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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천재지변은 '설마'를 반복하는 자를 노린다

[월드리포트] 천재지변은 '설마'를 반복하는 자를 노린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1년여 만에 중국이 비슷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458명의 탑승자 가운데 구조된 인원은 겨우 14명. 중국 당국이 필사적으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낙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피해 규모가 '세월호'를 능가할 듯 합니다.

이번에 '둥팡즈싱호'가 당한 사고는 '세월호'보다는 천재지변의 성격이 더 강합니다. 전복 사고가 일어날 당시 해당 수역의 바람세기는 무려 12급이었다고 합니다. 12급 바람은 초속 45m 이상으로 초강력 태풍의 중심에서 부는 바람 세기와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형 여객선인데도 뒤집히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5~10분 사이에 배가 기울어지면서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고 증언했습니다. 완전히 침몰하는데 4시간 가까이 걸린 세월호보다 대피하기 훨씬 어려웠을 듯합니다. 아울러 사고 당시 해당 수역에 시간당 수십 밀리미터의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구조작업을 펼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사고가 일어난 시간도 공교롭습니다. 해당 여객선은 장강 크루즈를 하고 있었습니다. 크루즈의 특성상 낮에는 강변 곳곳의 관광지에 정박해 구경을 하고 밤에는 모두 선실에서 자면서 이동을 합니다. 모두 곤히 잠든 밤에 갑자기 일어난 사고다보니 대처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사고에 대해 하늘만 원망하면 끝일까요? 사고 원인에 대한 이런저런 분석 결과가 나올수록 이번 사고 역시 인재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하늘이 불러온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이 좀 더 조심스럽게 대처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불행입니다.

그 첫번째 증거가 구조 변경입니다. '세월호' 때에도 사고의 가장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더 많은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원래의 선박 구조를 바꾸면서 안전성을 헤쳤습니다. 이번 '둥팡즈싱호'도 마찬가지입니다.

둥팡즈싱
이 선박은 1994년 2월 건조된 뒤 수차례 개조 과정을 겪었다고 현지 신문들이 전했습니다. 배 위 쪽의 방화벽과 객실 분포 등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개조 작업을 건조 당시 설계 회사가 아니라 다른 업체가 맡았다고 합니다. 당초 고려했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됐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실제로 구조 변경 이후 물속에 잠기는 깊이인 흘수가 2m에 2.2m로 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한 중국 현지 방송은 이 선박의 길이가 당초 60m였지만 현재는 76.5m로 15m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이 역시 배가 바람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된 원인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애초 강에서 운항하는 배가 4층 높이로 지어진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4층 넘는 초대형 크루즈를 쉽게 볼 수 있는데 무슨 말이야?' 물론 바다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취재파일

어제(3일) SBS 8시 뉴스에 방송된 컴퓨터 그래픽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는 흘수선(배가 수면 아래로 잠기는 선)을 깊이 만들 수 있는 반면 강에서는 상대적으로 얕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무게 중심이 더 높아집니다. 복원력을 높이려면 당연히 배의 높이를 낮춰야만 합니다. 실제 유럽의 강에서 운항하는 배들은 2층 높이를 넘기는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장강 크루즈들은 더 많은 편의 시설을 갖추고, 더 많은 승객을 실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기본 상식조차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구조가 취약해졌더라도 기상 상황이 나쁠 경우 운항에 무리하게 나서지만 않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습니다. 당일 장강 유역에는 폭우와 강한 바람이 이미 예보돼 있었습니다. 새벽 6시부터 사고 당시까지 관할 기상 당국이 무려 7번에 걸쳐 강풍 위험 예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둥팡즈싱호'는 이런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사고 당시 같은 시간, 같은 수역에 또 다른 여객선도 운항에 나섰습니다. 크기도 '둥팡즈싱호'와 거의 같은 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강풍과 폭우 등의 기상 상황이 심상치 않자 항구로 되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둥팡즈싱호'나 이 여객선이나 모두 시간에 쫓겼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이동을 해야 일정에 맞춰 크루즈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무리하게 운항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둥팡즈싱호'는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했고 다른 여객선은 일정에 차질을 빚는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둥팡즈싱

이런 여러 가지 사항들을 놓고 보면 이번 사고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결국 '설마'입니다. "배를 고친다고 설마 안전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겠어?", "배를 조금 높이 설계한다고 설마 뒤집힐 리가 있겠어?", "바람이 아무리 세도 설마 이 큰 배가 전복되겠어?", "기상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설마 무슨 사고가 생기겠어?"

이렇게 '설마'가 몇 번 겹치면서 무려 400명 넘게 숨지거나 실종되는 대참사를 불렀습니다. 물론 천재지변입니다. 하지만 평소 볼 수 없었던 하늘의 조화가 모두에게 재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 경구를 조금 틀어서 생각하면 됩니다. 천재지변은 '설마'를 반복하는 대상을 노린다.

▶ 구조 변경에 무리한 운항…최악 참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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