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라마단' 단식과 폭식의 두 얼굴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작성 2015.06.18 09:38 수정 2015.08.19 20: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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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성월(聖月) 라마단이 시작됐습니다. 라마단은 이슬람선지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코란의 가르침을 받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슬람력에서 아홉 번째 달에 해당되는데 보통 종교기관에서 달의 모양을 보고 시작일을 판단합니다. 올해는 6월 18일부터 약 한 달간 이어집니다. 이슬람력이 윤달이 없는 음력이라 보통 매년 11~12일 정도가 앞당겨집니다. (지난해는 6월 29일 시작)

라마단 기간 모든 무슬림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금식을 거행합니다. 물도 담배도 껌도, 심지어 침도 삼켜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라마단에 금식을 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느껴보고 스스로 인내심을 키우면서 신앙심을 굳건히 하자는 데 있습니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라마단에 금식을 명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이슬람에도 절대적인 다섯 가지 기둥인 '아칸' 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선'입니다. 금식을 통해 빈자의 고통을 나눠보고 금식을 통해 비축한 식량과 돈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의미가 담긴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마단의 하루 일과를 보면, 기도는 하루 5+1 입니다. 다섯 번은 의무이고 저녁에 사원에서 매일 기도회를 여는 데 이건 자율입니다. 식사는 해가 뜨기 전 새벽이 한 번, 해가 진 뒤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식사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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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램프를 내걸며 라마단을 축복합니다 -

● 라마단 '중동은 개점휴업'

무슬림이 라마단 동안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갈증입니다. 식사야 한 끼를 거드는 셈이니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지 몰라도 수분 섭취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동지역, 그곳도 라마단이 한 여름에 걸리면 그 고통은 더 큽니다. 올해 라마단도 해가 가장 긴 하지가 껴 있습니다. 걸프 지역은 이미 섭씨 40도가 넘어섰고, 이집트 역시 낮 기온이 섭씨 30도 후반까지 올라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참기 힘든 일인 만큼 임산부와 노약자, 여행자는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놨습니다.

지역에 따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다른데 북반부의 경우 요즘은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해가 떠있습니다. 북반구의 무슬림들은 과연 20시간이나 물도 마시지 못하고 단식을 해야 하느냐 이슬람권내에서도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라마단이 겨울에 있으면 북반구는 거의 해가 뜨지 않으니 단식이 좀 더 수월하겠죠?

새벽에 일어나면서 생기는 수면 부족, 그리고 단식의 영향으로 라마단기간 무슬림의 활동력은 뚝 떨어집니다. 때문에 학교는 단축수업을, 관공서는 비롯한 모든 기업이 단축 근무에 들어갑니다. 학교는 보통 12시면 수업을 마치고, 시험도 되도록 라마단에는 치르지 않습니다. 기업체도 오후 2시나 3시면 다들 하루 일과를 마칩니다. 관공서는 더 심해서 정오면 업무를 중단합니다. 근무시간에도 기력을 아끼기 위해 되도록 바깥 일을 삼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오전이면 몰라도 오후에 거래처와 약속을 잡은 건 포기해야 합니다. 중동은 '인샤알라'(신의 뜻대로)라는 말처럼 일의 진행속도가 한국에 비해 많이 더딘 곳입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업무 단축에 집중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그나마 낮은 업무 효율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공사현장이나 공장은 물론 일반 영업점도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라마단 기간 오후에 일을 본다는 건 아예 포기해야 합니다. 외국인에겐 식사도 쉽지 않습니다. 식당은 어차피 손님이 없으니 아예 해질녘에나 문을 엽니다. 간혹 외국인을 상대로 한 식당이 정오부터 문을 열긴 하는데 주방장과 요리사가 간을 보지 못하고 음식을 만들기에 맛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개점 휴업'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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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마단 때는 모두가 음식을 나누는 게 전통입니다 -

● 금식과 폭식, 라마단의 역설

라마단 하면 '금식'을 하기에 소비도 줄어들 것 같은데 그 반대로 소비량이 평소보다 30~40% 이상 껑충 뜁니다. 이른바 '라마단 특수'라고 불립니다.

라마단 때 해가 지면 온 가족이 모여 '이프타르'라는 식사를 합니다. 이집트 카이로는 과밀인구에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곳인데 라마단의 해질 무렵이면 시내나 도로가 정말 사람과 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텅 빕니다. 이프타르를 먹기 위해 다들 집에 모여있기 때문이죠.

