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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쩍 갈라진 바닥에…'내 논에 물 대기' 전쟁

<기자>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땅은 사실은 저수지 밑바닥입니다. 수심이 6m나 됐던 이 초대형 저수지는 보시다시피 가뭄으로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말라서 사막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지금 치열한 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이 농촌 마을엔 벌써 1년째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 : 가문 정도가 아니죠, 다 못 살겠다고 난리야. 지금은 더 하더라고, 6·25 때 보다.]

지하수를 끌어들여 모내기까진 어렵게 끝냈지만 바싹 말라버린 논에서 모가 제대로 자랄 리 없습니다.

[농민 : 다 죽었잖아요, 이거요. 이거, 이거. 다 죽었잖아요.]

주민들은 순번을 매겨 소방차가 실어온 물을 논에 대봅니다.

지금 소방차 5대가 물 6만ℓ를 일제히 이 논에 뿜어내고 방금 떠났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논바닥에는 언제 물을 뿌렸냐는 듯이 물 한 방울도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김운진/소방대원 : (논을) 다 채우려면 솔직히 시간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죠.]

취수원이 50km나 떨어져 있어서 하루 두 번, 10대밖에는 동원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김승제/소방대원 :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자기 논에도 좀 물을 줄 수 없느냐면서 우시더라고요. 그러면 마음이 좀 아프죠.]

마을 사람들 말로 석 달 만에 내렸다는 비, 하지만 해갈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최용해/마을 이장단장 : 어제 비가 10㎖도 안 왔어요. 그래서 또 비상이 걸린 거야.]

이대로 가단 올 농사를 모두 망칠 지경이라 민심은 전에 없이 흉흉합니다.

어디선가 물이 흘러들어 작은 웅덩이라도 생기면 어느새 펌프 호스가 어지럽게 꽂힙니다.

주변 주민들이 이 구덩이 물이나마 어떻게든 끌어다가 논이라도 한 번 적셔보려고 서로 경쟁적으로 물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겁니다.

[마을 주민 : 생명수에요. 제 생명수야, 이게. 이만큼 이거라도 이용해야 물 좀 덜 마르지. 이 물 새는 것도 아까울 정도예요.]

물 퍼가는 경쟁자가 생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섭니다.

[우리가 그거(웅덩이 물)를 조금씩 논에 대는데 저 사람도 그거를 보고 거기다가 (펌프를) 대 놨잖아요. 안 남아나죠, 우리 한 집만 써도 모자란데.]

이 물웅덩이는 5분도 안 돼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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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으로 땅을 파보지만 찔끔 물빛을 보이곤 그만입니다.

아직 지하수가 마르지 않은 바로 옆 논의 주인이 부럽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 :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주지도 않잖아요, 아예. (자기 논) 웬만큼 젖었으면 주고 그래야죠. 서로 뿌리만 적실 수 있게끔 (물을) 줘야 하거든.]

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의 펌프를 훔쳐가는 일까지 예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인호/마을 주민 : 물 한 모금이라도 더 논에 대기 위해서 전쟁 아닌 전쟁을 하고 있는 거지.]

[차학천/마을 주민 : 아주 살벌합니다. 아주 그냥 얼마나 살벌한지 몰라요. (물 관련해서) 뭐 말을 못 해요. 말했다가는 큰일 나죠.]

수도권의 올해 강수량은 평년의 절반 수준.

당분간 뚜렷한 비 소식이 없는 데다 장마도 다음 달에나 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서 농심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오영춘·강동철·김승태, 영상편집 : 이홍명,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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