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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실행보다 말이 앞서…허둥대는 메르스 대책

[취재파일] 실행보다 말이 앞서…허둥대는 메르스 대책

이용식 기자 yslee@sbs.co.kr

작성 2015.06.12 15:06 수정 2015.06.13 14: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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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만 해도 옷과 이불을 수선하기 위해 재봉틀을 가지고 있는 집은 마을에서 겨우 한두 집, 그야말로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재봉틀 대신 바늘로 온 식구의 옷가지를 손수 꿰매며 사셨습니다. 낮에는 농사일로 바쁘다보니 바느질은 보통 저녁 먹고 난 뒤 일거리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데다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려다보면 어머니들은 늘 침침한 눈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바늘 위 작은 구멍에 실을 꿰도록 도와주는 일은 어머니 옆에 있던 자식들 몫이기도 했습니다. 실이 바늘귀에 잘 안 들어가면 서두르게 되고 짜증이 나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서는 못 쓴다"고 일러 주시곤 했습니다. 아무리 급하게 하려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속담이지요.
 
메르스 공포가 3주째 온 나라를 떨게 만들고 있는 요즘 정부당국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듣던 이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11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전국의 각 지역별로 메르스 치료병원을 운영키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최 총리대행은 이어 서울 보라매병원, 대전 충남대 병원, 경기분당 서울대병원, 충남 단국대병원 등 4곳을 예로 들어 소개했습니다. 곧이어 진행된 복지부의 정례브리핑에서는 메르스 확진자를 치료할 전국 16곳의 거점병원 명단과 의심자를 진료할 32곳의 의료기관이 함께 발표됐습니다.
메르스 캡쳐_640 
그런데 사전에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메르스 확진자를 치료할 거점 병원으로 지정된 전국16개 병원을 취재한 결과 강원대병원,부산대병원, 경상대병원의 경우 메르스 바이러스 유출방지에 필수시설인 음압병상을 당장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음압병상은 병실의 압력이 외부보다 낮아 병실 안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어 감염확산을 막아주는 시설입니다. 강원대병원은 음압병상이 아예 없는 상태인데도 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직원들조차 의아해했습니다. 부산대병원은 현재 호흡기센터내 26개 음압병상이 공사중인데 7월말이나 돼야 운영을 할 수 있고, 경상대병원도 보수 공사중이라는 답을 했습니다. 정부의 황급한 지정에 준비도 안 된 병원들은 부랴부랴 이동식 음압장비를 사기로 결정했지만 15일이나 돼야 가동을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음압병상을 보유한 병원들도 어려운 처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16개 시·도에 지정된 거점병원이 보유한 음압 병상수는 86개, 이 가운데 절반은 환자가 입원해 있어서 40여 개 병상만 여유가 있는 상태입니다. 충남대병원과 충북대병원, 천안단국대병원 등 3곳은 이미 음압병상이 가득차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충남대병원은 음압병상 5개 외에 이동식 음압장비 5개를 추가로 들여왔지만 환자가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충북대와 천안 단국대병원의 경우 음압병상 5개가 모두 사용 중 이어서 이동식 음압장비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복지부 해명을 들어보니 거점병원 선정이 부실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복지부는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메르스 치료병원을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고, 지자체의 보고를 받아 선정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되자 복지부는 부산대병원을 동아대병원으로 바꿨고, 경상대병원의 경우 음압병상 개원 예정일을 앞당기기로 했다는 등 추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거점병원 선정과정에서 치료병원의 자격과 조건에 대한 검증을 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정부,지자체,민간부문의 대책에 대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최경환 총리직무대행도 말이 없습니다. 메르스 확산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전파되자 시급한  발등의 불을 끄고자 세밀한 준비없이 덜컥 거점병원 지정발표를 한 것입니다.

병원 선정에 앞서 환자 치료에 필수시설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메르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도 초기대응을 잘해야 한다는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행조건을 외면한 대책은 책상 위에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언행일치의 대책만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본입니다.

▶ 정부가 지정한 거점 병원, 음압병상은 '공사중'
▶ 음압 병상 없는데 '거점 병원' 하라니…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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