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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요?

[취재파일]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요?
바야흐로 ‘낙타 수난시대’입니다. 우리나라를 강타한 ‘메르스 바이러스’의 중간 매개체가 낙타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중동의 거친 사막에서 묵묵히 생존해온 낙타가 난데없이 6,000km 이상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갖은 비난과 원성을 듣고 있는 겁니다.

4년 전, 저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낙타의 생존법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기자이기 전에 수의사로서, 지구에서 가장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은 낙타의 용기 있는 생존법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엔 여기에 더해, 메르스 바이러스과 낙타의 관계에 알아보고,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생존경쟁에서 밀린 낙타

낙타는 수천 년 동안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존재였습니다. 유일한 교통수단이자 우유와 젖을 공급해주는 식량자원이었고, 동시에 땔감으로 쓸 변과 추위를 막을 가죽을 남겨줬습니다.

그러나 낙타가 처음부터 사막에 살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낙타 화석이 처음 발견된 곳은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가 있는 북미지역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북미지역에 살던 낙타가 약 180만 년 전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 알래스카를 거쳐 아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더 멀리 아프리카까지 건너간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지구를 가로지르는 낙타의 긴 ‘세계 여행’이 시작된 겁니다.
 
그럼, 낙타는 왜 오랜 생활터전이었던 북미지역을 떠났을까요? 우리 인생사보다 더 구구절절한 그 사연을 모두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당시 빙하기엔 북미와 남미, 아시아가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바다가 없었기에 동물들의 대륙 간 이동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남미지역의 힘센 육식 동물들이 북미지역으로 들어왔고, 북미지역에 있던 포유동물들은 경쟁에서 밀려났습니다.

낙타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되는 생태계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낙타는 남미에서 올라온 육식동물들에게 생활터전을 빼앗겼고, 결국 자신들의 오랜 생활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각 대륙으로 흩어진 낙타들이 최종적으로 자리 잡은 곳은 중동의 ‘사막’이었습니다. 왜 하필 낙타는 지구에서 가장 척박한 사막으로 갔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물과 먹이가 부족한 사막엔 역설적으로 싸워야 할 경쟁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막은 낮엔 뜨겁게 달궈졌다가도 밤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집니다.

물과 먹이도 없고, 거친 모래 폭풍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생명체가 살아가긴 최악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생명체가 없다는 건 경쟁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빠른 발이나 강한 이빨, 뿔 같은 강력한 생존 무기가 없어 생존경쟁에서 밀린 낙타에게 경쟁자가 없는 사막은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을 것입니다.
 
●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

아무리 ‘독야청청’하겠다며 굳은 마음으로 먹었다고 해도, 싸워야 할 경쟁자가 없다고 해도, 사막은 기본적으로 생명체가 살기엔 매우 어려운 곳입니다. 낙타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결론적으로 낙타는 이 척박한 자연환경을 피하지 않고 철저하게,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먼저, 낙타는 사막에 적합한 구조로 자신의 몸을 바꿔갔습니다. 한여름 기온이 60~70도까지 오르는 사막에선 조금이라도 지면에서 더 떨어지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낙타는 다리가 점점 길어지는 쪽으로 진화해갔습니다. 길어진 다리 덕에 낙타의 몸통 온도는 모랫바닥보다 무려 10도가량 낮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 낙타의 다리는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단단한 근육질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허벅지 근육이 잘 발달했는데 이 덕에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거리를 다닐 수 있습니다. 무릎엔 회갈색의 가죽으로 된 패드가 있어 무릎을 꿇거나 걸을 때 체중을 견디는 지지대 역할을 해줍니다. 거기에 두꺼운 털은 햇빛을 반사하고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막아주는 단열재 역할을 해 강한 햇볕을 견딜 수 있습니다.
 
낙타의 머리 모양도 흥미롭습니다. 넓적한 이마는 눈 주위를 덮어 햇빛이 직접 눈에 닿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눈꺼풀은 모래바람이 눈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고, 눈물샘에서 나오는 눈물은 눈이 마르지 않게 적셔줍니다. 이 눈물은 다시 코와 연결된 관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코 밑에 있는 구멍도 숨을 쉴 때 나가는 수분을 다시 빨아들여 수분 낭비를 막습니다.
 
