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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마리아 김"…아내 못 잊는 벽안의 순정남

'Maria (Kim) Stewart(마리아 김 스튜어트). 마리아! 우리가 사랑한 30년 동안 당신은 내가 되었고, 나는 당신이 되었소. 부디 영면하기를.'

지난 4월 중순 캐나다 한국일보에 실렸던 한 뼘 크기의 신문광고가 아직도 현지 한인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광고를 낸 주인공은 고희를 앞둔 벽안의 백인 빌 스튜어트(68) 씨.

레이크이리에 거주하는 그는 2013년 4월 22일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사진과 함께 이 같은 추모의 글을 새겨 광고를 게재한 것입니다.

신문에 따르면, 서울 출신인 아내 김 씨는 부모를 일찍 여의어 서울 명동성당에서 자랐습니다.

1981년 한 의류업체의 후원으로 70여 명의 여성과 함께 캐나다에 이민했습니다.

처음에는 의류 분야에서 일하다가 '밴틀리스 도넛' 가게로 자리를 옮겨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김 씨가 일하는 가게는 당시 스튜어트 씨가 일하던 보안업체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샌드위치를 주문만 하면 입맛에 맞게 척척 만들어주던 김 씨에게 푹 빠졌습니다.

"한 2주 동안 마리아가 일하던 도넛 가게 근처에서 경보기를 설치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가게를 자주 찾았죠. 나흘째 되는 날 갑자기 마리아가 제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토요일마다 그의 아파트로 가 영어를 가르쳤죠."

그렇게 영어 선생과 제자로 만난 이들은 사랑도 함께 싹 틔웠습니다.

이민 3년차이던 1984년 2월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고, 맞벌이를 하던 부부는 1988년 레이크이리에 위치한 농장으로 이사했습니다.

이듬해 둘이 모은 돈으로 '레이크사이드 컨비니언스'라는 이름의 편의점을 사들여 사장이 됐습니다.

매출 신출 신장과 비례해 결혼 생활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7월 청천벽력처럼 김 씨에게 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대동맥 주변에 퍼진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 끝에 김 씨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수술 몇 주 만에 편의점에 나와 일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2012년 말 의사로부터 골수암 진단을 받는 동시에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도 받았습니다.

농장 일이 바빠 관절염이라고 무시했던 것이 병을 키운 결과가 됐습니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던 것입니다.

김 씨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고국을 찾아 친구들을 만나 석별의 정도 나눴습니다.

그리고 2013년 4월 22일 온타리오주 던빌의 헐드먼병원에서 '캐나디안 드림'을 마감했습니다.

스튜어트 씨는 아내를 떠나 보낸 뒤 중국계 여성을 만나 재혼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아내의 기일이 다가오자 그가 생전에 읽던 한국일보에 추모 광고를 내 기억했고, 올해에도 광고를 게재한 것입니다.

그는 "매년 한 번씩 커다란 항아리 12개를 부엌 바닥에 가득 늘어놓고 김치를 담그던 아내 마리아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술회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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