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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참을 수 없는 정부 소통의 가벼움

제대로 소통되겠나?

[취재파일] 참을 수 없는 정부 소통의 가벼움
● 최경환 총리 대행의 갑작스런 발표 연기

지난 7일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메르스 관련 대국민 발표를 했다. 하루 전인 토요일 발표 시각은 일요일 오전 10시로 정해졌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국민들의 이목은 총리 대행의 입에 집중됐다. 방송사들은 일제히 진행 중이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뉴스속보 체제로 전환했다. 방송 편성은 몇 초를 다투는 정시성을 생명으로 한다. 미리 예고된 프로그램을 정시에 방영하는 것이 시청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중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이를 무시한다. 당시 총리 직무대행의 발표는 그만큼 중요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속보가 진행되면서 총리 대행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시각, 그러니까 정확히 9시 57분, 약속됐던 대국민 발표는 연기됐다. 박정현 총리실 공보실장은 처음에 "20분 연기 한다"고 말했다. 조금 뒤에는 11시로 바꿨다. 뉴스 속보는 중단됐다. 방송기자들은 회사로부터 욕을 먹어야 했다. 시간도 제대로 모르느냐는 질책이었다.

● 문구 조정하느라 1시간 허비

그 시각 총리실 4층 국무위원 대기실에서는 최경환 총리 대행,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소파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발표문 초안이 손에 들려 있었다. 연필로 문구를 고치고 있었다. 인쇄된 발표문 초안과 이들이 연필로 수정한 문구를 들고 총리실 직원은 복도 맨 끝에 있는 사회조정실 사무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거기서 새로 타이핑을 한 뒤 인쇄를 해 대기실로 가져오느라 총리실 직원은 전속으로 왕복달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1시간을 보냈다. 크게 새로운 내용이 추가된 것도 아니었다. 초안에 들어있던 24개 병원 명단이 발표문에서는 빠지고, 별도 자료로 배포되는 정도였다. 총리실 직원이 왕복달리기 하는 방법 말고 손쉬운 방법이 생각났다. 노트북을 이용해 한 번에 수정하고 바로 인쇄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그 말을 했더니 한 공무원이 대답했다. "노트북은 잘 이용하지 않으세요. 격이 떨어지잖아요?"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기자를 밀어냈다. 아마 보이기 민망했을 것이다.

● 빈발하는 약속 파기와 변경

문구를 고치느라 약속을 1시간이나 어긴 것이다. 그러고도 발표과정에서는 유감 표명 한마디 안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유독 현 정부에서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 초기만 해도 관련 브리핑 시각은 바뀌거나 연기되는 일은 다반사(茶飯事)였다. 세종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세종으로 장소가 바뀌고, 시간은 11시에서 오후 2시로, 다시 오후 1시로 앞당겨졌다. 문자가 있으니 공지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부처를 탓할 일만도 아니다. 청와대도 황교안 총리 후보자 발표를 앞두고는 갑자기 발표 시각을 연기했다. 역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올해만의 일도 아니다. ‘기자 골탕먹이기’ 얘기를 하다보면 빠질 수 없는 역대급 사건도 있다. 그 주역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였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평소 "총리실은 없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자주 한다. 형님 부처라면서 무게만 잡고 실질적으로는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예산을 나누며 효용성을 따지는 기재부 입장에서 총리실의 생산성을 따져보면 충분히 그런 말을 할만도 하다. 평가나 규제 개혁 같은 1년 농사를 짓고도 청와대나 정치권 입김에 방향을 바꾸거나 하려던 일을 포기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캡쳐_6
그런 기재부에 대해 총리실 공무원들이 ‘카운터 펀치’를 날린 일이 있다. 지난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때문이다. 계획은 1월 6일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발표됐다. 계획안을 만드는 것은 기재부의 몫이었다. 기재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15대 핵심·100대 실행과제로 나눠 발표하겠다고 예고하고 기자들에게 자료도 미리 배포했다. 하지만 25일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에는 예고된 과제 중 절반 이상이 빠졌다. 세부 실행과제도 25개로 압축됐다.

기재부의 두 달 노력이 사실상 헛수고가 된 셈이었다. 기재부 자료를 보고 미리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기사를 완전히 바꿔야 했다. 당일 석간신문 기자들은 '쓰레기 신문'을 만들었다고 투덜거렸다.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낸 것이다. 총리실에서는 "우리만 없어도 되는 부처가 아니라 기재부까지 없어져도 되겠어" 라는 말이 나왔다. 오보를 통해 정부의 3개년 계획을 읽은 국민들의 혼란은 더했을 것이다. 문제를 아는지 다음날 당시 현호석 경제부총리가 기자실에 찾아와 혼선에 대해 사과했다.

● 가벼운 정부 소통의 문제

그러면서도 정부는 소통을 강조한다. 한때는 부처의 대변인을 실장 승진을 바로 앞둔 고참 국장 중에서 임명하기도 했다. 대변인들은 1주일에 한번 서울에서 만나 소통 문제를 논의한다. 국민소통실이라는 부서가 있는 문체부는 소통을 강화한다며 최근 몸집을 부풀렸다. 국정 홍보을 담당하는 차관보급 1명과 국장급 2명이 포함된 직제를 신설한 것이다. 사람을 늘리고 회의를 많이 한다고 소통이 나아진다면 다행이다.

최경환 총리 대행은 이후에도 또 한번 대국민 발표를 했다. 이때도 복지부장관이 하려던 발표를 총리 대행이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시간도 30분이나 늦춰졌다. 이제 브리핑을 한다면 시간과 장소를 그대로 믿는 기자들이 적어졌다.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으려면 정부의 약속에 더 무게가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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