처음에 대추야자나 수프로 빈 속을 부드럽게 만들어준 뒤 식사를 즐깁니다. 대개 친지나 친구를 초대해 함께 모여 먹는 게 관례다 보니 식사는 평소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풍성하고 정성스럽게 마련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허기진 배를 채우다 보니 오래 먹고 많이 먹게 됩니다. 무슬림 여성들이 라마단기간 음식 장만으로 혹사당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정돕니다. 형제가 많은 가정은 음식을 장만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라마단 기간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식사를 합니다.

온 가족이 외식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라마단 기간 조금이라도 유명한 식당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2~3시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게 다반삽니다. 이 기간 가족과 친지, 친구를 만나면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게 관례입니다. '라마단 카드' 같은 현물카드는 아이들이나 부모에게 주는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 부자들은 매일 저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식사를 제공합니다. 시내나 주택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자선'의 실천하는 겁니다.

라마단을 앞두고는 장을 보러 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쇼핑몰이나 대형마트엔 선물을 고르고 미리 음식물을 장만해 놓으려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룹니다. 라마단 특수 때 매출이 1년 매출의 3분의 1에 달할 정돕니다. 자연스럽게 이 기간 물가상승도 동반하면서 라마단 때면 이슬람권의 정부는 너나 할 것 없이 생필품 물가 대책을 내놓고 있을 정도입니다.

● 라마단과 전쟁

신성한 라마단 기간에는 이슬람권에서는 전투나 무력행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곤 합니다. '라마단 휴전'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긴 합니다. 2013년 이집트 쿠데타와 반정부 시위, 201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가자지구 사태도 라마단 때 벌어진 일입니다.

전 세계를 테러 위협에 몰아넣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도 라마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IS가 신정일치 칼리프제의 '이슬람국가'를 선포한 게 지난해 6월 29일입니다. 바로 라마단의 첫 날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국가선포 1년을 맞아서 IS가 시리아나 이라크에 대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 개인이 아닌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가 내놓은 관측이니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죠.

IS는 지난 10일 이라크 최대 거점인 모술시를 점령한 지 1년을 맞아서 '정복 1년 뒤'라는 홍보영상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도시 하나 점령했다고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30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으니, 국가선포 1년을 맞아서 대규모 공세는 아니더라도 정치적 성과와 새로운 비젼 제시를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국가선포와 함께 스스로 칼리프에 등극한 IS 지도자 알 바그다디가 모습을 공개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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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피해자인 난민들도 라마단을 보내야 합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내전과 IS의 발호로 고향을 떠난 사람은 1천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 중 4백만 명은 터키와 요르단, 레바논 같은 이국 땅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이나 벌판에 세워진 난민촌 천막이나 컨테이너 박스엔 냉방장치는 없습니다. 한여름의 땡볕아래 아래에서 갈증과 허기를 잡으며 종교적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난민들은 걱정이 앞섭니다. 평소에도 배고픔에 시달리는 난민들에게 금식은 큰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시리아 여성은 "지난해 라마단 때 금식을 했다가 이틀 만에 졸도를 해서 결국 포기했다"고 고백합니다. 금식을 한 뒤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데 가난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거죠. 더구나 앞서 말한 대로 라마단 기간 모든 단축 업무가 이뤄지면서 난민들의 일감도 급감하면서 생활고가 더 심해집니다. 그렇다고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라마단 단식'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민들은 '종교적 의무'와 '현실적 빈곤'의 경계에서 고뇌하고 있습니다.

라마단은 이슬람권에서 단순한 종교적 수행을 넘어 사회.정치적 현상으로 발전했습니다. 무슬림이 속한 공동체와 집단이 어떤 상황에 놓였느냐에 따라 라마단이 지니는 의미와 해석이 달라집니다. 누구에겐 인내와 신앙을 다지는 기간으로, 누구에겐 전투의 결의를 다지는 기간으로, 누구에겐 생존과 신앙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기간으로 여겨집니다. 라마단에 떠오르는 달은 하나지만 16억 무슬림에게 내리는 빛은 16억 가지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오늘 라마단의 첫 달이 떠오릅니다.

'쿨루 사나 인타 따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