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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의도구'와 참을수 없는 정부의 한심함

[취재파일] '여의도구'와 참을수 없는 정부의 한심함
최경환 부총리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서울 서초구에 산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경기도 성남시에 살았다. 이 분들이 과거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분들이 '여의도구'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정부는 어제 메르스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1935자 짜리 대국민 발표문과 A4 한장 분량의 24개 병원 리스트. 첫 확진 환자가 나온지 18일 만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등떠밀려 병원 공개를 지시한 지 3일 만이었으며, 언론에 발표 시간을 통보한 지 12시간 만이었다. 그나마도 발표 시간은 2차례나 연기됐다. 오전 회견 2분 전인 9시 58분에 갑자기 20분 늦추겠다는 통보가 왔고 곧이어 아예 1시간을 미뤄 11시에 시작하겠다고 알려왔다.

현장에 있었던 선배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최경환 부총리와, 문형표 장관, 박인용 장관은 늦춰진 발표 시간 직전까지도 국무위원 대기실 소파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발표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최경환 부총리는 그 다급한 발표의 와중에도 "병원 공개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강조하는 정무적 감각과 충성심을 뽐냈다. 하지만 정작 병원 리스트는 오류투성이었다. 대학 병원 2곳이 누락됐고, 병원의 지역이 뒤바뀌었으며, 결정적으로 '여의도구'라는 지독하게 창조적인 행정구역명이 등장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 분들이 병원 리스트를 검토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보고도 '여의도구'를 놓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차라리 발표문만 챙기느라 병원 리스트는 직접 확인하지 못한 쪽이길 간절히 바란다. 무려 일국의 장관 3명이 막판까지 분초를 다투며 머리를 맞대고 내용을 검토했는데도 '여의도구'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건 더 더욱 상상하기 싫은 상황이다.

부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란 용어가 있다. 사람들이 특정한 현상에만 주의를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명백한 현상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이른바 주의력 착각이다. 백번 양보해 병원 이름이나 지역은 일선 담당자가 아니면 오류 파악이 쉽지 않다고 해도 '여의도구'는 다르다. 중고등학생만 해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 공식 문서는 초안 작성자 뿐 아니라 층층시하로 여러 상급자가 확인하는게 일반적이다. 중요하고 예민한 이슈는 주무부처 장관이 나서 직접 검토하고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일국의 장관이 무려 3명씩이나 관여한 정부 공식 문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하니 등장한 '여의도구'를 어떻게 우리는 해석해야 할까. 병원 리스트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든, 확인하고도 놓친 것이든 거기에는 맹시가 존재했다. 최경환, 문형표, 박인용 장관이 발표 직전까지 주의를 집중했던 부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는 다급한 상황에서 벌어진 사소한 실수라며 항변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소한 실수에서 국민들은 거대한 무능을 본다. 시스템은 망가졌고, 이를 보완해야 할 개인기는 취약하다.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지만 2015년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틀린 얘기여야 한다.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한심함의 수준은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도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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