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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 클래스가 다른 야심

[월드리포트]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 클래스가 다른 야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워낙 유명한 경구입니다. 고대 로마가 닦아놓은 도로망의 우수성을 일컫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평가를 넘어서는 속뜻이 있습니다. "물류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 실제 로마가 그러했습니다. 새로 땅을 정복하면 반드시 가도, 즉 고대의 고속도로를 놨습니다. 그 길을 통해 로마 군단을 파견하고 식민지의 물품을 들여왔습니다. 제국의 혈관이 됐습니다. 로마를 하나로 묶어주는 그물이었습니다.

중국도 '길'의 중요함을 일찍부터 간파했습니다. 폭군의 대명사지만 수나라 양제가 남북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했기에 장강이남 지역이 중국에 합쳐질 수 있었습니다. 한 무제는 실크로드를 개척해 중국이 세계적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기초를 놨습니다.

현대의 중국도 길을 놓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철을 개발했습니다. 가장 긴 고속철도를 건설했습니다. 가장 거대한 규모의 고속도로망을 놓았습니다. 사실 미국을 동서로 관통하는 대륙 횡단 철도도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대역사입니다.
중국 대로

그래서일까요? 세계 양강으로 미국과 패권 경쟁에 나선 중국이 요즘 국운을 걸고 총력을 기울이는 사업이 바로 '길을 놓는 것'입니다. 하도 자주 들어서 이제는 상식이 됐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말입니다. 중국 서부를 통해 중앙아시아, 동유럽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현대의 육상 실크로드, 그리고 중국 동부 연안에서 태평양, 인도양을 거쳐 유럽, 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미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 두 대로가 현실화되면 중국은 44억 명의 인구에, 총생산량 21조 달러의 초거대 경제권역을 아우르게 됩니다. 확실하게 세계 제1 경제대국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습니다.

중국이 놓으려는 길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남미 4개국을 순방한 리커창 총리는 각국에 어마어마한 투자 보따리를 안겼습니다. 브라질과는 35개 협약을 맺어 총 투자액이 58조 원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 사업은 남미 횡단 철도 건설입니다.

중국 대로
브라질 동남쪽 대서양변의 상파울로에서 출발해 브라질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뒤 페루를 거쳐 태평양변 항구까지 철로를 잇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우리 돈 11조 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이미 중국은 중남미 지역에 또 다른 거대 '길을 놓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2 파나마 운하 건설입니다. 니카라과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기존의 파나마 운하와 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입니다.
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은 오보였지만 중국이 태국 운하 건설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역시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형 사업입니다.

중국이 내세우는 각 사업의 목적은 경제적 효과입니다. 물론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어마어마한 돈을 자자손손 벌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마어마한 돈을 대단히 오랫동안 투자해야 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투자 성과를 거둬야 하는 민간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은 조건입니다. 위험도 만만치 않습니다. 투자 자금을 조달하고, 집행하고, 건설하고, 운용하는 과정에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환경보호론자들과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남미 횡단 철도가 그렇습니다. 철로를 놓으려면 세계의 허파이자 최대 생태계의 보고인 아마존강 유역 열대우림과 늪지대를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로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주변 지역 개발에 나선다면 그 훼손 정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입니다. 환경보호 운동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태세입니다.

그러니 중국이 단순히 주판알만 튕겨보고 이렇게 지난한 '대역사'에 나서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경제적 효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속셈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 물류 장악을 통한 세계 패권의 쟁취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는 어디일까요?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해주는 파나마 운하, 원유 운송로의 관문 호르무즈 해협,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말라카 해협 등입니다. 이 모든 길목을 사실상 관할하고 있는 국가는? 바로 미국입니다. 해당 지역 정부를 확실하게 한편을 만들어서든, 직접 군대를 보내 주둔시켜서든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길목들이 미군이 있기 때문에 열려 있고, 거꾸로 미군이 원하면 언제든 막을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 물류는 사실상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셈입니다.

중국은 이런 세계의 물류 패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서 말입니다. 일대일로, 즉 신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새로 잇고자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원유나 가스를 수입할 통로를 찾고 있습니다. 제2 파나마 운하를 건설해 원래의 파나마 운하를 우회하려 합니다. 아예 남미를 기차로 관통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태국 운하로 말라카 해협 회피를 꾀합니다.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주요 길목을 모두 대체하려고 나선 것입니다. 사실상 전 세계의 물류 경로를 완전히 새로 긋고 있습니다.
중국 대로

사실 다른 나라가 앞서 열거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나섰다면 비웃었을 것입니다. 과대망상에 걸렸나보다, 대책 없이 꿔보는 헛꿈인가보다, 무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나서니까 현실이 됩니다. 이미 우리는 목도했습니다. 일대일로 사업을 위한 금융기반, AIIB 설립에 각국이 앞 다퉈 끼워달라고 달려오는 모습을 말입니다. 중국과 각을 세우던 영국과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까지 너도나도 손을 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무지막지한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짧게는 5~6년, 길게는 십 수 년이 걸립니다. 워낙 거대한 구상이라 중간에 어떤 굴곡을 겪을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중국의 클래스가 다른 거대 구상을 보며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중국이 새로 써가는 질서에, 힘의 지형도에 안착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험난한 꼴을 겪어야 할까요. 새로 놓인 길에 적응하고 익숙하게 다니려면 또 어떤 고생을 해야 할지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보다 더 멀리, 더 치밀하게 내다보고 더욱 복잡한 수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지도층이 그럴 능력이 있는지 걱정됩니다. 이래저래 내우외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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