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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르스가 보여준 한국의 불신 비용

원칙은 사회적 '정찰가격', 원칙 지켜야 비용 낮춘다

[칼럼] 메르스가 보여준 한국의 불신 비용
중국 방문을 앞둔 관광객들은 인터넷이나 지인들에게 시장에서 가격흥정 요령을 많이 묻는다. 중국 상인들이 그만큼 바가지를 많이 씌운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흥정에 선후진국이 따로 있을까마는, 상인이 부르는 값과 손님이 원하는 가격의 차, 즉 흥정가격의 폭은 나라 혹은 지역별로 분명히 존재한다.

신뢰가 적은 나라일수록 아마도 흥정가격의 폭이 클 거란 생각이다. 중국에서 무조건 반값 이하로 흥정하라는 조언을 한국이나 일본에서 그대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흥정이 재미라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시간과 노력이란 비용을 초래한다. 그런 비용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미는 없을 테지만, 상인과 손님 간에 신뢰 속에서 사고파는 정찰제일 것이다. 손님은 적정가격에 원하는 상품을 사고, 상인의 적정이익을 얻는 것인데, 이는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가 적은 나라에선 시장에서처럼 구성원들이 흥정을 하려 든다. 원칙이란 정찰제 가격을 믿지 못해 편법을 동원하려 한다. 빠른 민원처리를 빌미로 뒷돈을 주거나 받으려 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면서 어떤 정책도 먹혀들질 않는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의 신뢰 정도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가 된 듯하다. 정부는 애초 정보를 독점하면서 국민이 무조건 지침에 따라와 주길 바랐지만, 많은 국민들은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자구책을 마련했다. 불신이 큰 만큼 과잉행동이 유발되면서 괴담이 만연했다. 일부 환자들 역시 정부지침을 어기고 멋대로 움직이면서 메르스 확산을 초래했다. 그러면서 환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갔고, 정부와 지자체, 병원 간에 갈등은 치솟았으며, 뒤늦은 격리로 많은 국민들이 생업에서 불편을 겪었다. 모든 게 불신의 비용이다. 사회구성체 간에 불신이 높다보니, ‘저 건 아닐 거야’, ‘내가 알아서 대비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원칙에서 벗어나 움직이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과 금전적 비용이 초래된 거다.

사회의 성숙도를 보는 지표 가운데 SQ지수란 게 있다. 이는 사회구성원이 행복과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 데, 그 구성요소 가운데 우리 사회는 신뢰 항목이 특히 낮다. 국제적인 비교에서도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나 터키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그친다. 신뢰가 낮은 사회일수록 정책의 힘이 떨어지고, 재정의 누수가 심해진다.

정부가 사실을 감추고 정보를 독점하려 할수록, 국민과 기업은 정부를 상대로 ‘흥정’하려 할 것이다. 불신이 커지면 갖가지 사회적 비용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정부를 좋은 상인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정찰제에는 못 미치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을 부른다는 신뢰를 주는 상인에게 지나친 흥정을 거는 손님은 없을 터이다. 그래야 리더십이란 적정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원칙은 사회 구성체간의 정찰 내지 합리적 가격이다. 그 가격을 믿고 움직여야, 서로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성숙한 단계로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다가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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