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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소말리아의 검은 금괴, '숯'의 역설

[월드리포트] 소말리아의 검은 금괴, '숯'의 역설
‘아프리카의 뿔’을 아시나요? 아프리카 북동부에 볼록하게 솟은 지형이 있습니다. 이 곳에 인도양 해안을 따라 부메랑처럼 길게 형성된 나라가 소말리아입니다. 소말리아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가뭄, 가난, 굶주림, 그리고 해적이 아닐까요? 앙상하게 말라 갈비뼈가 훤하게 드러난 채 커다란 눈망울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흑인 아이의 모습과 대형 화물선을 향해 쾌속보트를 타고 달려드는 검은 피부의 해적이 떠오르실 겁니다.

소말리아는 이미 아프리카에서 가난과 위험의 대명사가 돼버렸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600달러, 영아사망률 114명, 언뜻 다가서지 않죠? 좀 쉽게 풀어 쓰면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2,000원도 벌지 못하고, 갓난아기 10명 중 1명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숨진다는 뜻입니다. 2011년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 발생해 굶주림과 물 부족으로 30만 명이 숨졌습니다. 소말리아의 인구가 약 1천만 명 정도이니 인구의 3%가 숨진 셈입니다.
[월드리포트] 정규
▲ 소말리아는 2011년 가뭄과 기근으로 3만 명의 유아가 숨졌습니다.
 
● 알샤바브, '소말리아 내전의 사생아'

소말리아는 1991년 군사정권이 무너지면서 극심한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습니다. 내전으로 지금까지 숨진 사람이 3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더불어 가뭄으로 인한 대기근이 덮쳐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420만 명이 기아 상태입니다.

2006년엔 이슬람법정연대(ICU)가 군벌들을 몰아내고 수도인 모가디슈를 장악했는데 이슬람법정연대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기반을 둔 통치로 대다수가 무슬림인 소말리아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정치세력을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와 케냐가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의 형식으로 2006년과 2011년 차례로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바 있습니다. 이때 이슬람법정연대가 위축되면서 떨어져 나온 청년 무장단체가 알샤바브입니다. 아랍어로 ‘청년’을 뜻하는 이 알샤바브는 국제적 이슬람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와 연계하면서 이슬람근본주의 국가 건설을 지향합니다.

당연히 대담하고 잔혹한 테러를 서슴지 않고 자행합니다. 내전에 케냐가 간섭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2013년 케냐 나이로비 쇼핑몰에서 학살을 자행해 한국인 여성 1명을 포함해 67명의 목숨을 앗아가더니 지난 4월엔 새벽녘에 케냐 가리사 대학을 습격해 147명의 학생을 학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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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케냐 수도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로 67명이 사망했습니다.

오늘(11일)은 이 알샤바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알샤바브는 현재 소말리아 남부를 중심으로 약 20% 지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사막지대인 소말리아에서 영토의 10% 정도에 해당되는 초목지대가 소말리아가 차지한 남부에 몰려있다는 겁니다. 알샤바브가 초목지대를 장악하면서 거두는 이득과 그 안에 담긴 아이러니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 소말리아의 黑金  ‘Black Gold’

소말리아에서는 지난해 120만 톤의 숯을 생산했습니다. 내전이 시작되기 전과 비교하면 150%나 생산량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내전으로 경제난과 실업난이 가중되자 소말리아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초목지대에서 나무를 잘라 숯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숯을 만드는 데는 큰 돈이 들지도 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나무를 찾아 잘라다 불에 태우기만 하면 됩니다. 가난한 소말리아 주민들에게 숯은 중요한 생계수단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말리아 숯을 2012년 유엔은 해외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소말리아의 숯의 대부분은 남부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남부에만 초목지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남부는 알샤바브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숯을 판 돈은 고스란히 알사뱌브의 금고로 들어갑니다.

알샤바브는 이런 식으로 숯을 수출해 조직운용자금과 테러자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숯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5천만 달러, 우리 돈 5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숯’은 알샤바브에게 ‘금괴’와 다름없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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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샤바브'는 숯 수출로 매년 5백억 원의 자금을 벌어들입니다.

● 친미 걸프부국이 테러조직의 돈줄?

알샤바브는 국제사회의 금지를 비웃듯이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의 항구를 통해 검은 금괴인 숯을 해외에 팔고 있습니다. 소말리아산 숯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그러니까 밀수하는 나라는 석유부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친미 국가이면서 중동의 평화를 선도한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 전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두 나라가 알고 보니 테러조직의 최대 고객이자 자금줄인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랍 문화에서 숯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고기는 삶지 않고 대부분 그릴에 구워서 먹습니다. 그리고, 아랍식 물담배인 시샤를 상당수가 즐기고 있습니다. 시샤는 담배와 첨가향을 숯불에 태워서 그 연기를 물을 통해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숯이 꼭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지대입니다. 나무가 없으니 숯도 없고 자연히 수입을 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런데 왜 하필 소말리아일까요? 아마도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가격이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는 소말리아는 사우디와 아랍에리미트가 있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통해 숯은 동남아에서 많이 생산되지만 운반비와 생산비를 따지면 값싼 노동력에 운송비도 저렴한 소말리아 숯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겠죠.

결국 경제적 논리가 이념과 정치 논리를 초월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유엔은 소말리아 숯의 밀수에 대해 우려만 내놓을 뿐 어떤 행동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엔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의 오일 달러가 가지는 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월드리포트] 정규
▲ 최근 20년사이 소말리아의 초목지대는 20%나 감소했습니다.

●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숯의 역설

숯이라는 건 무한정 공장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무를 태워야 합니다. 나무는 하루 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소말리아의 초목지대를 한국의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메마른 땅에 군데군데 키 작은 나무와 덤불이 자라는 곳입니다. 가뜩이나 강수량이 적은 곳이라 나무는 힘들게 자라납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잘라 만드는 숯의 생산량은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나무는 물을 빨아들이고 주변에 수분을 끌어 모읍니다. 나무가 사라지면 그 땅은 더 메마르게 됩니다. 사막과 황무지가 늘어만 갑니다. 그럴수록 물은 부족해집니다. 물이 부족해지면 농사를 짓지 못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먹을 곡식도 줄어듭니다. 소말리아처럼 가뭄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곳은 그 영향이 더 직접적이고 파괴적으로 미칩니다.

숯 생산량이 20년간 150%나 증가한 사이 소말리아의 삼림지대는 20%가 감소했습니다. 1년에 1%씩 초목지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물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경작한 곡식의 양도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숯을 만들고 있지만 숯을 만들기 위해 태워진 나무는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소말리아 주민의 물과 식량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중동 평화의 수호자를 자부하면서 극악한 테러 조직의 돈줄이 돼버린 걸프 부국과 생계를 위해 나무를 잘랐지만 결국엔 부메랑 효과로 더 심각한 생활고에 직면하는 소말리아 주민, 그 사이에서 수백억 원의 테러 자금을 거머쥐는 이슬람 극단조직, 소말리아의 ‘검은 금괴’ 숯이 담고 있는 뒤틀린 경제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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