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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흥미로운 연극 '스피킹 인 텅스'

[취재파일] 흥미로운 연극 '스피킹 인 텅스'
'방언(종교적 황홀 상태에서 나오는 뜻을 알 수 없는 기도의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수년 전 우연히 들어간 미국의 한 한인교회에서 기독교 신자의 방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이 꽤 신기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사자의 입장에선 신과의 대화일 수 있겠으나 그 단 한 대상을 제외한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리 열심히 들으려고 해도 그 뜻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방언입니다. 종교적인 용어이지만, 종교적 의미를 한 겹 걷어내고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연인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발화하고는 있지만, 많은 경우 그 간절함이나 절박함은 상대의 가슴에 닿지 못하고, 때로 상대는 '너를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로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중한 사람들의 말과 눈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 또한 드물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의 대화는 본질적으로 '방언'에 가까운 걸까요? 우리는 그래서 이토록 외로운 걸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극이 있습니다.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방언'을 뜻하는 '스피킹 인 텅스(Speaking in Tongues)'란 제목의 연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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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들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부제는 이번 공연의 김동연 연출이 새로 붙였다고 합니다.) 이 연극은 호주 출신 앤드류 보벨(Andrew Bovell)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극이 시간을 해체하고 인물간의 관계를 파편화해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칫 작가의 생각을 사변적으로 풀다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쉬운 구성이지만, 작가는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은 선에서 이런 구성을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극에는 모두 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배우는 4명만이 출연해 각각 1인 2역 혹은 1인 3역을 소화합니다. 게다가 각 인물들이 사건의 주체로 혹은 목격자나 전달자로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를 맺고 있어 잠시 한 눈을 팔았다가는 연결의 끈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만남에는 우연이 반복되고 관계는 강박적일 정도로 겹쳐 있지만, 억지스럽기 보다는 인물들의 상징성을 강화하는데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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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푸는 방식은 이렇게 독특하지만, 내용은 보편적이고 누구나 공감할 만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로 '인간 관계와 그 속의 소통'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내용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답장 없는 편지를 수없이 쓰고, 수화기를 들지 않는 전화에 거듭 음성 메시지를 남깁니다.

자신의 상처와 공포에 대한 그들의 고백은 절박하지만, 상대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는 데는 실패합니다. 대신 배우자를 배신하고 연인을 속이고 불안 속에서 자신을 연민합니다. 이런 비극은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 녹아 들어 관객을 오싹하게 만듭니다.
 
작가는 이 극이 '도덕률이 흔들리고 단절감을 느낄 때 유형화되어 나타나는 인간 감정의 풍경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는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극장을 나설 때에는 '나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낼 것인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제작사에 따르면 1996년 호주 시드니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2001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이후 영미권에서는 지속적으로 재공연이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 무대에 올려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소 밋밋한 무대 연출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흥미롭게' 보실 만한 연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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