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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판사의 국가관 검증은 누가 해야 되나?

법원행정처장 공지문에 부쳐

[취재파일] 판사의 국가관 검증은 누가 해야 되나?
"피고인이 개전의 정(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없는 점을 감안해 형을 선고한다."

판사는 피고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겨우 몇 번의 공판에서만 봤던 사람이 진정으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그렇게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특히, 한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구속할지를 결정하는 엄중한 상황에도 자신있게 상대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판사는 마치 ‘관심법’이라고 있는 듯했습니다.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습니다. 피고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판사의 주관적 판단이 형량에 영향을 미치는 것. 오래 사귄 친구의 속내도 가끔 알 수가 없는데, 몇 번 보지도 않은 사람의 속마음을 판사는 어떻게 정확하게 읽어 낼까? 가장된 반성, 시늉만 하는 반성도 있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피고인에 대한 판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감형까지 할 수 있게 한 것은 판사의 사람(피고인) 보는 눈이 예사롭지는 않다는 믿음 때문일 겁니다.

●“판사에 대한 국가관 검증은 당연한 것 아니냐?”

국정원의 경력 판사 면접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든 건 취재 과정에서 접한 법원의 반응과 보도 이후 일부 시청자들이 보내온 의견 때문입니다. 우선 메일로 보내온 시청자 의견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데, 국가관 검증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빨갱이 판사가 들어오면 어떡할 거냐? 판사 검증은 당연한 것이다. 빨갱이인지 아닌지는 국정원이 제일 잘 아는 것 아니냐?"

취재 과정에서 접한 법원의 공식 입장도 첫 번째 소개한 시청자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판사 임용예정자에 대해 국가관 등을 검증하라는 보안업무규정이 있고, 판사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검증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국정원이 판사 임용 예정자들을 면접하는 것은 필요하고,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픽_국정원경력판
판사의 국가관 검증은 필요합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이 사법부에 들어와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고 판단해선 안 됩니다. 자유 민주주의 근간인 사법부 독립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 판사가 되어 판결을 한다면, 그리고 사건이 권력과 관련된 것이라면, 사람들은 해당 판사가 내린 판결을 신뢰할 수 없을 겁니다. 사법부 독립을 위해서라도, 자유 민주주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도 판사 임용 예정자에 대한 국가관 검증 등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누가 판사 지원자들의 국가관을 검증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대상은 장차 사법부의 구성원이 될 판사 지원자들입니다. 검증은 누가 해야 할까요?

메일로 주신 시청자 의견처럼 경력 판사지원자들 가운데 소위 빨갱이가 있을 수 있으니 국정원에서 하는 것이 맞을까요? 실제 이적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면 국정원이 수사하면 될 일입니다. 판사 선발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할 일이 아닙니다.

대법원의 판사 선발 과정에도 지원자들에 대한 면접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수많은 피고인들을 봐 왔고, 그들의 행동만 봐도 반성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현직 판사들이 면접관인데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이 행정부 구성원이 아닌 사법부 구성원을 뽑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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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행정처장 공지문 유감

이런 점에서 법원행정처장이 법원 내부 게시망에 올린 글은 실망스럽습니다. 우선, 국정원 직원이 경력 판사 지원자들을 개별면접한 사실은 이미 재작년 임용자들의 문제 제기를 통해 대법원에서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 직원을 뽑는데 다른 회사 직원이 면접을 보는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근거가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던 대법원이었습니다.

불과 2년 전, 그렇게 강조해 왔던 사법권 독립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사법부 능력을 비웃듯 자신들은 30~40분의 면접으로 판사 지원자들의 국가관을 검증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보였던 상황에서 대법원은 왜 침묵했는지. 법원행정처장의 글에서는 그에 대한 입장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앞으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말의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 국정원이 판사 임용예정자들에 대한 신원 조사를 가능하게 하는 ‘보안업무규정’ 자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실망스럽습니다. 지금껏 관행적으로 이뤄진 국정원의 신원 조사와 관련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합니다. 하지만, 판사 임용예정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신원 조사를 가능하게 하는 ‘보안업무규정’이 존치하는 한 인터뷰 형태의 국정원 직원의 면접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장이 밝힌 제도개선 방안이라는 것은 ‘보안업무규정’의 존치를 전제로 하는 듯합니다. 결국, 사법부 구성원인 판사를 임용하면서 국가관에 대한 검증은 앞으로도 행정부인 국정원에 맡기겠다는 겁니다. 사법부는 자체적으로 판사 임용 예정자들에 대한 국가관을 검증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인지, 방식만 개선하면 국정원이 판사 임용예정자들의 국가관을 검증하더라도 사법권 독립을 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법부의 당당함’은 이야기했지만, 사법부 독립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망스럽습니다.

물론, 아직은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니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보안업무규정’의 폐지나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법원이 앞으로 내놓을 제도개선 방안이 사법부 독립에 대한 사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마련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는 형태도 그 의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이번처럼 법원 내부 게시망에 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국민들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제도개선 방안을 내 놓는다면 해당 방안을 실행하겠다는 의지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앞으로 어떤 방안을 내 놓을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 지 계속해서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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