더위에 적응하는 데는 해부학적 구조뿐 아니라 행동도 중요합니다. 낙타는 달릴 수는 있지만 언제나 느긋하게 천천히 걷습니다. 외부의 열도 주체하기 어려운 데 스스로 열을 만들어냈다간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성가신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낙타는 발달한 코 근육을 이용해 모래가 들어오기 전에 콧구멍을 닫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막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뜨거운 태양입니다. 땅속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낙타는 오히려 얼굴을 태양을 마주 보게 돌립니다. 햇볕을 피하려고 등을 돌리면 몸통의 넓은 부위가 뜨거워지지만, 햇빛을 마주 보면 얼굴은 화끈거려도 몸통엔 그늘이 생겨 그만큼 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낙타가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는 비법 가운데는 뛰어난 수분관리 능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낙타는 가시덤불이나 씨앗, 동물의 뼈나 가죽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그 안에 함유된 수분을 몸속에 저장해 둡니다. 낙타는 몸에 물을 저장하는 기능이 탁월해 하루에 최대 200리터까지 마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장한 물을 이용해 최대 보름까지도 물을 마시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이렇게 많은 양의 마시면 적혈구가 터져 죽겠지만, 낙타의 적혈구는 매우 견고해 높은 삼투압에도 파열되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낙타는 오줌도 농축해 누고, 변도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수분을 흡수해 배설합니다.
 
하지만, 역시 낙타의 가장 큰 특징은 등에 있는 혹입니다. 흔히 낙타의 혹 안에는 물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혹은 실제로는 지방으로 돼 있습니다. 영양분을 혹에 있는 지방으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이렇게 저장한 지방을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시켜 부산물로 물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낙타는 오랫동안 먹지 못하면 혹 속의 지방이 줄어 혹이 작아지고 심지어 움푹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충분한 물과 영양분이 공급되면 단단하게 다시 올라옵니다.
 
● 낙타와 메르스바이러스 감염

낙타가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해도, 바이러스 감염까지 피할 순 없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MERS-CoV)’입니다. 사람에게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을 유발하는 ‘메르스 바이러스’는 낙타에게선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입니다. 사람의 메르스 감염이 처음 확인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행된 실험을 보면, 실험 대상 낙타 200마리 가운데 3/4이 메르스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낙타는 메르스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지만, 다행히 가벼운 감기증상만 보이고 쉽게 완치됩니다. 이는 메르스바이러스가 낙타에게는 코와 입 등 상부호흡기에 감염해 콧물이 나는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사람 체내로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사람 몸 안으로 들어온 메르스 바이러스는 낙타와 달리 상부 호흡기가 아닌 폐와 기관지가 있는 하부 호흡기에서 증식합니다. 하부 호흡기에서 증식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중증호흡기질환을 일으키고, 증상이 심해지면 폐렴 같은 합병증까지 유발합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이 모두 낙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낙타 26만 마리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최근 3년 동안 1,000여 명이 메르스바이러스에 감염돼 442명이 숨졌습니다. 하지만,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에 따르면, 소말리아에는 낙타가 700만 마리, 케냐엔 300만 마리가 있지만 이들 나라에선 메르스 바이러스 환자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고작 낙타 40여 마리가 있는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최초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습니다. 결국, 사람의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은 낙타 사육 두수보단 그 나라의 위생환경수준, 보건정책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낙타의 용기’

역경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면 삶의 자세는 더 진중하고 성숙해집니다.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겸손하고 조신해집니다. 숱한 어려움을 견뎌낸 낙타를 보면, 모진 풍파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가 생각납니다.

지금 우리는 여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렬한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낙타의 용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 번도 수입된 적이 없는 ‘낙타 고기와 우유를 먹지 말라’ 이런 식의 비현실적인 정책은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다 못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흔히 일류는 위기에서 빛난다고 합니다. 지금이 위기입니다. 하지만, 빛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책 책임자들이 낙타를 탓하기에 앞서, 역경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낙타의 용기’부터 배우면 좋겠습니다.   

▶ [생생영상] 대통령이 사랑한(?) '낙타'…메르스에 '뒤바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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