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섭섭할 거다. 그간 회의에서, 선거 유세장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중요성을 설파한 게 몇 차례며, 각종 공무원 노조와 단체를 불러 면박 당하고, 언성 높이고 한 게 몇 번이겠는가. 대타협기구와 특위 띄우고, 야당과 협상하느라 청와대와 의견 조율하느라 진땀 뺀 시간들은 또 어떻게 쉽게 잊히겠는가.
아마도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취임 후 치른 두 번의 선거를 빼면 기억에 남는 건 공무원연금 개혁일 거고, 유승민 원내대표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유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 말고도, 사드 관련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기억에 남을 수도 있겠다)
비주류 두 남자가 6개월여 시차를 두고 차례로 당의 대표와 원내대표가 됐을 때, 또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숙제를 떠안았을 때 그 과제를 완수해낼 거라고 예상한 이는 적었다. 100만 공무원의 저항은 곧 선거에서의 표와 등가다. 정치권이 앞서서 해낼 거라는 관측은 그래서 무망했다.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에 독이 될 수도 있는 공무원 연금 개혁을 해낸다고? 낙관과 비관이 엇갈렸지만, 비관이 우세했다.
과정이야 어떻든 공무원연금 개혁은 이뤄냈다. 그 개혁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를 두고 이견도 많지만, 70년간 나랏돈 333조원을 덜 쓸 수 있다고 하니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나은 것임은 분명하다.
비주류 두 남자는 청와대가 던진 숙제를 해냈다. 청와대 성에는 안 차지만 이 정도라도 해낸 걸 평가도 받고 싶고, 고생했다고 노고도 치하받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이라는 옥동자(전술했지만, 옥동자라고 보지 않는 의견도 많다)를 낳기 위해 갖은 산고를 겪은 여당 지도부에게, 시어머니인 청와대가 눈을 부라린다. 산모가 옥동자만 낳을 것이지, 옥동자에 이것저것 혹을 붙였다는 이유다.
공무원연금 개혁 성과를 국민들에게 채 알려지기도 전에,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국회의 시행령 수정 권한 강화가 삼권분립을 해치고 정부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대통령의 질타에 야당은 적극 반발하고 있지만 여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국회법 갈등이라는 암초를 향해 나아가는 새누리호. 김무성 선장과 유승민 부선장은 이 암초를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2015년 여름 한국 정치, 특히 여당은 전례없는 항해사(史)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