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둥팡즈싱호 침몰 현장 취재기 ① 우리는 '세월호'와 정반대로 간다!

[월드리포트] 둥팡즈싱호 침몰 현장 취재기 ① 우리는 '세월호'와 정반대로 간다!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을 떠나는 우한(武漢) 행 비행기 안은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저녁 7시 반 이륙 예정이던 비행기는 늘 그렇듯 사과 방송 한마디 없이 활주로에서 마냥 대기하다 40분이나 지나서야 둔탁한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일단 우한 공항에 도착해 거기서 둥팡즈싱호(東方之星)가 침몰한 현장으로 접근하려면 차 타고 남쪽으로 250km를 더 달려야 한답니다." 사무실 여직원은 우한 공항에서 현장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랜터카를 섭외했다며 이륙 직전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오늘 밤 잠자기는 틀렸군!" 회사로부터 사고 현장을 취재해 다음 날 아침 뉴스용 리포트를 제작해 송출하라는 지시를 받은 터라 마음은 급했지만, 일단은 눈부터 붙이리라 마음먹었다. 
월드리포트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내 옆자리의 중년 남성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고 통로 옆 좌석의 젊은 여성은 영화라도 한 편 보려는 지 주섬주섬 테블릿 PC를 켜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비행기 입구에서 받아 든 '환구시보'를 펴들었다. 눈에 힘을 주고 몇 문장 읽어 내려가다 보니 금세 눈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역시 난 한자 울렁증인가 봐' 그 순간 내 대각선 앞 좌석 승객이 펼쳐 든 서류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눈팅'으로 파악한 그 서류는 국무원이 제작한 것으로 둥팡즈싱호 사고 개요 및 대응 수칙'을 담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이번 여객선 침몰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으로 파견돼 가고 있는 정부 관리임이 틀림없었다. 순간 기자의 눈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가 서류 뭉치를 낚아채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큰 제목 위주로 부지런히 '눈 도둑'을 했다. 다행히 앞 승객은 서류 한 장씩 넘기며 정독 중이었다.

먼저, 사고 개요 및 둥팡즈싱호의 재원과 두 차례에 걸친 구조변경 관련 내용이 눈에 들어왔고 리커창 총리의 사고 수습과 정부 활동의 효과적인 선전에 관한 지침이 뒤를 이었다. 본 자료 끝에는 부록으로 중국에서 이전에 일어난 선박 사고 개요와 전개 상황이 요악돼 있었다. 그 다음으로 지난해 한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이 등장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세월호 사고 수습 내용과 일정이 몇 페이지에 걸쳐 정리되어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 며칠 만에 대통령이 현장에 왔고 며칠 만에 사고선이 인양됐고 등등 날짜들이 빼곡했다. 수시로 눈을 부릅 떠봤지만 결국 상세한 내용 파악에 실패한 채 노안 탓을 하며 두 눈이 벌게진 채 우한 공항에 내렸다. 이미 밤 10시를 넘었다. 내부 자료를 해킹당한(?) 그 관리는 마중 나온 차에 올라 어디론가 총총 사라졌다.  

우리가 예약해 놓은 렌터카도 도착해 있었다. 왕 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렌터카 기사는 자기가 배가 침몰한 젠리현 토박이라며 그 일대는 자기 손바닥 안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차가 전조등을 환히 켠 채 우한-젠리현 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중국 정부가 긴급 하달한 둥팡즈싱호 사고 수습 매뉴얼에 등장한 '세월호' 사고가 과연 이번 사고 수습에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양쯔강 여객선 인양

지난해 4월 사고 직후부터 한 달 가까이 CCTV 등을 통해 자국 내 사고라도 된 듯 상세히 세월호 수습 과정을 생중계했던 중국 언론과 정부의 평가는 한 마디로 "한국이 저 정도밖에 안 됐었나?"였다. 그랬던 중국이기에 세월호와 다른 듯 어딘가 흡사해 보이는 이번 사고를 지난해 한국 정부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고자 할 것이다.

사고 며칠 뒤에야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인 팽목항을 찾았던 부분이나 내외신을 통해 유족들의 정부 비판을 가감 없이 전 세계에 생중계했던 당시 언론 보도 상황, 그리고 현장 구조팀과 지휘부의 미숙한 대응 속에 골든타임을 놓치고 선체 인양도 못 했던 수습 방식, 여기에 사고 원인 수사 과정에서 세모 유병언 씨 일가 비리 수사 및 추적 등으로 번지면서 몇 달간 온 나라가 혼란을 겪었던 전례를 중국 정부는 반복하길 원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둥팡즈싱호 사고 처리 방식은 세월호 때 한국 정부의 대응과는 정반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컸다. 
양쯔강여객선인양작업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잇따라 두 개의 의문 부호가 따라붙었다. 첫째, 과연 중국 정부의 의도대로 수고 수습이 가능할까? 둘째, 그런 중국식 수습 방식은 최선일까? 며칠이 될지 모를 이번 사고 취재의 방향타는 이제 이 두 개의 문제의식이 될 터였다. 비릿한 민물 내음과 함께 자동차 전조등 불빛 넘어 조용히 일렁이는 검은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곁눈질하던 렌터카 기사가 재빠르게 껴들었다. "맞아요. 양쯔강이에요. 하지만 강둑을 따라 한 10km는 더 가야 현장에 도착합니다." 시간은 이미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