게 위반이 아니라는 거죠."
고용노동부 담당자의 이런 답변도, 지난해 7월 현장 단속을 무력화한 해당 공문도 '업계 자율'에 안주한 주무 부처만의 명목 논리는 아닌지 자문해야 할 때가 아닐까.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2009년부터 개편 시행 중인 '안전인증 및 자율안전확인' 제도가 옛 성능검정제도 보다 뛰어나다는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당시 개편 취지는 제품 성능뿐 아니라 제조자의 기술 능력과 생산체계를 종합적으로 심사하자는 거였다. 결국, 공사장 안전을 강화하는 게 목표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실태는 정반대다. 여전히 참사는 반복되고 있다. 2013년 가설물 사고로 숨진 건설노동자가 349명.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36.8%다.
그러면서도 고용노동부는 가설재 품질 관리의 허점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새 제품의 자율신고 과정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실태를 점검할 주체가 없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일단 당장은 자율신고품도 사후관리절차를 인증처럼 수리 기관이 됐든 인증기관이 됐든 매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그런 절차를 도입할 겁니다." 그들은 관련법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공사현장을 많이 찾아다녔다. 경기도 용인의 한 빌라 공사장에서 기자는 60대 후반의 작업반장 이 씨를 만났다.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공사현장이지만, 그에겐 40년을 바친 소중한 일터다.
그는 대뜸 자신과 동료의 생명을 위협하는 아찔했던 경험부터 꺼냈다.
"이게 정상적인 핀이에요." 콘크리트를 붓기 전 거푸집을 받치는 철 파이프를 보면서 그가 말했다. 그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선 전용 핀이 필요하다.
"이게. 그러면 이게 하나가 내리는 누르는 하중이 1.5톤이에요. 이 핀 하나가… 근데 어디 가면 철근 10밀리 가느다란 거 저런 거 꽂는 데가 있다고."
그에게 가설물 업계 비리와 당국의 무능한 감독 실태를 알려줬다. 잠자코 듣던 그는 한마디 부탁을 전해달라며 입을 열었다.
어이없는 참사에 목숨을 잃고도 매일 잊히고 있는 억울한 망자들. 남은 유족은 세월호 사건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안전보다 이익이 우선인 풍토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5일 저녁, 용인 도로 공사장 붕괴 현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이 모 씨는 사회 전반을 불신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뭐 규제를 자꾸 풀어서 경제살리기만 한다고 자꾸 이제 그런 얘기만 하니까… 저는 이제 사고를 당한 유가족으로서는 조금 규제를 조금 안전이나 이런 쪽에서는 강화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취재파일] 당국 허가품도 '불량'…저질 판치는 공사 가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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