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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LPGA "우승 세리머니는 '물' 대신 '꽃잎'으로…"

이정민, 물 세례에 감기 몸살…선수 건강 해치는 세리머니는 자제해야

[취재파일] KLPGA "우승 세리머니는 '물' 대신 '꽃잎'으로…"
지난 7일 KLPGA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이정민 선수는 우승 직후 물세례를 받고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우승 소감 인터뷰를 했습니다. 중계방송에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생생하게 잡혔고 본인도 코를 훌쩍이며 너무 춥다고 말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즌 3승을 올리며 다승과 상금 선두에 나서는 순간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니 고맙긴 했지만, 이정민은 '물세례'의 후유증으로 감기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우승 다음 날 학교 수업과 방송 출연 등 모든 스케쥴을 취소하고 집에서 종일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정민의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해보니 지금은 다행히 첫날보다 열도 많이 내리고 상태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우승하는 날 제주 날씨가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는데 정민이가 물을 많이 뒤집어쓰고 너무 추워했어요. 숙소는 이미 체크 아웃 했고 갈아 입힐 옷도 준비하지 못해서 2시간 넘게 덜덜 떨었어요. 미디어 인터뷰에 시상식,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도 계속 젖은 옷을 입고 있었죠. 그날 저녁 비행기를 놓쳐서 조윤지 프로의 숙소로 가서 뒤늦게 옷을 갈아 입혔는데 그날 저녁부터 감기 기운이 보이더라고요.]

[기자 : 이젠 우승도 날씨 봐 가면서 해야겠네요? (웃음)]

[물을 뿌려주는 건 선후배 동료들이 우승을 축하하는 마음의 표시인데, 그걸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2012년에는 정민이가 11월에 부산 아시아드 골프장(서울경제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적이 있어요. 초겨울이었는데 그때도 물을 맞고 아이가 덜덜 떨었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축하해주는 동료들 마음은 고맙지만 속으로는 딸 아이 걱정도 되죠. 물은 더울 때만 뿌리고 쌀쌀한 날씨에는 꽃잎을 뿌려준다든지, 다른 방법으로 축하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정민
스포츠 경기에서는 각양각색의 세리머니가 경기 외적인 또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골을 넣은 축구 선수를 동료들이 덮치기도 하고 홈런을 친 야구 선수의 헬멧은 동네북(?)이 되기도 합니다. 보통은 웃어 넘기지만, 좀 세게 맞으면 뒤를 돌아 그 선수를 흘겨보고 나중에 더 세게 되갚아 주기도 하죠.

중요한 건 선수 보호가 먼저라는 겁니다. 선수에게 피해가 가는 세리머니는 재미를 떠나 당연히 지양되어야 합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KLPGA도 이런 점을 의식해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우승 세리머니에 대한 권고 지침을 만들어 대회 시행사와 후원사, 선수들에게 알렸습니다. '우승 세리머니는 물 대신 꽃잎으로 대체하자. 물에 젖으면 추운 날씨에 감기에 걸릴 수 있고 속살도 비칠 수 있으니 물 대신 꽃잎을 뿌려주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 열린 몇몇 대회에서 우승자에게 꽃잎이 뿌려진 사례가 있으나 강제 규정이 아니라 권고 사항이다 보니 올해는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은 꽃잎 세리머니가 싱겁고 뭔가 허전하다며 계속 물을 뿌렸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 말 E1 채리티오픈에서 올 시즌 처음 '꽃잎' 세리머니를 선보였습니다. 이때도 우승자는 이정민이었습니다. 이정민은 이때 "물 대신 꽃잎을 맞으니 근육이 놀라지 않아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미국 LPGA투어에서는 매년 4월 초 열리는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올해부터 대회 이름이 ANA 인스퍼레이션으로 바뀜)에서 우승자가 연못에 뛰어드는 전통이 있습니다. 대회장인 캘리포니아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골프장 18번 홀 그린 옆 챔피언의 연못에 우승자와 가족, 캐디까지 나란히 손을 잡고 뛰어들어 온몸이 젖은 채 물 밖으로 나오면 밖에서 대기하던 진행요원들이 바로 전신 타올로 덮어줍니다. 한국 선수로는 2004년 박지은, 2012년 유선영, 2013년 박인비가 챔피언 자격으로 그 연못에 뛰어들었는데 바로 보호 조치가 취해져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반면 지난 7일 젖은 채로 덜덜 떨며 우승 소감을 말하던 이정민의 어깨에는 큰 타올 대신 헐렁한 점퍼 하나만 걸쳐져 몸속으로 들어오는 제주의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 KLPGA투어는 10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6명의 우승자가 나왔는데요, 이들 가운데 쌀쌀한 날씨에 물세례를 원한다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KLPGA는 앞으로 '꽃잎 세리머니 문화'를 투어에 정착시켜 나갈 방침입니다. 앞으로도 11월 중순까지 19개 대회가 더 남아있는데요, 무더운 한여름이라면 몰라도 쌀쌀한 날씨에 우승자에게 물을 뿌려 건강을 해치게 하는 세리머니는 이제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축하는 축하로 끝나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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